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기로에 선 말레이시아 반도체 산업

2025-09-26 13:00:15 게재

수출 흔들리자 전체 경제성과 낮아져 … 다국적 기업이 지배하는 구조가 약점

개발도상국이 주요산업을 한 기업, 특히 다국적기업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말레이시아가 보여준다. 개발도상국이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인력 육성, 기업가 정신 함양 등 선진기술의 흡수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스카이라인 전경. 로이터=연합뉴스

말레이시아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아세안에서 가장 경제발전 단계가 높다. 풍부한 1차 자원을 기반으로 1970년 초부터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여 공업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역동성은 낮아졌고, 성장률도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 더 낮아졌다. 저성장 기조는 최근까지 계속되어 올해 2/4분기 성장률은 지난해 동기 대비 4.4%에 그쳤다. 이는 베트남 8.0%, 인도네시아 5.1% 그리고 필리핀 5.5%보다 훨씬 낮은 성과다.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국내외에 이름이 높은 안와르 수상은 국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고, 특히 올해는 아세안 의장국을 맡아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런 안와르 수상에게 낮은 경제적 성과는 달가운 것이 아니다.

경제 성과의 부진은 수출경쟁력의 하락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의 수출은 2000년만 해도 베트남의 6.8배에 이르렀으나 2010년에는 2.7배, 2015년 1.2배 그리고 2024년 현재 오히려 베트남보다 작아졌다. 지난해 5.8% 성장했던 수출은 올해 8월말 누계로 3.9% 성장해 더 낮아졌다. 무역수지 흑자도 2022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수출에서 전기전자제품은 2025년 8월 현재 총수출의 42.2%, 제조상품의 50.1를 차지한다. 전기전자 제품 중에서 반도체가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전기전자 산업, 그 중에서도 반도체가 말레이시아의 수출성과, 그리고 경제적 성과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기전자제품은 1980년대 이후 계속 높아져 2000년에는 제조상품의 72.5%까지 높아져, 총수출과 경제성장을 견인했으나, 이후 감소하여 2015~2020년 기간에는 45% 수준으로 낮아졌다. 올해 8월까지는 50.1%로 증가했는데, 미중갈등의 영향 때문이다. 최근 전기전자 제품의 수출비중이 다시 증가하는 것 같지만 총수출 증가율이 낮았다는 점에서 전기전자 산업의 고도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도체 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

말레이시아의 제조업은 다국적기업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외자기업은 2022년 말 기준 3056개로 92만명 이상을 고용하면서 GDP의 17.7%를 생산하고 있다. 제조업에 국한하면 외자기업은 생산의 43.3%를 담당한다.

외자기업은 수출입에서 31~32%를 담당하고 있다. 말레이시아가 1차 자원 강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기전자 산업 등 근대 수출부문은 외자기업이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기전자 산업의 중심인 반도체 산업은 1972년 인텔이 페낭에서 문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인텔에 이어 내셔널 세미컨덕터, HP, AMD, 보쉬, 클라리언. 리트로닉스, 히타치 등이 페낭에 입주하여 오늘날 페낭을 반도체 중심지역으로 변모시켰다. 이들을 중심으로 페낭은 반도체 기업들의 집적지가 되었고, 말레이시아는 세계 6위의 반도체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의 양적 성장과는 달리 질적인 성장은 미흡했다. 말레이시아는 반도체 후공정 즉 테스트와 패키징으로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고 있다. 반도체 기술의 급격한 진보로 한국, 대만, 싱가포르, 중국의 반도체 성장과 함께 말레이시아의 국제적 위상은 점진적으로 하락했다. 한 때는 같은 처지에 있던 옆 동네 싱가포르가 반도체 밸류체인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는데 비해 반도체 부문의 높은 경제의존도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시아는 이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고, 이는 2000년 이후 전기전자 수출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한 원인이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트럼프 1기 때 미중 갈등이 심해지면서 중국에서 반도체 다국적기업들이 말레이시아로 입지를 이전했고, 가존 반도체 기업들도 투자를 확대했다. 말레이시아의 반도체 산업이 다시 한번 중흥의 기회를 맞는 듯했다. 초기 진출 멤버인 AMD는 지난 8월 말 대규모의 디자인 랩을 완공했다. 인텔도 2021년부터 페낭에 70억달러를 투자해 칩 패키징 및 테스트 시설을 건설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이외 지역에 인텔이 건설하는 최초의 3D 칩 패키징 설비인데, 말레이시아 입장에서는 최초의 300mm 웨이퍼 가공 설비로 알려졌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인텔은 600명의 엔지니어를 미국으로 보내 1년 간의 기술훈련을 쌓도록 했다. 이들은 인텔 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경제의 향후 웨이퍼 가공과 첨단 패키징 산업의 씨앗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이러한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정부는 2024년 반도체 산업에서 말레이시아의 국제적 위상을 중급 테스트 및 조립국가에서 첨단 웨이퍼 가공 및 디자인 허브로 전환시킨다는 계획을 담은 국가 ‘반도체 전략(NSS) 2030’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첨단 패키징, IC 디자인, 웨이퍼 가공 및 제조장비 등에 5000억 링깃을 투자하고, 디자인과 첨단 패키징 분야에서 최대 10억달러의 매출을 달성하는 10개의 순수 말레이시아 기업을 육성하기로 했다.

