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이시바, 106일간의 브로맨스 일단락
G7정상회의 첫 만남 후 부산에서 3번째 회담
“미래 지향” “역사 직시” 메시지 내며 ‘훈풍’
이시바 후임에 극우 인사 거론 … 양국 시험대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9월 30일 부산에서 마지막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때인 지난 6월 17일 첫 만남 후 106일 간 ‘브로맨스’를 이어가며 양국 관계의 훈풍을 주도했다. 악순환만 계속되던 한일관계를 선순환 쪽으로 돌려놓으려는 양 정상의 공감대 덕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곧 퇴임하는 이시바 총리 후임자로 극우 인사들이 거론된다는 점에서 한일관계는 다시 한번 시험대에 설 가능성이 높다.
두 정상은 이날 부산 해운대구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서 만나 76분간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이시바 총리 도착 전 이 대통령은 건물 앞에 나와 기다리다가 이시바 총리가 차에서 내리자 반갑게 악수를 하며 손을 맞잡았다.
이시바 총리의 방문 성격은 실무방문이지만 예우는 ‘국빈급’이었다.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한 취타대와 전통 의장대가 도열해 이시바 총리를 맞이했고, 두 정상은 회담 외에도 십이장생도 관람, 친교 산책, 만찬 등을 함께하며 화합을 다졌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회담 후 브리핑을 통해 양 정상이 급변하는 세계 무역 질서에 함께 대응하자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밝혔다. 특히 양 정상은 ‘한일 셔틀외교’를 활성화해 양국 관계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자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이같은 양 정상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지난 6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첫 한일정상회담, 지난 달 23일 일본에서 열린 두번째 정상회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정부 당시 경색됐던 한일관계가 양 정상간의 화합 모드에 힘입어 분위기 전환에 성공한 셈이다.
다만 양국간의 가장 예민한 문제인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뚜렷한 진전이 없다는 점은 한계다. 이 대통령은 이날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 지향적인 협력을 계속해야 한다”라며 “양국 간 협력의 성과가 축적되면 그 성과가 대화에 있어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이시바 총리는 회담 후 일본 기자들과 만나 “다른 나라이므로 인식 차이가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역사를 직시하는 용기, 성실함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시바 총리는 “다음 정권에 바라는 것도 이 관계를 불가역적으로 되돌리지 말고 발전적으로 추진해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시바 총리는 기존 일본 정상들에 비해 과거사 문제에 전향적인 입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통령도 과거사 문제와 양국 협력을 분리하는 투트랙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시바 총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지금의 훈훈한 기조의 한일관계가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일관계의 진정한 시험대는 이시바 총리 퇴임 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일본에선 10월 4일 자민당 총재 선거, 같은 달 14일쯤 총리 지명 선거를 치를 것으로 알려졌다. 유력 후보군으로는 자민당 내 극우의 대표주자로 알려진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야스쿠니 신사 참배’ 전력이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등이 거론된다.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은 1일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번 한일정상회담을 평가하며 “(양국이) 좋은 관계가 되는 디딤돌을 놨다”면서 “과거에는 한미일 3국 관계에서 미국과 일본이 가깝게 지내면서 일본이 한국을 이간질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엔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막 나가서 오히려 한일 간에 협력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시바 총리의 후임 관련해선 “조금 걱정은 된다”면서도 “(이 대통령이) 위안부와 강제노동 문제에 대해서 기존 합의를 지키겠다고 했기 때문에 새 총리가 등장하더라도 과거사 문제를 일부러 들춰서 잘 나가는 관계를 나쁘게 하지 말자는 게 일본 우파들의 생각”이라고 전망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