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원의 일본 톺아보기
한국에 있고 일본에 없는 것, 일본에 있고 한국에 없는 것
우리나라와 일본은 가까운 이웃이다. 사회경제적으로도 닮은 점이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있지만 일본에 없는 것도 있다. 반대로 일본에 있지만 우리나라에 없는 것도 있다. 물론 여기서 있다 없다는 100 대 0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70대 30일 것이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있고 없는 점을 살펴보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할 뿐 아니라 자기 나라를 깊이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권력도 나누는 일본, 경제도 독식하는 한국
우리나라에 있고 일본에 없는 것은 ‘독식(獨食)’이다. 승자독식, 즉 ‘winner-takes-all’이다. 독식이 자리잡은 사회에서는 승패를 가르는 경쟁이 치열해진다. 지난 정권은 헌법 위반과 국민 저항으로 무너졌지만 5년마다 치르는 대통령선거가 얼마나 치열한지는 우리 모두 경험하는 바다. 이런 치열함이 일본에는 없다.
마침 일본은 자민당총재 선거가 한창이다. 이번 토요일인 10월 4일에 투개표되는데, 의원표 295표와 지방표 295표, 합계 590표로 총재를 선출한다. 현재 고이즈미 신지로씨와 다카이치 사나에씨가 선두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만약 고이즈미씨가 총재로 선출될 경우 당의 두번째 직위인 간사장 후보로 다카이치씨가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좋게 보면 너그럽게 패자를 품는 것이고 나쁘게 보면 교활하게 패자의 이반을 막는 것이지만, 어쩄든 일본에서는 승자가 권력과 자원을 독식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우리는 정치만 독식하는 게 아니라 경제사회도 독식한다. 예를 들어 ‘포춘 글로벌 500’에 포함되는 15개 내외의 기업 매출액이 우리 GDP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경제 생태계가 초대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의 하나는 이들이 고용하는 사람 수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 종업원 250명 이상으로 범위를 넓혀도 이른바 대기업이 고용하는 사람의 비율은 15%가 채 안된다. 반면 일본은 40%를 넘는다.
이러니 우리는 이른바 일류기업에 취직한 순간 승자가 된다. 고임금, 높은 복지 혜택에 사회적 위신도 크다. 일본도 유럽에 비해 기업규모별 임금격차가 크지만 우리에 비할 바 못 된다. 이러니 초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취직과 그 관문인 대학입시에 사활을 걸게 된다. 입시경쟁에 치이고 취직경쟁에 피폐해진 청년들은 패자(loser)가 되어 중소기업을 전전하거나 은둔하거나 심할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최고임은 익히 알려지 있지 않은가?
경제사회의 독식 구조는 이런 거시적 측면에 한정되지 않는다. 정부나 기업의 내부 구조도 독식이 기본이다. 비전이나 전략 혹은 파벌 간에 ‘친〇〇’ ‘반〇〇’으로 나뉘어 파워게임을 벌이고 승자가 모든 권력을 행사한다. 이는 많은 경우 권위주의를 조장한다. 내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밝은 눈’을 갖고 ‘줄’을 잘 서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라 해도 일단 조직에 몸담으면 ‘젊은 꼰대’로 변모하는 이유의 일단이 여기에 있다.
그러면 문화는 어떤가. 체육이나 예술・예능 쪽도 사정은 비슷하다. 우리는 손흥민 선수의 공격 포인트에 환호하고 K-팝, K-무비에 열광한다. 이들은 명실상부한 ‘스타'로 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히어로/히로인이 돌출하는 반면, 그 저변이 약하다는 점 또한 인정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일본은 거의 모든 고등학교에 축구부 야구부 육상부가 있고 대다수 고교에 합창부 관현악부 미술부가 존재한다. 이런 활동에 관심을 가진 청년들은 스타나 프로가 되지 않더라도 직업을 갖고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육상 선수팀을 보유・육성하는 기업만 해도 수백에 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스타가 되지 못하면 많은 이들이 “루저”로 고달픈 삶을 영위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이나미즘 살리되 독식 부작용 줄이기
지금껏 우리나라가 독식한다는 걸 봐 왔지만 이는 사실(fact)에 불과하다. 독식이 좋고 그른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독식은 이긴 경우 보수가 크기 때문에 경쟁이 촉진된다. 그리고 이긴 자 뜻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도 신속해진다. 다음 단계의 경쟁, 더 큰 보수를 향한 위험감수(risk-taking) 행동도 활발해진다. 이것들이 우리나라의 다이나미즘을 만들어냈다. 가까운 예로 이재명정부는 내년에 AI 예산을 10조1000억원 편성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이런 대담한 일은 가능치 않다.
