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기축통화 등 한국-일본은 달라
외환보유고, 일본 1조3242억달러 vs 한국 4163억달러
“이중 3500억달러 투자 결정권 미국에 넘기라는 건…”
미국과 관세 협상 후속 협의를 위해 방미 길에 올랐던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3박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19일 귀국했다.
여 본부장은 이견을 좁혔는지 묻는 질문에 “진행 중인 과정”이라고 말을 아끼면서 “한국과 일본은 다르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과 일본이 다르다는 부분을 여러가지 객관적 자료와 분석을 제시하고 최대한 설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과 미국은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각각 낮추고, 한국이 3500억달러(약 48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하는 내용으로 7월 무역 협상을 타결했다. 하지만 수익배분 등 구체적인 이행방안에 대해 이견을 보이며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며 미국과 협상을 타결했다. 이어 실무협의를 통해 대미 투자 결정 주도권을 미국이 행사하고, 투자 이익의 90%(투자금 회수 전에는 50%)를 미국에 넘기는 조건에 합의하는 내용의 MOU에 사인했다.
이에 일본은 16일부터 자동차 관세를 기존 27.5%에서 15%로 낮추면서 한국보다 10%p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일본과 같은 협정을 수용하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강하게 압박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우리 정부는 국익 관점에서 미국이 현재 주장하는 요구는 전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외환보유고는 1조3242억달러에 달하지만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4163억달러 수준이다. 우리가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의 84%에 달하는 규모인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 많은 금액을 투자하면서 투자주도권을 미국에 내어주고, 투자이익의 90%를 미국에 넘기라는 것은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라고 토로했다.
이어 “엄청난 규모의 펀드를 투자하면서 안전장치없이 미국의 요구대로 수용한다면 관세부과보다 국익에 더 큰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다른 정부 관계자는 “일본의 화폐는 국제간의 결제나 금융 거래의 기본이 되는 기축통화지만 한국의 화폐는 그렇지 않다”며 “대규모 대미 투자액의 경우 한국은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는 상황으로 이 역시 일본과 다른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우리정부는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달러의 대부분을 현금으로 투자하면 외환시장에 어려움이 닥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측에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요청하는 등 협상 세부사항을 하나하나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시한에 쫓기지 않고 국익 최우선 원칙하에서 지구전 전략을 펴는 모습이다.
하지만 한일 자동차가격이 역전되는 등 국내 자동차업계에 피해가 현실화됨에 따라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여 본부장은 자동차 관세와 관련해서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최대한 빨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공장 현장에서 미국 이민 당국이 한국인을 대거 구금했던 사태와 관련해서는 “미국 측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이해는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비자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한편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더 셰드’에서 열린 ‘2025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율을 현행 25%에서 15%로 낮출 수 있도록 한미 양국이 무역협상 후속 합의에 빨리 도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날 행사에서 올해 연결 매출액 성장률 목표를 연초 제시한 3.0~4.0%에서 5.0~6.0%로 상향했지만, 연결부문 영업이익률 목표는 관세 영향을 반영해 기존 7.0~8.0%에서 6.0~7.0%로 하향 조정했다.
무뇨스 사장은 “현대차는 지난 40년간 미국 사회의 일부였고 조지아주에선 15년 이상 사업을 운영해왔다”며 “조지아주 신규 공장은 조지아 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 개발 프로젝트로, 수천 가구에 장기적인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면서 지역 변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가 앞으로도 현대차의 미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는 이날 행사에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관세 등 복합위기 돌파를 위해 향후 5년간 77조3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