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해상풍력, 낙관론 앞서 정교한 한국형 전략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은 이미 시대적 과제가 된지 오래다. 대한민국 정부는 탄소중립 실현과 신성장동력 확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대규모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3면이 바다라는 우리의 지리적 이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해상풍력은 육상풍력이나 태양광 대비 높은 이용률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 역할을 수행할 잠재력을 지닌다. 더구나 해상풍력 발전소의 평균 이용률은 약 22~50%로, 육상풍력(22%)이나 태양광(15%)보다 높다.
2030년까지 14GW 규모의 설비 보급 목표와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지난 3월 제정된 ‘해상풍력특별법’은 산업계 전반에 큰 기대를 불어넣고 있다. 더구나 재생에너지 전환에 적극적인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업계도 발빠르게 나서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기저에는 기존 다른 에너지 기술들이 그랬듯 기술이 발전하고 경험과 규모가 축적되면 발전 단가가 하락해 경제성을 확보할 것이라는 ‘학습효과(Learning Effect)’에 기반한 낙관론이 자리한다.
해상풍력 앞선 영국 사례에서 배워야 할 것들
하지만 이러한 낙관론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연구도 발표되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해상풍력 시장을 개척한 영국이 지난 20년간 축적한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해상풍력 누적 설치 용량이 두 배가 될 때마다 설비 단위 비용이 오히려 8.4% 증가하는 ‘역학습효과’가 관찰된 것이다. 이는 설치 용량이 축적될수록 비용이 절감된다는 전통적인 통념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다.
물론 터빈 대형화와 같은 기술혁신이 견인한 순수한 학습효과로 인해 설비 단위 비용이 21% 낮아지는 긍정적 측면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비용이 상승한 핵심 요인은 사업이 확장되면서 풍력단지가 해안에서 더 멀고 수심이 깊은 고난도 환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는 거대한 기초 구조물에 필요한 강철의 양, 수십 km에 달하는 고가의 해저 케이블, 그리고 혹독한 해양 환경에서 기인한 설치 및 유지보수 비용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로 이어졌다. 결국 기술발전으로 인한 비용 절감 효과가 입지 조건 악화라는 장벽에 부딪혀 상쇄된 것이다.
영국의 경험은 한국의 해상풍력 미래 전략 수립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더욱 복합적이다. 광활한 갯벌과 큰 조수간만의 차를 지닌 서해의 연약 지반은 하부구조물의 안정성 확보에 막대한 비용을 요구한다. 복잡한 다도해와 높은 어업 밀도를 가진 남해는 기술적 난제 외에도 사회적 수용성 확보라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수심이 깊어 고정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동해안은 아직 기술 성숙도가 낮고 경제성 확보가 어려운 부유식 해상풍력이 유일한 대안이다.
이처럼 한국의 해양 환경은 단순히 규모의 경제와 기술 발전의 학습효과에만 기댈 수 없는 고유하고 복합적인 변수가 산재해 있다.
따라서 이제는 데이터에 기반해 정교한 한국형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 첫째, 수심 이격 거리 지질조건 파고 풍속 등 우리 바다의 고유한 해양환경 데이터를 정밀하게 반영한 한국형 비용 예측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 이는 개별 프로젝트의 사업 타당성 검토를 넘어 정부의 현실적인 보조금 정책과 합리적인 전력시장 제도를 설계하는 핵심 기반이 될 것이다.
둘째, 목표 지향적 연구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터빈 효율 개선과 같은 보편적 기술을 넘어 동해의 깊은 파도를 견디는 경제성 높은 부유체 모델, 서해의 연약 지반을 극복할 혁신적인 하부구조물 설계 및 시공 기술처럼 우리의 해양환경 특수성을 극복할 원천 기술 확보에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세계적인 조선 및 플랜트 역량과 결합해 미래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강력한 K-솔루션으로 발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해상풍력 특별법의 핵심인 계획입지제도를 내실화해야 한다. 정부 주도로 환경성, 경제성, 사회적 수용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적의 입지를 발굴하고 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개별 사업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를 분산하고 난개발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적 도구다.
해상풍력이 국가 핵심 에너지원이 되려면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자 대한민국 경제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제공할 기회다. 영국의 선행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가 마주한 바다의 도전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더욱 정교한 전략을 준비할 때 대한민국의 해상풍력은 흔들림 없는 국가 핵심 에너지원이자 미래 수출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