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정부 개입 제동건 에어캐나다 파업

2025-09-15 13:00:00 게재

공공부문 파업 개입효력 한계 확인 … 노동계 “강제중재 법안 폐지운동 나설 것"

캐나다정부는 최근 발생한 항만 철도 우편 등 공공부문노조 파업 때마다 업무복귀 명령이나 ‘강제중재’를 지시하며 개입했다. 국민생활 불편과 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크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최근 에어캐나다 승무원들의 파업에서 정부의 개입 효력은 한계를 드러냈고, 노동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예상 못한 노조의 버티기

에어캐나다 승무원 노조는 지난 6일, 8월 중순 잠정 합의한 단체협약에 대한 찬반투표 결과를 공개했다. 신입 승무원의 임금 12% 인상안 등에 대해 조합원의 99.1%가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의 단체협상안 부결에도 항공사 노사는 직장폐쇄나 2차 파업 대신 추가협상을 진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승무원들은 앞서 지난달 16일부터 사흘간 파업을 벌였다. 하루 500여편의 항공기 운항이 중단됐고, 인천-토론토 노선 등 항공 수요가 많은 여름 휴가철 여행객 수만 명의 발이 묶였다. 패티 하지우 캐나다 노동장관은 파업이 시작된 지 12시간 만에 노동법 제107조를 발동했다. 노사위원회(CIRB)는 정부 방침에 따라 조합원들에게 업무복귀 명령을 내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1만여명의 노조원들은 정부의 업무복귀 명령을 곧바로 거부했다. 파업을 이끈 마크 헨콕 캐나다공공노조(CUPE) 위원장은 “이 문제로 노동자들이 감옥에 가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내놨다.

노조의 이런 반응은 캐나다정부나 에어캐나다 경영진 모두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그동안 철도나 우편, 항만 등 공공노조 파업 때마다 정부가 개입하면 곧바로 문제가 풀렸기 때문이다. 에어캐나다 승무원 노조의 버티기에 사측은 결국 협상 테이블로 돌아갔고 밤샘토론 끝에 노사는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협상이 타결된 뒤 노조 측은 “연방정부의 개입은 노사관계에 무시할 수 없는 해로운 영향을 미쳤다”며 “정부가 중립을 지키기보다 에어캐나다 사측에 승무원들의 임금인상을 제한할 수 있는 영향력을 제공함으로써 협상의 균형을 깨트렸다”고 지적했다.

캐나다정부는 지난해 밴쿠버와 몬트리올 등 주요 항만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자, 즉각 개입했다. 당시 노동부 장관은 “항만 노동자들의 파업은 물류 공급을 중단시키고, 수십만개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국가의 대외신뢰도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개입 이유를 밝혔다. 정부의 직장복귀 명령은 작년 연말 캐나다포스트 파업 때도 반복됐다. 노조 파업으로 우편물 수송이 한 달 가까이 중단되자 역시 노동법 107조를 발동해 파업을 종료시키고, 강제로 중재 절차에 들어가도록 명령했다.

2024년 8월에는 CN과 CPKC 등 캐나다의 주요 철도업체 노조가 파업을 벌였다. 이 때문에 곡물 비료 석유 자동차 등 캐나다 전역의 화물운송이 중단됐다. 철도업체들은 직장폐쇄를 결정했다. 이들 철도는 미국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파업의 영향은 미국에까지 퍼졌다. 정부는 파업이 시작된 지 17시간 만에 노동법 제107조를 발동해 ‘강제중재’를 명령하고, 파업을 종료시켰다.

정부 관계자는 철도파업이 계속될 경우 물류 공급망이 붕괴되고, 일자리가 줄어들며, 국가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이다.

에어캐나다 승무원들이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 : CBC

갑자기 살아난 노동법 107조

캐나다에서 노동법 제107조는 1984년부터 도입됐다. 2011년과 2024년 사이에는 단 한차례만 사용되었으며, 1995년에서 2002년 사이에는 네 차례 사용된 것이 전부였다. 2년 전만해도 거의 사문화된 것으로 인식됐다. 게다가 2015년 캐나다대법원은 파업권을 헌법상 ‘결사의 자유’에 포함되는 권리라고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이후 자유당정부는 갑자기 이 조항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공공노조 핸콕 위원장은 “지난 2년간 제107조는 합의가 힘든 노사협상이 있을 때마다 정부가 의지하는 수단이 됐다”며 “하지만 에어캐나다 파업 사례는 정부의 개입이 노사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내는 데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자유롭고 자발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어야 할 단체교섭에 해로운 결과만 낳았다는 것이다.

