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전 칼럼
한국 보수정치, 회복 가능한가
한국의 보수정치가 위기에 빠졌다. 집권 여당이었던 보수당 국민의힘은 아직도 계엄에 대한 찬반 입장을 정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정당으로서 정치적 도덕성에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정당의 실패가 아니다. 한국 보수세력의 누적된 구조적 결함이 병증으로 드러난 현상이다. 권위주의, 리더십의 세대교체 실패, 극우 포퓰리즘, 이념적 정체성 붕괴 등이 한꺼번에 병증으로 드러났다.
일반적으로 보수의 기본적 가치는 3가지로 정의한다. 보수주의는 사회를 전통과 질서의 틀 안에서 안정을 유지한다. 국가권력의 제한적 행사와 시장경제를 지향한다. 시민사회의 자유와 책임, 역할을 엄격히 한다.
그러나 한국 보수는 반헌법적 비상계엄으로 이 같은 본연의 정체성을 버렸다. 경찰과 검찰이라는 공권력, 국가를 방위하는 군을 정치권력 강화에 동원했다. 정치적 실패에 대해서도 책임 회피로 민주주의를 퇴행시켰다. 보수당으로서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국 보수의 뿌리와 몸통을 성찰해야 위기의 실체를 알 수 있다. 그 뿌리는 해방 이후 친일 관료세력을 자양분으로 삼았다. 그 몸통은 군사 엘리트그룹과 결합된 관료와 산업자본으로 세워졌다. 박정희정권 시기에 군이 주축이 된 국가 주도의 산업화와 권위주의 정치가 결합한 것이다. 여기에 해방 이후 냉전기의 반공주의를 보수정치의 가치로 삼았다. 이러한 보수주의 모델은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권위주의 체제로 자리 잡았다. 민주화 이후에도 ‘안정’과 ‘성장’을 기치로 시민사회와 대립했다.
한국의 보수 ‘보수적 개혁’ 정신 상실
비상계엄은 한국 보수정치의 권위주의적 유산의 재현이다. 국민의힘이 권력 유지 논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권력을 잃고도 주권자인 시민사회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국민의힘은 ‘자유와 질서의 균형자’라는 보수정당 본연의 가치조차 잃었다. ‘권위주의의 잔재 세력’이라는 사회적 낙인만 갈수록 깊게 새겨지고 있다.
세계적인 보수주의 노선에서도 이탈했다. 보수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는 저서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보수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 질서를 지키는 지혜”라고 규정했다. 보수의 핵심가치는 점진적 개혁을 통한 전통과 질서의 유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보수는 ‘보수적 개혁’의 정신을 상실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데 일관하고 있다. 또 다른 일탈은 권위주의에 빠져 법과 제도, 민주적 절차의 공정성을 간과했다. 보수가 법치를 훼손할 때 정치는 그 정당성을 상실한다. 윤석열식 법치의 실패를 알면서도 체질화된 권위주의 전통을 극복하지 못한 탓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보수는 확장성을 잃었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국가주의적 질서유지에 몰두했다. 이것은 시민의 자유와 사회적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권력의 쟁취를 위해서라면 어떤 세력과도 연대하고 있다. 극우 포퓰리즘 세력인 ‘반중·반좌파 종교세력’ 등과의 결합이 그것이다. 스스로 권력을 창출할 수는 없는 무기력에서 비롯된다. 더 나아가 당 내부적으로 자유로운 경쟁을 통한 세대교체에 실패했다. 스스로 ‘정치적 수축사회’로 퇴행했음을 증거한다.
한국 보수의 부활은 ‘자유 법치 공정 포용’이라는 헌법적 가치의 재정립에 달렸다. 구호가 아니라 정당의 제도와 문화의 실질적 혁신을 의미한다. 공천제도의 투명화 등 내부 민주주의의 개혁 등이 그것이다. 포퓰리즘적 혐오정치와 부정선거 시비 등 음모론으로는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역사 인식의 정직성이다. 그것은 친일·독재의 유산을 인정하고, 민주화 세대와 화해하는 노력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다. 과거를 부정하는 보수로는 미래 설계가 불가능하다.
반성적 성찰 통해 실용 보수로 거듭나야
건전한 보수적 가치는 정책 회복력과 탄력성에 좌우된다. 복지 기후 노동 젠더 등 사회 의제에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실용적 보수가 되어야 한다. ‘시민적 보수주의’로의 진화다. 세계적으로 보수는 이미 전환을 진행 중이다. 영국의 ‘원 네이션 보수주의(One Nation Conservatism)’, 독일 기민당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그 예다. 자유와 공동체, 효율과 연대의 조화를 추구하는 정책 탄력성이다. 한국 보수가 반성적 성찰을 통해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문제다.
촛불혁명이 시민주권시대를 열었다. 앞으로 과제는 보수의 혁신이다. 정당의 생존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보수가 사라지면 정치의 균형은 깨진다.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건전한 보수는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지키는 공적 과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이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시민적 자유와 책임을 존중하는 ‘민주적 보수’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변화를 수용하며 전통을 지키는 창조적 회복력을 기대한다. 한국 민주주의 미래가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