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사갈등, 싸움이 아닌 해결의 기술 필요하다
최근 대안적 분쟁해결(ADR,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노동운동 영역에서 치열하게 투쟁했던 이들도, 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역할에 충실했던 이들도, 법률과 노사관계의 전문가들도 함께한다. (가칭)‘분쟁해결지원재단’(재단) 설립에 동참하고 ADR 기초·심화·고급과정을 이수하는 분들이 많은 이유다. ADR은 특정 인물의 구상이 아니라 노사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미래형 갈등해결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시대적 과제다.
노동현장의 갈등은 더 이상 ‘이기느냐 지느냐’의 구도로 풀리지 않는다. 직장 내 괴롭힘, 정규직·비정규직 갈등, 플랫폼노동과 세대 간 인식 차이 등은 법 이전에 관계의 문제다. 법원과 행정기관의 심판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신뢰회복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갈등은 길어지고 감정의 상처는 깊어진다. 이제는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해결의 기술’, 즉 대화와 조정 능력이 요구된다.
ADR, 세계가 선택한 평화적 분쟁해결의 길
ADR은 법원의 판결 대신 조정·중재·화해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제도다. 미국·영국·일본 등은 1990년대부터 공공과 민간 영역에서 ADR을 제도화해 소송 이전 단계에서 상당한 비율의 분쟁을 해소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ADR을 “비용을 줄이고 신뢰를 높이는 사회적 시스템”으로 평가한다.
ADR의 핵심은 ‘중립적 제3자의 조정’이다. 당사자가 직접 싸우지 않고 조정자의 도움으로 상호 이해와 합의를 이끌어낸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법조문이 아니라 사람의 대화·경청·감정의 조율이다. 판결이 승패를 나눈다면 조정은 관계를 회복시킨다. 갈등을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로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 ADR이 지향하는 공존의 가치다.
이러한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출범을 준비 중인 재단은 중앙노동위원회나 특정 인사와 무관한 민간 주도의 비영리 공익법인이다. 노동계·경영계·학계·법조계·노무사 등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았고 모든 출연금은 개인 자비로 마련됐다. 특히 투쟁적인 노동운동의 선봉에 자리했던 이들이 중심이 된 ‘노동ADR’이 시초이고 이들이 재단 출연인으로 다수 참여했다. 공적 예산이나 정부 보조금은 단 한푼도 쓰이지 않았고 임원진은 비상임·무보수 명예직으로 봉사한다.
재단은 민법 제32조와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투명하게 설립 절차를 진행 중이다. 노사정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성을 토대로 활동한다. 특히 노동위원회나 법원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전 예방적 조정, 조기 화해, 조직 내 고충해결 역량 강화를 민간 차원에서 뒷받침하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4인 이하 사업장, 특수형태근로·플랫폼 종사자 등 취약 영역까지 지원 범위를 넓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공공성·전문성 갖춘 민간 ADR 플랫폼 탄생
이를 위해 재단은 ‘ADR 아카데미’를 통해 노동조합 간부, 기업 임원, 인사담당자, 변호사, 노무사, 학자 등 현장 리더들을 대상으로 갈등관리·조정·협상·경청 훈련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는 자격증 남발형 프로그램이 아니라 ‘법으로 이기기보다 관계 속에서 풀기’를 학습하는 실무형 교육이다. 이미 여러 수료자들이 소송 대신 대화로 현장 분쟁을 조기에 봉합하는 성과를 쌓고 있다. 대결의 언어가 이해의 언어로, 적대의 구조가 협력의 문화로 바뀌는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노사관계의 본질은 힘의 대립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다. (가칭)분쟁해결지원재단은 특정인의 조직이 아니라 노동현장의 신뢰를 복원하고 협력문화를 확산시키려는 사회적 플랫폼이다. ADR이 추구하는 길은 분명하다. 분쟁에서 협력으로, 대결에서 대화로 ‘노동자가 더 빨리, 사용자와 더 공정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 그 상식적인 세상을 향해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이호동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노사ESG과정 주임교수 전 발전노조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