과제는 다이나미즘은 살리되 독식의 부작용을 줄이는 것이다. 한번 패자는 영원한 패자라고 한다면 누가 이를 용납하겠는가. 이미 우리는 그 예를 미국에서 본다. 패자로 전락한 노동자들이 이에 반감을 품고 MAGA나 반이민으로 ‘전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작용은 어떻게 감소시킬 수 있는가. 선택지의 하나는, 승자의 독식을 완화해 예를 들어 명예는 독차지하더라도 부는 사회적으로 더 많이 환원되도록 하는 것이다. 둘은, 패자의 소득과 명예를 더 올려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셋은, 승자와 패자 가운데에 중간층을 형성하고 계층간 이동이 원활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 중 무엇을 선택하든 우리 사회의 에너지를 결집해 돌파구를 찾아야만 한다.
일본에 있고 우리나라에 없는 또 다른 대표적인 것은 ‘배려’다. 일상 생활에서부터 짚어보자. 얼마 전 일본 사람과 저녁을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은퇴한 분 둘, 젊은 사람 하나와 같이였다. 필자가 현역이고 월급도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다고 생각해 식사비를 부담했다. 이렇게 ‘쏘는’ 것은 우리에겐 매우 익숙하다. 일본에 사는 필자로서도 ‘n분의 1’만 고집하고 쏠 줄 모르는 일본 사람들에게 쩨쩨하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은퇴한 분께 꾸지람을 들었다. 비록 은퇴는 했더라도 남에게 신세는 지기 싫은데, 그런 마음을 배려해 주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이를 듣고 크게 깨달았다. n분의 1이 일본에서 습관화된 것은 식사든 행사든 참가자가 돈에 상관 없이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결과라는 것을.
기업도 노동자들도 배려하는 일본 문화
일본의 경영자는 우리나라 경영자에 비해 노동자를 배려한다. 경영이 힘들더라도 함부로 해고하지 않고 또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는 기업과 기업간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최근에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이른바 하청단가 후려치기를 당하는 기업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반면 일본의 경우 부당한 단가 후려치기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을 권고한 케이스는 요 20년간 4건에 불과하다. 물론 일본도 하청단가를 인하하지만 이는 원하청간 협력으로 일궈낸 생산성향상분의 상호분배라는 측면이 있어 우리와는 사정이 좀 다르다.
흥미로운 것은 노동자도 서로를 배려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도요타자동차가 실적이 좋아 도요타자동차노동조합 입장에서는 큰 폭의 임금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도요타차노조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노사협조적인 성격이 크게 작용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도요타차노조는 도요타차의 자회사/협력회사의 노조와 함께 연합단체인 도요타노련을 결성하고 있는데, 도요타노조가 큰 폭으로 임금을 올리면 노련내의 다른 노조들이 이에 발맞추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조합원간 격차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강한 조합이 우선 획득하고 보자는 경향이 크다. 이를 통해 비록 자기 조합원의 노동조건을 향상시켜 왔다 할지라도 자기보다 약한 조합원들에 대한 배려는 부족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독식을 내재화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배려를 배우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 않을까? 인구 자체가 줄어드는 마당에 격차와 대립만을 내세운 채 지속가능하기는 용이치 않다. ‘공동선’의 모색이 절실하다.
공공정책연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