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청년일자리 비상’ 특효약은 없다

2025-09-23 13:00:02 게재

청년 일자리문제가 ‘위기’를 넘어 ‘비상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15~29세 청년층 취업자수가 21만9000명 감소했고, 청년층 고용률은 1년 전보다 1.6%p 떨어진 45.1%로 16개월 연속 하락했다. 전체 취업자수가 16만명 넘게 늘어난 가운데 청년층 일자리만 유독 줄어들고 있는 것이어서 충격적이다. 전체 일자리는 8개월 연속 10만명 이상 증가행진을 이어갔다. 고령층 일자리가 늘어난 덕분이다.

지난 8월 60세 이상 고령층의 취업자수는 전년보다 40만1000명 증가했고, 고령층 고용률도 47.9%로 전년 동월 대비 1.1%p 높아졌다. 청년층과 고령층의 ‘일자리 역전’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15~29세 청년층 고용률이 올해 3월부터 6개월 연속 60세 이상 고용률을 밑돌았다. 젊은 세대는 일할 곳이 없는데 법정 정년을 넘긴 고령층의 일자리만 크게 늘고 있으니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고령층 일자리 중 제대로 된 것은 많지 않다. 정부가 국민세금으로 급조한 ‘알바 형’ 공익활동 업무가 대부분이다.

위기 넘어 비상상황에 처한 청년일자리

정부는 즉각 ‘비상령’을 발동했다. 청년 대상 구직촉진수당을 월 50만원에서 60만원으로 인상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은 데 이어 대통령까지 ‘지원사격’에 나섰다. 지난 16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기업들에 ‘특별한 요청’을 내놓은 것이다. 이 대통령은 “기업들이 예전에는 좋은 자원을 뽑아서 교육하고 훈련했는데 요즘은 경력직만 뽑는다. 가혹한 측면이 있다”며 “우리 기업들에 특별한 요청을 드릴까 한다”고 말했다. 신입사원 채용을 늘려 달라는 얘기였다.

그만큼 상황이 다급하지만 이 정도의 정부대책과 대통령의 ‘특별 당부’에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문제가 훨씬 심각하고, 또 복잡하다. 무엇보다도 역대 모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청년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발동해 온 ‘대책’들의 성적표가 참담하다. ‘청년일자리 도약 장려금’ ‘청년 일 경험사업’ ‘청년도전 지원 사업’ ‘국민 취업지원제도’ 등 중앙 부처와 지자체가 시행하고 있는 청년 취업지원정책이 3000여개에 달하는 데도 청년들의 취업은 내리막길을 치닫고 있으니 말이다.

따져보면 당연한 결과다. 청년 일자리 자체가 줄고 있는데 단순히 청년들의 구직활동을 지원하는 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정부와 지자체들이 ‘뭔가 일을 하고 있다’는 생색을 내기 위해 국민 혈세와 예산만 축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차라리 이 대통령이 한 것처럼 기업들에 “청년채용을 늘려 달라”고 직접 요청하는 게 더 실질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제대로 된 효과를 바라기는 어렵다. 사회적 파장이 엄청났던 10년 전 사태가 방증이 될 수 있다. 2010년대 보수정부 시절 기업들은 “친기업 정책을 펼 테니 청년일자리를 늘려 달라”는 정부 요구 등을 반영해 신입사원 채용을 크게 늘렸다. 두산그룹은 한 해 채용규모를 49%나 늘리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2015년 충격적인 ‘20대 신입사원 명퇴 파동’이 일어났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경영위기에 몰린 두산인프라코어가 3000여명의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면서 갓 입사한 20대 사원들까지 포함시킨 것이었다. 청년일자리를 한방에 해결할 ‘특효약’이 있을 수 없음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문제의 근본 파고들어 해결책 찾아나가는 국정리더십 필요

청년일자리가 1년 반 가까이 연속해서 줄어들고 있고, 기업들이 예전의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없애고 경력직 충원으로 돌아선 근본이유를 찾아내 ‘원인 치료’를 하는 일이 급선무다. 긴말 할 것 없이 청년일자리 감소는 경기가 악화되고 있는 탓이다. 상승과 하강을 되풀이하는 경기주기(週期)를 정부가 바꿀 수는 없지만 산업과 일자리 생태계에 새살을 돋게 할 정책을 펼 수는 있다. 기업의 혁신과 창의력을 발목 잡는 규제를 제거하는 등의 실질적인 처방이 시급하다.

기업들이 ‘신입 공채’를 ‘경력직 수시 충원’으로 바꾼 배경과 원인도 올바로 짚어야 제대로 된 개선책을 기대할 수 있다. 기업들은 세계 최고수준의 ‘고용경직성’을 요인으로 꼽는다. 우리나라에서는 해고가 쉽지 않아 한번 채용하면 정년까지 안고 가야 하는데 정부와 여당은 현재 60세인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법안을 연내 확정하기로 했다. 일본이 한 것처럼 정년연장 대신 퇴직 후 재고용 형식으로 유연성을 갖게 해달라는 기업들 목소리는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런 현실에 눈감은 채 기업들에 ‘특별한 요청’을 한다고 해서 청년 일자리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문제의 근본을 파고들어 치열하게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국정리더십이 필요하다.

이학영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