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치자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건설 현장 노동자에 대한 미국 이민당국의 체포ㆍ구금 사태의 여파가 크다.
당초 올 연말 완공예정인 이 공장 준공시점이 내년으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준공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이미 투자한 자금의 기회비용이 손실로 계산된다. 매출발생이 그만큼 멀어져 이자비용 부담만 커진다. 이 공장은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법인을 세운 이후 6조원 이상을 투입했다. 이곳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납품받아 전기차를 생산하려던 현대차와 기아도 생산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됐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구금 노동자들이 귀국 비행기를 탄 12일 현지에서 “공장 건설 단계에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기술과 장비가 많다”면서 최소 2~3개월의 공장 건설 지연을 예상했다.
대체인력 투입 어려워져 최소 2~3개월의 공장 건설 지연 예상
앞으로 대체인력을 투입하기도 어려워졌다. 쇠사슬로 묶여 이동하던 노동자들 모습을 모두 봤기 때문이다. 12일 입국한 당사자들 경험이 알려질수록 이같은 분위기를 강화시킬 것이다. 이번 입국자들이 ‘추방’이 아닌 ‘자진귀국’이라지만 재입국시 신분보장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을지 의심된다. 미국 이민당국의 강경한 집행은 막대한 투자를 한 동맹국에 대한 신뢰를 금가게 했다.
공장 준공이 급한 LG에너지솔루션은 인력수급이라는 과제를 떠안았다. 이는 결국 비자로 풀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이번 사건에도 현지 건설인력을 채용하고 설비관련 숙련공에 대한 비자문제가 해결되면 큰 차질을 빚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단기상용비자의 범위를 넓게 재해석하는 방법으로 해결되기를 희망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두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미국에 진출한 한국기업 전반으로 확산됐다. 이번에 체포ㆍ구금된 한국인 노동자 가운데 일부는 미국 다른 공장 업무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이 미국에 신설 또는 증설중인 공장은 20군데가 넘는다. 조단위 투자를 한 A기업 임원은 “불법 체류자에 대한 미국 이민당국의 단속은 지난해말부터 시작됐다”며 “우리도 몇 달전 입국이 거부돼 공항에서 되돌아오거나 구금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공장을 설립중인 한국기업들은 그동안 직원들이나 하청업체 직원들을 B-1(단기 상용비자)비자 또는 ESTA(전자여행허가)비자로 미국에 체류하게 했다. A기업 직원도 여러번 B-1이나 ESTA로 미국을 왔다갔다 하다보니 공항 입국장에서 제지받은 것이다.
비행편이 맞지 않아 공항 대기가 어려운 경우는 시설에 구금됐다 한국에 들어오기도 했다. 상당수 국내기업이 트럼프행정부의 이민정책에 대해 이미 인지하고 있고 입국거부 사례 등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체포ㆍ구금 사태에서 아쉬운 점은 우선 한국 영사당국의 예측력 미흡과 국내기업간 소통 부재, 미국 법제도를 지키는 컴플라이언스 의식 부족 등을 꼽을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 영사당국이 국내기업의 미국 출장 비자에 대한 실태를 파악해 미리 위험성을 알리고 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국내 기업들은 미국 출장 비자에 대해 외교당국에 문의하고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늦게 가더라도 관행ㆍ편법 아닌 정공법으로 풀어야
이미 이번 사태 전에 미국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된 사례들이 나왔음에도 다른 기업들이 이에 대한 대비를 못한 점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기업들간 사정이 다른 점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특히 공기 마감이 임박해 서둘러 진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빨리빨리’ 문화가 반드시 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다. 관행이나 편법으로 막힌 문제를 풀기보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그동안 등한시 했던 미국 법규나 문화를 살펴보는 인식변화가 생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미국 진출기업간 소통 채널과 영사당국의 적극적 대처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이날 “제발 좀 제대로 된 비자(right visa)를 받아라(중략). 잘못된 방식으로 일을 하지 말라. 옛날 방식으로 해선 안 된다”고 말한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범현주 산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