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중심에서 아시아 공존으로 축 이동

2025-09-23 13:00:03 게재

미국, 동맹국에 과도한 투자와 양보 요구 … 한국, 위기 대응할 독립적 안정망 필요

지난 8월 이후 트럼프정부는 한국에게 15% 관세 조건으로 3500억달러를 요구하고 있으나 이재명 대통령은 무리한 요구라면서 수용하지 않고 있다. 현재 미국은 심각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의 압박 속에서 동맹국에 과도한 투자와 양보를 요구하며 사실상 비용 전가를 시도하고 있다.

이제 미국은 예전의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등장한 관세인상과 ‘미국 우선주의’ 외교로 말미암아 국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증대하고 있다. 약화된 미국의 경제력으로 인해 이제 달러는 ‘절대적 안전자산’이 아니다.

약달러 기조에 아시아 통화는 안정적

환율 추세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5년 8월에서 9월 중순까지 아시아 통화들과 달러 사이에선 대체로 달러 약세 흐름을 보였다.

한국 원화는 달러당 1400원대 초반에서 점진적으로 안정돼 1387원 부근까지 내려왔다. 위안화는 8월 말 7.13대에서 9월 중순 7.10 수준으로 내려왔다. 엔화는 8월 평균 약 147.6엔에서 9월 중순까지 대략 147엔 선을 유지하며 안정적 흐름이다. 동남아 통화와 인도 루피도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즉, 달러의 절대적 우위가 흔들리는 사이에 아시아 통화들은 안정성을 확보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동반강세 보이는 아시아 증시

한편, 2025년 들어 9월까지 아시아 주요 증시는 대체로 상승세를 보여 왔다. 일본 닛케이지수와 한국 코스피지수는 글로벌 반도체 인공지능(AI) 업종의 강세에 힘입어 9월에는 사상 최고가를 갱신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올 상반기 부동산 경기침체와 내수부진으로 부진했으나, 정부의 대규모 부양책과 소비 촉진정책 발표로 7~8월 급등해 최근 3년 내 최고점을 기록했다.

대만 가권지수는 TSMC를 비롯한 반도체 대표주의 강세에 힘입어 연초부터 꾸준히 상승, 9월 들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인도 증시는 IT·소비재 기업의 실적 호조와 내수 확장에 힘입어 강세를 이어가고 있어 2024년 9월 기록한 사상 최고치에 다시 근접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증시는 외국인 자금 유입과 제조업·소비 부문 회복세에 힘입어 사상최고치 수준으로 상승세를 유지하며, 아세안 경제권 전체가 동반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 스와프 협력과 정치 불안

이런 가운데 일본의 최근 행보는 아시아 금융·통화 협력의 방향성에 있어 시사점을 보여 준다. 2025년 5월 일본은 중국·한국·아세안과 함께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M) 스와프 네트워크 확대를 추진했다. 전염병이나 자연재해 시 긴급 자금 지원이 가능하도록 조건 없는 긴급대출 제도를 추가한 것이다. CMIM의 외환보유 스와프 풀은 총 2400억달러 규모로, 일본과 중국이 각각 768억 달러, 한국이 384억 달러, 아세안이 480억 달러를 분담하고 있다. 이는 역내 충격 대응 능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조치다.

한편 일본의 엔화 국제화 전략은 디지털 자산을 통한 새로운 길 찾기다. 일본은 2022년 6월에 ‘자금결제법’을 개정(23년 6월 시행)해 세계 최초로 스테이블 코인을 ‘전자결제수단’으로 추가했다. 이 법에선 은행이나 신탁회사 등 금융기관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는데, 스타트업 핀테크 기업인 JPYC(대표 오카베 노리타카)가 9월 안에 스테이블코인 ‘JPYC’ 발행을 추진 중이다. 엔화와 1:1로 가치가 연동되고 일본 국채와 예치금으로 담보되며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이 디지털 통화는 기관투자 기업결제 해외송금에 쓰이며 엔화 국제화의 새로운 도구로 기능할 전망이다.

세계적으로는 스테이블 코인 거래량이 올해 1/4분기에 신용카드 VISA 결제액을 넘었다는 분석도 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활용한 은행 경유 일반 송금은 200달러 송금에 평균(2013~19년) 17.5%의 수수료가 붙지만 블록체인 송금 경비는 거의 무료다.

