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정상회의와 APEC 정상회의: 자유무역의 보루
미·중 무역전쟁 속 연이어 열리는 두개 정상회의 … 자유무역 수호와 경제통합 겨냥한 아세안의 전략적 도전
경주가 세계사의 증인이 될 운명을 타고났을까? 세계의 이목과 눈길이 일주일 가량 이 두 도시에 머물며 여기서 벌어지는 일거수일투족을 샅샅이 파헤쳐 이야깃거리를 대량 생산할 것이다. 아니 정작 본 잔치인 다자정상회의는 초헤비급 양자 정상회담에 밀려 뒷전 신세가 될 지도 모르겠다. 이 두 도시는 세계의 지축을 뒤흔들 수 있는 외교적 지진의 진동을 벌써 예감하는 듯하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아세안 의장국 수도는 다자 정상회의 준비 회의들이 춤을 추고 꽃을 피우는 현장으로 변모한다.
미-아세안 정상회의와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아세안 플러스 한중일 정상회의 및 동아시아정상회의 등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한·일·중 수뇌 또는 고위 관리들은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쏜살같이 경주로 이동한다.
세계 외교 무대 된 경주와 쿠알라룸푸르
아세안도 마찬가지다. 아세안 10개 회원국 중 7개국이 APEC 회원국이다. 이들 7개국 대표단도 쿠알라룸푸르 일정(26~27일)이 끝난 뒤 경주로 달려가 어떤 형식으로든 APEC 정상회의(10월 31일~11월 1일) 준비 끝손질에 참여해야 할 처지이다. 그야말로 동분서주 한다. APEC 정상회의가 동아시아에서 개최되면 늘 일어나는 우리 눈에 익숙한 모습니다. 그래서 두 정상회의 사이의 간격을 최대한 짧게 하려고 배려한다. 아세안은 APEC 내 아세안 코커스(caucus)를 유지할 정도로 의제 관련 APEC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디.
올해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는 좀 과장하여 지구촌 정상회의라 불러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만큼 세계와 대륙을 대표하는 주요국 지도자 다수가 초대 받아 의장국의 “손님” 자격으로 참석한다.
의장국 말레이시아의 안와르 총리는 아세안을 글로벌 커뮤니티와 접목시키면서 지구촌 전역으로 아세안의 외연을 넓혀나가는데 주력하고 있다. 중남미와 아프리카 대륙을 대표하여 비회원국 브라질과 남아공 대통령을 초청한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브라질과 남아공은 유엔 안보리 개편 시 유력한 상임이사국 후보로 거론된다. 이와 같이 아세안이 지구촌 심장부로 외연을 넓히는 활동에 주력하는 것은 매년 G7 이나 G20 정상회의 시 의제와 관련 있는 비회원국 정상들을 초청하는 경우와 유사하다.
이재명 대통령도 올해 G7 의장국 캐나다의 초청으로 올6월 캐나다 앨버타주 카나나스키스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G7 초청국가는 매년 의장국 이니셔티브로 정해지며 올해의 경우 8개국이 의장국 초청으로 참석했다.
안와르 총리는 올 상반기 아세안 정상회의시 걸프협력이사회(GCC)와 중국 총리를 초청하여 역사적 아세안-GCC 양자 정상회의와 아세안-GCC-중국 3자 정상회의 협의체를 출범시켰다. 미·중·일·한·영·캐나다·인도·러·호·뉴·EU 등 지구촌의 기라성 같은 나라들 모두 이미 아세안 주도 다양한 협의체에 어떤 형식으로든 정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와 APEC 정상회의의 중심 화두는 단연코 태평양 건너서 불어오는 관세 광풍과 그 위력이 아세안 경제, APEC 경제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경제에 미칠 메가톤급 영향에 집중될 것이다.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아 개별 국가 차원에서 양자 차원에서 그리고 지역 레벨에서 위기 돌파를 위한 지혜 탐색전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자유무역은 아세안이 지키고 나아가야 할 가치다. 아세안은 지난 30여년 자유무역 정책을 추구하면서 경이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세계경제를 견인하고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아세안은 자유무역 수호와 신장에 아태 지역 국가들과 더불어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글로벌 무역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아세안은 적응할 뿐만 아니라 선두에 나설 기회의 창을 갖고 있다. 오늘 내린 결정이 아세안 지역이 대외적 충격의 수동적 수용 국가들로 계속 남느냐 아니면 그들 자신의 경제적 운명의 적극적 개척자로 부상하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아세안, 글로벌 외연 확대로 영향력 확장
변동성은 이 지역에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기업들은 과거에도 통화 위기와 무역 붕괴를 항해한 적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경학적 전환의 동시성과 그 규모는 특이한 복합 도전을 제기한다. 세가지 현상이 두드러진다. 첫째, 경제적 균열이다. 둘째, 경제 블록의 재편성이다. 셋째, 글로벌 과잉 생산 능력에 따른 산업 산출량의 급증이다. 이는 아세안의 국내 산업을 대체할 위험을 내포한다.
