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 풍경
대화 소통창구 우선 확인이 분쟁해결의 실마리
우리는 국가·공공기관 또는 기업에 민원인으로 불만을 제기하고자 할 경우 해당 기관 홈페이지나 전화번호를 먼저 찾는다. 노동조합 역시 소속 조합원이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은 경우 우선 사측의 대화 상대방을 찾아야 한다. 아래 사례는 대화 상대방을 제대로 찾지 못해 2년간 노동위원회에서 진행된 사건이다.
2024년 A공단 고객센터에서 근무하던 B상담사는 어린 자녀의 병원 입원으로 연차휴가를 모두 소진했다. 이에 B상담사는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하기 위해 자신의 팀장에게 연락했다. 팀장은 “가족돌봄휴가는 사전신청이 원칙이니 다음주 월요일 출근해 가족돌봄휴가 신청서와 증빙서류 원본을 지참해 고객센터에 방문하라”고 했다.
B상담사는 자신이 소속된 노조 지회에 팀장의 지시가 정당한지를 문의했다. 가족돌봄휴가 신청은 회사방문 없이 전자문서로도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월요일에 팩스로 가족돌봄휴가를 신청하고 가족돌봄휴가를 정상적으로 사용했다.
조합원들 3분간 항의 뒤 팀장 쓰러져
B상담사의 가족돌봄휴가 일주일 뒤 노조 지회는 ‘법보다 위에 있는 사측의 일방적 지시를 규탄한다’라는 대자보를 직원 휴게실의 노조 게시판에 게시했다. 이 대자보를 확인한 팀장은 노조 지회 C간부와 B상담사와 개별면담을 진행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노조 부지회장은 곧바로 팀장에게 메신저를 보내 면담을 요청했으나 팀장은 거부했다. 이에 부지회장은 바로 팀장이 근무하는 사무실로 향했고 가는 길에 만난 같은 노조 소속 조합원 3명도 동행했다.
점심시간임에도 민원업무를 처리하고 있던 팀장에게 부지회장을 포함한 4명의 조합원들은 ‘B상담사에 대한 사과와 노조 지회와의 면담을 했다. 팀장은 “오전에 발생한 불친절 민원을 급하게 처리하는 중이어서 점심시간을 업무시간으로 변경한 상태이므로 지금은 대화할 상황이 아니다”고 했다.
4명의 조합원들은 팀장에게 3분간 불만사항 토로 후 사무실을 떠났고, 몇분 뒤 팀장은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119가 출동해 응급처치를 받았다. 이후 팀장은 급성 스트레스 반응, 불안 장애로 1개월간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은 바 있다. 이에 부지회장은 팀장에 대한 사과문을 회사 인사담당 매니저를 통해 팀장에게 전달했다.
사측, 집단적 행동 등으로 ’정직 10일‘ 징계
이후 회사는 팀장을 찾아가 항의한 부지회장을 포함한 4명의 조합원에게 ‘허가를 얻지 아니하고 근무시간 중 집단적 활동, 직장질서 문란 등의 사유’로 '정직 10일'의 징계를 처분했다. 이에 대해 4명의 근로자들은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징계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냈다.
지노위는 근로자들이 집단으로 위력을 행사해 팀장에게 사과를 강요한 행위는 정당한 징계사유로 인정되나 양정이 과도해 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난 징계로 판단했다.
회사는 판정결과를 수용하고 정직 10일의 징계를 취소하고 이들에게 '감봉 1개월'로 양정을 변경해 재징계했다. 4명 근로자들은 감봉 1개월에 대해서도 노동위에 부당징계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냈다.
하지만 지노위 및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감봉 1개월의 징계는 양정이 정당하고 정당한 징계사유가 존재하는 등의 이유로 부당노동행위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회사에는 상담원들의 복무관리를 담당하는 매니저가 있고 실제 매니저는 상담원들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퇴사, 근태 등과 관련해 여러차례 상담한 사례가 있다.
그럼에도 노조 지회 부지회장은 조합활동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며 매니저가 아닌 업무담당 팀장을 찾아가 항의했다. 그 결과 오히려 노사 간 신뢰관계만 손상됐다.
비록 팀장을 찾아가 항의한 시간이 3분간이었다고는 하나, 다수가 항의한 행위는 한참 업무처리 중인 팀장에게 신체적·정신적으로 위협을 가한 것임은 분명하다.
노조 차원 대응하려면 좀더 신중했어야
팀장이 업무처리 중이라고 했을 때 부지회장이 대표로 팀장에게 항의의 의사를 간략히 전달하고 돌아왔더라면 팀장이 쓰러지는 상황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부지회장은 팀장이 먼저 노조 지회와 면담을 요청했기 때문에 팀장을 찾아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팀장은 지회와의 면담을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해 기본적인 사실관계에서조차 의견차이가 있는 등 상호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부지회장이 노조 차원에서 대응해야겠다고 판단했다면 조금 더 신중하게 이 사건 회사의 대화 상대방이 누구인지부터 먼저 확인한 후 시간을 가지고 대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호석
중앙노동위원회 교섭대표결정과 조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