또한 세계적 대학과 기업의 R&D 센터 등을 유치하여 글로벌 반도체 R&D 허브로 거듭나고, 6만명의 고기술 엔지니어를 육성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직접 250억링깃을 배분하기로 했다.

인텔사의 부진이 미친 부정적 여파

그러나 말레이시아 반도체 산업 고도화 계획에 예기치 않은 도전이 등장했다. 한 때 전기전자 부문 수출의 40%를 담당하기도 한 인텔이 삼성전자, TSMC, 엔비디아 등에 밀려 쇠락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국제경쟁에 밀린 인텔은 다시 인텔을 위대하게라는 프젝트를 추진하면서 웨이퍼 가공서비스 공급자로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재무상태가 악화되면서 2025년 한해에만 2만5000명의 종업원을 해고할 계획이다. 1만4000명에 달하는 말레이시아의 종업원도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우려는 인텔이 진행하고 있는 대규모 패키징 시설 건설의 불투명한 미래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2024년 말에 가동을 해야 했는데, 지난해 3분기에 이미 자금조달 문제로 프로젝트가 중단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러한 소문은 말레이시아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지난 6월 페낭주 당국과 산업무역부에서 각각 인텔과 접촉한 것 같지만 뚜렷한 답을 얻은 것 같지는 않다.

인텔 측은 프로젝트를 중단하지는 않겠지만, 시장환경과 설비가동률의 최적화 노력에 프로젝트가 달려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인텔 스스로도 90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는 상황에서 미래를 확실하게 전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올해 3월 인텔의 CEO로 산출된 립부 탄(Lip-Bu Tan)이 말레이시아 출신 화교라는 점을 자주 거론하고 있는데, 이것이 구원책이 될지 것 같지는 않다. 인텔의 투자가 중단된다면 웨이퍼 가공과 첨단 패키징 분야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겨루겠다는 말레이시아의 희망은 실현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인텔이 돈을 쏟아 부어 육성한 말레이시아 기술자들도 해고되거나 미국으로 재배치될 수 있다.

안와르 수상은 7월 아세안 반도체 회의에서 “말레이시아인에 의한 반도체 산업”을 주제로 연설을 했는데,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현지 기업이 일부 후공정 분야에 참여하는 수준으로는 첨단 웨이퍼 가공 등에서 말레이시아인이 주도하는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전형적인 자본집약적 산업이고, NSS에서 정부가 투자겠다는 금액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한 해 투자금액에도 못미치는 250억링깃 정도에 불과하다.

말레이시아가 오랜 반도체 산업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계속 후공정에 머물러야 했던 이유는 고급인력 부족 때문이었다. 말레이시아보다 더 늦게 반도체를 시작했던 대만이, 그리고 유사한 분야에서 말레이시아와 경쟁했던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를 앞선 것은 인적 자원 육성에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나아가 자국의 기업인이 창조적 혁신을 통해 새로운 기술의 사다리를 올라가야 했지만 말레이시아는 외자기업에 과도하게 의존함으로써 하청기지에 머물고 말았다.

개발도상국이 주요산업을 한 기업, 특히 다국적기업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말레이시아가 보여준다. 개발도상국이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인력 육성, 기업가 정신 함양 등 선진기술의 흡수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박번순

아세아문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