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청년의 분노, ‘극우화’ 아닌 ‘배신’의 산물

2025-10-02 13:00:09 게재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청년들이 ‘극우화’되었다고 낙인찍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맥락을 무시한 사실 왜곡에 불과하다. 청년들의 변심은 극우화가 아니라 기성세대, 특히 586의 배신이 가져온 결과다.

먼저 청년 세대 투표율을 살펴보자.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기반인 40~50대는 제16대 대선 당시 20~30대 청년이었다. 당시 그들의 평균 투표율은 62.2%였다. 반면 20대 대선에서 20~30대의 평균 투표율은 70.9%로 크게 높아졌다. 특히 2010년대 이후 투표율을 끌어올린 주력세대는 바로 청년들이었다. 이처럼 높은 정치 참여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의 기대는 번번이 배신당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지난 20여 년간 청년층 투표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 2004년 총선 직전 설화 사건을 시작으로 청년을 향한 실언이 끊이지 않은 것 또한 이러한 몰이해의 산물이다. 결국, 진보 성향이 뚜렷했던 청년들의 표심은 20대 대선에서 결정적인 변화를 보였다.

출구조사 기준으로 18대 대선에서 20대의 문재인 후보 지지율은 65.8%에 달했다. 20대 대선에서 30대가 된 그들의 이재명 후보 지지율은 46.3%였다. 불과 10년 만에 10명 중 3명이 등을 돌린 셈이다. 청년 세대의 이러한 급격한 변심은 단순한 이념 전향이 아니라 정치적 배신에 대한 심판이었다.

촛불혁명의 주역이었던 청년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을 뜨겁게 지지했다. 문 대통령은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약속했지만, 청년들에게 돌아온 것은 실망과 배신감뿐이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배신감도 클 수밖에 없었다. 약속했던 기회의 평등은 조국 전 장관 사건을 거치며 ‘내로남불’의 대명사로 변질됐다. 이 사건을 통해 실력보다 부모의 배경이 더 영향력 있다는 현실이 드러났고, 청년들은 큰 좌절을 맛봤다.

과정의 공정도 소위 ‘인국공 사태’에서 무너졌다. 치열한 경쟁 끝에 정규직을 꿈꾸며 고군분투하던 청년들은 졸속으로 진행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박탈감을 느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청년들의 분노를 끝내 다독이지 못했다.

결과의 정의는 임기 내내 이어진 집값 폭등이 치명적이었다. 평생 모아도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현실 앞에서 청년들은 절망했고, “이생망”이라는 자조가 일상이 되었다. 청년들은 불평등·불공정·부정의의 삼중고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그런데도 기성 정치권은 책임지기는커녕 오히려 청년들에게 화살을 돌리며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그렇게 누적된 청년들의 분노는 결국 등을 돌려 보수정당을 향했다. 이는 보수 이념에 끌려서가 아니다. 바로 진보의 위선과 배신에 대한 정치적 심판이었다. 청년들의 이러한 선택을 두고 ‘극우화’라고 폄훼하기 전에 그 원인을 제공한 기성세대의 자기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더 이상 청년들에게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OECD 평균의 1.5배에 달하는 세계 최고의 학력을 갖춘 청년들이 느끼는 좌절은 한국 사회 전체의 경고음이다. 인구절벽·지역소멸이라는 구조적 모순의 핵심인 청년들부터 구해야 한다. 특히 남녀로 편을 갈라 갈등을 부추기는 행태는 철저히 지양해야 한다. 남녀 갈등은 누구도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도 안 된다. 청년 공통의 의제에 집중해 실질적인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 청년을 외면하는 정치에 미래는 없다. 청년의 분노는 ‘극우화’가 아니라 ‘배신’의 결과다. 청년을 잃으면 미래를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