에어캐나다 승무원들의 파업이 정부 개입을 막아낸 것은 우선 여론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파업의 쟁점 가운데 하나는 ‘유노동 무임금’이었다. 그동안 승무원들이 비행 출발 전에 하는 준비작업은 임금계산에서 제외됐다. 항공기 출발 후 기내에서 하는 일만 근무시간에 포함시켰다.

마크 카니 총리도 나서 “모든 노동자는 공정한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며 이에 대한 불합리성을 지적했고, 노동장관은 “법 위반 여부를 따져 보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승무원들의 파업에 대한 지지 여론이 높았다. 또한 노조의 강경한 태도에 정부 측 노사위원회(CIRB)도 ‘강 대 강’으로 맞서지는 않았다.

국민 피해냐, 파업권 보장이냐

정부는 그럼에도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서비스를 보호하기 위해 공권력의 개입이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특히 ‘강제중재’는 중립적인 제3자가 노사 양측의 주장을 듣고 최종 합의안을 결정하기 때문에 갈등을 신속하게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노조측은 정부의 개입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자의 파업권을 침해한다고 비판했다. 파업은 단체교섭이 장기간 지지부진할 때 노동자가 고용주를 상대로 가지는 가장 강력한 협상카드인데, 정부가 이를 강제로 중단시키면 협상 과정에서 균형이 무너진다는 주장이다.

재그밋 싱 전 신민당 대표는 “연방자유당 정부가 비겁하게도 노동자들을 깎아 내리는 행태를 계속 보이고 있다”면서 “정부가 기업의 요구에 굴복하기 시작하면 결국 그 대가는 캐나다 국민들이 치르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캐나다에서는 연방정부 외에 주정부 차원에서도 노동분쟁에 개입하거나 파업권을 제한하려는 시도가 여럿 있었다. 덕 포드 온타리오 주지사는 2022년 노동쟁의 관련 법안 28호를 도입하려다 노동계의 반발로 폐기했으며, 퀘벡주도 비슷한 89호 법안을 만들려 했으나 맥길대 교수협의회 등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무산됐다.

“또 개입하면 전국적 총파업”

캐나다 브록대학교에서 노동정치학을 연구하는 래리 새비지 교수는 ‘캐나다통신’과 인터뷰에서 “정부가 고용주에게 유리하게 판을 짜면 노조는 저항할 것”이라며 “노동자들은 법을 위반하는 한이 있더라도 협상을 통한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그들의 영향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에어캐나다 승무원들의 이번 파업은 노동계의 큰 승리이며, 연방정부가 앞으로 노동분쟁에 개입하는 방식을 재검토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부의 업무복귀 명령이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는 설명이다.

노동계의 분위기는 더 고무돼 있다. 캐나다노동연맹의 비 브루스케 회장은 “앞으로 고용주들은 더 이상 이러한 정부의 개입에 의존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자유당정부가 제107조를 너무 자주 사용한 것이 큰 실수였고, 이제는 좀 더 대담해진 노동운동과 마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루스케 회장은 “승무원 노조가 CIRB의 지시에 불복했다는 것은 사실상 제107조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것은 고용주가 노동자들과의 협상에서 더 나은 제안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미래에 노사위원회가 정부의 노동법 제107조 명령을 집행하기 위해 노조를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결국 노조의 더 큰 반발을 불러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른 노조들과 연대해 전국적 총파업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이다.

노조 연합체인 캐나다 노동연맹은 앞으로 제107조를 노동법에서 완전히 삭제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공공노조의 헨콕 위원장 역시 “자유로운 단체교섭권을 빼앗는 107조가 더 이상 노사협상에서 사용되지 않도록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용호 언론인 캐나다 토론토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