게다가 일본 최대의 금융기관인 우편저축은행(예금잔고 190조엔)은 2026년부터 예금을 디지털 통화인 ‘토큰화 예금’으로 전환한 ‘DCHPY’를 발행할 계획이다. 다만 2025년 가을, 이시바 총리가 퇴임을 선언하면서 일본 정치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는 점이 문제다. 후임 총재·총리를 둘러싼 자민당 내부 권력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재정지출, 외환정책, 방위비 확대 등 주요 정책의 연속성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

중국 - 탈달러 전략 본격화

중국은 달러 중심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①무역결제에서 위안화 사용 확대 ②외환보유고 다변화 ③일대일로 금융 인프라 확산 ④디지털 위안화(e-CNY) 국제 실험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히 중국 인민은행은 e-CNY를 활용해 홍콩 통화관리국, 아랍에미리트 태국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함께 다국 중앙은행간 디지털화폐 연결 프로젝트인 ‘m-브리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무역 결제·송금에서 달러를 배제한 위안화 기반 실시간 정산을 시험하고 있다.

또한 해외 전시회·관광 결제에 e-CNY를 시범 도입하고 일부 원유·가스 거래에도 적용 가능성을 모색하며 디지털 위안화의 국제 결제 범위를 점진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특히 사우디 러시아 등과 원유·가스거래에서 위안화 결제 비중을 늘리며 에너지 시장에서 탈달러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인도 -새로운 협력의 축

인도 모디정권은 과거 친미적 경제협력 노선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의 관세갈등으로 균열이 생기며, 중국·러시아·아시아 각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인도는 브릭스 내 금융 협력 강화, 지역 통화스와프 논의, 디지털 결제 협력 확대 등을 통해 독자적 입지를 구축하려 한다. 예를 들어 인도 중앙은행은 2024년 6월부터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UAE 등 아시아 역내 국가들과 디지털 결제 시스템 및 국경 간 쌍방향 디지털 통화-인프라 협력 가능성을 추진하고 있다. IT·서비스 산업 경쟁력은 이러한 전략을 뒷받침하며 아시아 통화 협력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을 가능성이 크다.

동남아 - 생산기지와 자원 매력

동남아 국가들의 증시 활황은 글로벌 기업의 ‘차이나+1 전략’에 따른 제조업 투자 확대, 젊은 인구와 소비성장, 자원 수출 호조, 외국인 자금 유입이 결합한 결과다.

인도네시아의 니켈, 말레이시아의 LNG, 베트남의 전자·섬유산업, 태국의 자동차·배터리 부품 산업, 싱가포르의 금융·물류 허브 기능은 글로벌 공급망 변화의 최대 수혜로 꼽힌다.

아세안은 역내 무역·투자에서 외화 의존을 줄이고 금융안정을 높이기 위해 현지통화거래(LCT) 체계를 추진 중이다.

한국의 선택은

한국은 미국과 상설 통화 스와프 라인이 없어 위기 때마다 한시적 달러 라인에 의존해왔다. 지난 8월의 한미정상회담에서도 한국의 상설 통화 스와프 개설 요청을 미국이 거절했다고 한다. 최근 수년간 글로벌 금리상승 및 달러강세 흐름은 원화에 직접 압박으로 작용했고, 수출 중심 구조의 한국 경제는 환율 변동성에 특히 취약하다.

따라서 한국의 전략은 명확하다. 금융·통화 측면에서 미국 일변도를 다원화해 아시아 지역에서 협력 체제를 적극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한중 스와프 (4000억위안/70조원 : 560억달러 상당, 만기 25년 10월) 및 한일 스와프 (100억달러, 만기 26년 12월) 네트워크를 상설적인 체제로 확대,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CMIM 지분 확대, 원화 디지털화 실험, 스테이블 코인 등 디지털 자산 생태계 구축(이재명정부 123대 국정과제 48번), 금융정책 투명성 제고를 위한 세부 정책을 신속하게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통해 한국 스스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독립적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일본의 스와프 확장, 중국의 탈달러 전략, 인도의 아시아 협력 확대, 아세안의 역내 현지통화거래 추진 등은 모두 달러 일극 체제를 넘어서는 다원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찬우

일본경제연구센터 특임연구원 전 테이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