기고

자살예방대책, 울림 없는 메아리가 되지 않으려면

2025-09-08 13:00:04 게재

이재명 대통령은 6월 5일, 취임 직후 첫 국무회의에서 한국 사회의 자살 문제를 정면으로 꺼냈다. 단발적 수사가 아니었다. 6월 19일 국무회의에서도 “자살 방지를 위한 별도 기구를 둬야 하지 않겠냐”는 언급까지 하며 자살예방을 국정 어젠다로 격상시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취임 후 첫 회의에서 자살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당시 많은 언론이 “드디어 국가적 의지로 자살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라 기대했다.

대통령 자살예방 강조, 기대 높아져

정권 초기 정부가 산업재해를 다루는 방식을 보면, 실행력 있는 조치로 충분히 한국의 자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한 달간 고용노동부 장관은 “직접” 현장을 방문하였다. 권한을 가진 책임자가 직을 걸고 현장을 누비며 노동 환경을 점검하고 사고를 예방한다. 2023년 기준 산업재해 사망자는 2016명, 자살 사망자는 1만3978명이었다. 필자가 잠정치를 바탕으로 예측해 보면, 2025년 자살 사망자 수도 1만3000명 후반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사망자 수가 반드시 사안의 중대성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산업재해와 자살을 비교하면 자살은 더 큰 규모의 사회적 문제임에도 정책적 대응의 무게는 여전히 불균형하다.

결국 8월 21일, 대통령은 다시 자살 문제를 꺼냈다. 이번에는 자살을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정책 패러다임의 전면 전환을 촉구했다. 예산과 인력 확충, 범부처 전담 총괄 기구, 고위험군 신속 치료비 지원, 인공지능을 활용한 위험 징후 탐지까지 구체적인 지시를 연달아 내렸다. 두 달 사이 같은 주제를 재차 언급하며 강도를 높였다는 것은, 행정 체계가 움직이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대통령의 의지가 관료의 관성에 흡수되어 울림 없는 메아리로 되돌아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의 자살예방 전략은 오래전부터 고위험군 중심의 정신건강 지원을 축으로 삼아왔다. 범부처 조정 기구 역시 국무총리실 산하에 이미 설치되어 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조기 경보 체계 또한 구체적 목표와 적용 시나리오가 빠져 있다. 한국의 자살예방 정책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인데 외형만 바꾼 정책 묶음이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생각된다.

다수의 전문가는 한국의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거버넌스의 근본적 개편부터 요구해 왔다. 보건복지부 주도의 자살예방 전략 체계는 한계가 명확함을 이미 자살사망률 데이터로 확인했다. 앞으로는 대통령이 국회와 협력해 큰 틀을 설계하고 법률 수정과 입안을 주도하며, 시·도지사가 지역 단위에서 책임 있게 운영하는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

더불어 고위험군 지원 중심에서 벗어나 자살 수단 접근 제한, 미디어 보도 규제, 정신건강 접근성 강화와 같은 보편적이면서도 비용 효율이 높은 정책을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 증상에 따라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마음건강 지원서비스의 공공성을 확충해야 한다. 실무 종사자의 처우를 개선해 전문성을 유지하며 소진을 막아야 한다.

사례 관리와 심리상담을 분리해 채무, 실업, 주거 같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부처 칸막이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이 모든 제안은 필자가 새롭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해외에서 수많은 연구를 통해 검증되었고, 지난 대선 이전부터 이미 제시되어 온 한국 자살예방 전략의 청사진이다.

새정부 자살예방, 이전 정책 반복 말아야

자살 행동은 정신건강 악화의 독립적인 결과가 아니다.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회안전망의 밀도, 지역사회의 고위험군 관리 능력, 응급의료-정신보건-지역사회의 촘촘한 연결, 치명적 수단에 대한 접근 통제까지 함께 맞물려야 한다. 한 축만 움직여서는 소용없다.

그래서 이 의제는 언제나 조정 능력과 실행력을 시험한다. 메시지는 쉬워 보여도, 실행은 어렵다. 그러나 어렵다고 멈출 수는 없다. 2025년 한국의 자살예방은 익숙한 처방의 반복이 아니라, 근본부터 다시 짜는 전면적 개편이 필요하다.

박건우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연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