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의 미국현장 리포트
트럼프 반이민정책 상징된 ‘비인도적 구금시설’
지난 4일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이 합법 체류자를 포함한 300여명의 한국인 노동자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하면서 다시 한번 트럼프정부의 무차별적인 이민단속의 무자비함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또한 이들이 일주일 동안 갇혀 있었던 구금시설의 반인권적인 상황이 인터뷰를 통해 폭로되면서 이민자 구금 시설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유린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조지아 구금시설의 한국인 인권유린
현재 미국에서 운영되는 이민자 구금 시설 200여 곳 중 대부분은 정부기관이 아닌 영리업체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ICE에 구금된 이민자 중 거의 90%가 민간기업 소유 시설에 수감되어 있다. 이들 중 가장 큰 기업이 GEO그룹과 코어시빅(CoreCivic)이다. 한국 노동자들이 수감된 곳 또한 GEO 그룹이 운영하는 시설이었다. 모든 구금 시설이 법무부 산하 국가 시설인 한국과는 상황이 많이 다른 미국이다.
정부의 위탁을 받은 민간 구금시설이 트럼프정부 하에서 처음 생긴 것은 아니다. 최초의 사설 이민자 구금 시설은 1983년 이민 당국이 코어시빅에게 86명의 이민자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한달 안에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GEO 그룹 등 다른 업체들도 이 분야에 뛰어들면서 사설 이민 구치소라는 신종 업종이 붐을 이루게 되었다.
민간 구금시설의 인권 유린 상황이 계속 보고되자 2000년 당시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민간 기업들과의 정부 계약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바이든정권 하에서도 민간 기업과의 정부 계약은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었다.
지난해 11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지오그룹(GEO)과 코어시빅 주식 가격이 치솟았다. 연간 100만명 추방을 목표로 하고 있는 트럼프정부의 대대적인 이민단속 어젠다 수행에 민간 구금 시설 확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 1월 GEO그룹 대변인은 이민자들을 수감 감시 수송 하는데 7000만달러를 투자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기업들은 트럼프의 이민자 대규모 추방정책을 더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전대미문의 성장기회라고 여기고 있다. 실제 8월에 나온 2분기 실적 발표에 따르면 GEO 그룹과 코어시빅 경영진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100% 이상 증가했다.
연행 과정에서 쇠사슬 사용, 제대로 누울 수도 없는 과밀 수용, 누수와 고장난 변기, 벌레와 곰팡이, 하수구 냄새가 나는 식수, 입에 댈 수 없는 음식 제공, 변호사 접견 방해, 며칠씩 샤워도 할 수 없고, 비누, 칫솔, 생리대, 화장지 같은 기본 위생용품 부족….
풀려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본 구금센터의 상황은 21세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미국의 인권단체들은 민간회사가 운영하는 구금 센터의 인권 유린 상황에 대해 우려를 제기해왔다. 애리조나주 ‘플로렌스 이민자 및 난민 권리 프로젝트’의 로라 세인트존 변호사는 영리 추구라는 기업의 생리 상 비용을 절약해 최대한의 이윤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의료와 음식 등 기본 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말한다.
수감자들에게 제공되지 않은 의료를 비롯한 기본 서비스, 구매되지 않은 모든 식품과 물품들은 유치장 상황이 너무 나빠서 정부가 계약을 취소하거나 소송으로 인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기 전까지는 비용절감으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민정책 강화로 수감자 늘어 환경 더 열악
특히 트럼프정권 하에서 민간업체 소유 시설에 구금된 사람들의 수가 갑자기 많아짐에 따라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매일 3000명 체포라는 ICE 목표 달성에 대한 압력으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열악했던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6월 중순 기준 5만6000명 이상의 이민자가 억류되어 있는데, 이는 현재 수용 가능 인력 4만1000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사설업체 경영진들은 시설 환경 상태를 악화시키지 않고도 수용 가능 인원보다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이민단속이 가속화 될수록 구금시설의 상황은 더 나빠질 전망이다. 한 이민변호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민변호사로 일한 20년 동안 지켜 본 상황 중 지금이 가장 끔찍한 최악이라고 토로했다.
열악한 상황이 계속 되면서 수감 중 사망하는 희생자들도 늘고 있다. 지금까지 보도된 경우들을 보면 수용자에게 필요한 의료품이 지급되지 않고 응급상황에 대한 대처 매뉴얼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인권단체와 변호사들은 구금 시스템 내부의 악화된 조건이 사망자 증가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 예를 들면 지난 4월 25일 GEO그룹이 운영하는 플로리다에 위치한 사설 구금센터에서 한 수감자가 갑자기 숨졌다. 두달 반 이상 수감 중이었던 40대의 아이티 출신 여성 마리 블레이즈는 숨지기 전 몇시간 동안 가슴 통증을 호소했지만 구치소 측은 아무런 응급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의식을 잃은 그녀를 발견한 다른 수감자들이 도와달라고 소리쳤지만 이 또한 무시했다. 30분 이상이 지난 후 구급차가 도착 했을때 그녀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다른 수감자는 정신 건강 치료를 요청했다는 이유로 독방에 갇히는 처벌을 받았다고 말했다.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가 최근 발표한 92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는 “이민자 구금 시설에 갇힌 사람들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있다”고 적었다.
이런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정부는 이민자 구금을 감독하는 감시기관을 대폭 삭감하고 구금시설에 대한 모니터링 횟수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ICE 국장 대행은 이민자 추방을 비즈니스처럼 다루는데 더 익숙해져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구금시설 등 이민자 추방 시스템이 “24시간 내에 제품을 배송하는 아마존”처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규모 추방정책에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는 정부와 사람 가두는 것을 돈벌이 수단으로 하는 기업 간의 기묘한 파트너십이 당분간 계속 유지될 전망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시설 상황도 다르지 않아
정부가 직접 관리 운영하는 이민 구금 시설의 상황도 수용자에 대한 의료 방치와 기타 비인도적인 환경 등 사설 구금센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플로리다주가 에버글레이즈 습지 한가운데에 최근 건설한 ‘앨리게이터 알카트라즈(Alligator Alcatraz)’ 유치장이 그 대표적이다. 이 명칭은 미국에서 탈출 불가능한 감옥으로 악명 높았던 샌프란시스코 알카트라즈 섬 감옥과 플로리다 늪지대의 상징인 악어(alligator)를 결합해 만들었다.
에버글레이즈 늪지대에는 악어와 비단뱀이 대규모로 서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토안보부는 소셜미디어(SNS) 공식 계정에 수용소 철창 밖에서 ICE 모자를 쓴 채 줄지어 선 악어떼 사진을 올리면서 ‘곧 출시된다! 탈출 불가능한 자연이 만든 감옥’이라는 설명을 추가했다.
트럼프 또한 직접 앨리게이터 알카드라즈을 방문해 이 시설이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효과적인 구금시설이라고 추켜세우면서 “탈출하려는 자가 있다면 도주법을 알려주겠다”며 “악어를 만나면 똑바로 달아나지 말고 지그재그로 뛰어라”라고 말하면서 조롱했다. 트럼프는 “이곳을 빠져나가는 유일한 길은 추방”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연간 100만명의 이민자 추방이라는 트럼프정부의 목표가 단속만으로 달성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구금 시설의 상황을 더 열악하게 만들어 공포 분위기 속에 사람들이 자진 출국을 하도록 유도하는 면도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