아세안은 위기 앞에 맞닥뜨려 다양한 해법을 강구하면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우선 역내 통합을 가속화 하고 기존 역외 파트너 국가들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의 업그레드를 서두르고 있다. 동시에 지구촌 주요 지역 기구와 다자주의 및 소다자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지역협력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우선 의장국 말레이시아의 안와르 총리는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 계기에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 개최를 발표했다. RCEP은 2020년 11월 아세안 주도로 출범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미국의 강력한 보호무역 기조를 감안할 때 RCEP 정상회의를 재개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RCEP은 전 세계 인구의 1/3, 글로벌 GDP와 무역의 각 30% 씩을 차지하고 있다. RCEP은 협정 내용을 보다 더 구속력 있게 개선하자는 내부 목소리에 직면하고 있으며 홍콩, 스리랑카, 칠레 및 방글라데시 등이 추가 가입을 희망하고 있다. 안와르 총리가 언급한 것처럼 이번 RCEP 정상회의 개최는 아시아 국가들이 개방성을 주도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둘째, 아세안은 아태지역 국가들의 경제통합을 목표로 하는 메가 FTA의 일종인 포괄적·점진적TPP(CPTPP)와 협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싱가포르,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및 베트남 등 4개 아세안 회원국이 12개 회원국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가입을 추진 중이며 영국은 브렉시트(Brexit) 이후 신규로 가입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이후 CPTPP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높아지는 상황이다.
11월 20일 예정된 아세안-CPTPP 공식 대화는 상징적 관여를 넘어 실질적인 결과물을 도출해야 한다. 표준의 융합, 공급망 복원, 중소기업 역량 증진 등 구체적 개혁 조치는 급속히 파편화 되어 가는 글로벌 무역 질서에서 아세안이 중심적 지위를 유지하려면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이다.
셋째, 아세안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협력의 문호를 넓히고 있다. 이를 위해 글로벌 사우스의 핵심 국가군 협의체인 BRICS에 가입하거나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에 브라질과 남아공 정상을 초청한 것 역시 브릭스와의 관계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볼 수 있겠다.
넷째, 아세안은 걸프협력이사회(GCC), 상하이협력기구(SCO)등 지역협력기구와 밀접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달 중국 톈진에서 개최된 SCO 정상회의에 아세안 10개 회원국 중 7개국이 참석하고 의장국 말레이시아의 안와르 총리가 베이징에서 개최된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참석한 사실은 아세안이 중국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다섯째, 아세안과 중국은 미국의 관세 압박 속에서 올해 말 아세안-중국 자유무역협정(FTA) ‘버전 3.0’ 서명을 앞두고 지도부 레벨에서 양측 간에 소통을 강화하며 상호 협력 의지를 다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실질적 협상을 완료한 중-아세안 FTA ‘버전 3.0’은 디지털 경제, 친환경 경제, 공급망 상호 연결, 소비자 보호 등의 새로운 영역을 포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말레이시아, 역내 협력 중심축 부상
한편, 인도네시아는 EU와 자유무역 협상 개시 10여년만에 협상을 타결하여 이달 초 서명했으며 태국, 말레이시아 및 필리핀 등 아세안 3국은 내년 EU와 FTA 협상을 마무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태국은 한국과 10월 중 CEPA 협상 타결을 목표로 삼고 협상에 임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는 금년 말까지 한국과 자유무역 협상을 종료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아세안과 APEC은 역내 무역 자유화와 경제협력 증진을 위한 쌍두마차이다. 자유무역의 기치를 더 높게 날리는데 아세안 의장국과 APEC 의장국의 역할과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올해 이 두 협의체를 이끄는 말레이시아와 한국의 역량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국과 말레이시아는 지난 65여년 매우 긴밀하고 호혜적인 양자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다면적이고 다차원적이며 다층적인 관계를 가꾸어 왔다. 이 모범적인 한·말 양자 관계가 올해 아세안-APEC 협력에 있어서도 시너지를 창출하며 더 알찬 성과 창출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