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손자병법

디폴트옵션 기본값 ‘출산영웅 특별세제지원’ 도입해야

2025-09-19 13:00:45 게재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기획재정부가 다시 재정경제부(재경부)라는 이름을 갖게 될 예정이다. 2000년 11월 당시 재경부가 정부부처 중 처음으로 증시활성화 대책으로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도입을 주장하고 2001년 증권연구원에 기업연금도입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2002년 4월에는 고용노동부 검토를 거쳐 그해 10월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기업연금도입 추진을 결정했다. 당시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계는 확정급여형(DB), 경영계는 DC형 도입을 주장하면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연금의 두바퀴인 수익률과 세제지원을 빼놓을 수 없다. 요즘 코스피가 3300선에 위치한 지금, 퇴직연금이 증시활성화와 국가 경제발전 동력의 숨은 거인임을 새 재경부는 되새겨야 한다. 세제지원정책의 주무부서이기 때문이다.

철도기관사이자 노동조합 위원장 출신인 김영훈 장관은 고용노동부의 약칭을 노동부로 변경했다. 김 장관은 퇴직연금 가입자인 노동자 출신으로 노동현장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퇴직연금이 노동자의 노후행복자산이자 자본시장의 기둥으로 역할을 하는 양날의 검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동안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은 직·간접으로 14차례나 개정됐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노동자들이 법개정을 발의하도록 분위기 조성한 적은 없었다. 병법은 장수가 아닌 병사도 알아야 한다는 구절처럼 노동자가 주체가 될 때 힘있는 제도로 거듭난다.

DC형의 핵심은 디폴트(Default) 옵션이다. 기본값(Default)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수익률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날 수 있다. 단순히 무위험 원금보장형에 치중한 안전자산 자체가 수익률 답보의 원인이자 연금의 기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안타까움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디폴트 옵션의 디폴트값 구체화해야

이에 새 재정부는 퇴직연금 특별세제를 만들어 자금흐름의 고인 물 현상을 개선해 디폴트옵션을 성장형 혼합형의 신상품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25년 전부터 주장했던 증시활성화와 직결되고 노동자들의 장기수익률을 높이는 길이다.

퇴직연금 가입자 중 고수익 실현한 가입자들은 나스닥100, S&P500 등 미국 대표지수형 상장지수펀드인 ETF 등에 투자한다. 특별한 고수들만이 아니라 수익률 제고에 관심있는 가입자들이 많이 나서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도록 해야 한다.

퇴직연금 특별세제를 만들어 안전판이 든든해지는 가운데 ‘타겟 데이트 펀드’(TDF)를 퇴직연금 안전자산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등의 논란 등은 불식돼야 한다. 안전자산 범주에 어떤 상품을 포함하느냐도 중요하지만 투자 내용과 성과 실현 중심으로 추진해 가입자들의 두려움을 적극 해소해야 한다.

특별세제지원으로 미국 등 글로벌 주요 선진국에서 퇴직연금 상품투자가 더욱 활발해져 또 다른 세제전쟁에서 새로운 국면전환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수수료다. 일반적으로 고수익 실현상품들은 금융사업자들의 많은 홍보와 수익실현 노력으로 수수료가 비싼 편이다. 30년 내외의 장기투자인 점을 고려해 전문가들과 수수료율, 장기간 종합누적 금액에 대한 비교가 꼼꼼히 이뤄져야 한다.

저출산, 퇴직연금의 지속 가능성 저해

퇴직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저해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저출산이다. 아무리 높은 수익률을 달성해도 다음 세대가 줄어들면 제도의 지속 가능성이 위태로워진다.

‘출산영웅 특별세제지원’을 제안한다. 직장가입자들의 출산율이 일반적으로 낮다는 지적이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목숨 바쳐 죽음으로서 영웅칭호를 받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누구나 살아가면서 인구를 늘리며 국가경제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건강한 직장인 부부들의 다자녀 출생을 세제혜택으로 연결해 디폴트옵션의 수익률 기본값을 확실히 받쳐주고 저출산 극복에 초저비용으로 대처해야 한다. 또한 증시활성화에 기폭제가 되도록 퇴직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경제발전에 실질적 기회의 문을 넓히는 양날의 검으로 쓰여야 한다.

퇴직연금운용의 효율성은 인공지능(AI) 시대 자율주행에 비유할 만하다. 하나하나 투자지시를 하지 않아도 알고리즘과 제도가 스스로 수익률을 최적으로 극대화하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자율주행 승용차에 탑승한다고 무조건 알아서 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탑승자가 목적지를 분명히 하고 필요사항을 입력하면 비로소 자율주행 기능이 발휘된다.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에서도 노사는 지혜롭게 협력해 금융사업자가 전력을 다하게 하고 가입자인 조합원들이 적극적 참여로 방향을 정한다면 디폴트옵션은 무위험 자산의 방치·조장이 아닌 수익률 향상의 자동항법장치가 될 것이다.

이영하

연금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