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에너지전환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전력망 설계를

2025-10-22 13:00:01 게재

최근 용인 국가반도체산단의 전력집중과 초고압 송전망 문제를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송전망이 지나가는 전남 전북 충남 충북 경기 강원 곳곳에 주민 대책위원회가 꾸려질 만큼 갈등지역의 범위도 전국적이다. 이번 사안은 기후위기 대응과 재생에너지전환을 강조하며 출범한 이재명정부가 시민사회의 저항에 맞닥뜨린 첫 도전으로, 그 해결이 국정운영 향방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수도 있다.

정부의 역점사업인 재생에너지와 인공지능(AI) 산업에는 모두 새로운 전력망 구축이 필수불가결하고, 에너지고속도로는 이와 밀접한 정책 사업이다. 만일 에너지전환과 계통연결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재생에너지 기반의 미래성장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견인할 강력한 동력을 얻으려면 정부는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받아들이고 갈등의 본질을 정확히 짚은 현명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먼저 현재의 전력망 추진 상황을 들여다보자. 정부는 지난 1일 제1차 국가기간전력망확충위원회를 열어 총 3855km에 달하는 99개 송전망 관련 사업을 345KV 국가전력망 사업으로 지정했다. 용인 산단 전력공급을 위해 3GW 규모의 LNG 복합화력발전소를 짓고 부족한 전기는 서해안 해상풍력과 강원도 화력발전 전기로 끌어오겠다는 대대적인 전력공급망 계획이다.

수도권 전력과집중, 위험한 결과 초래

그런데 전국 각지에서 들어오는 전력망을 통해 국내 전력의 절반가량을 소비하는 수도권에서 추가공급을 통해 반도체 기업이 안정적으로 RE100을 채울 수 있을지에 대해 여러 이유로 회의의 목소리가 높다. 수도권 전력망은 이미 추가 송전망이 전압안정도에 문제를 일으킬 만큼 포화상태인 데다, 용인 국가산단에 향후 공급해야 할 전력은 국내 최대전력수요의 16.5%인 16GW에 이를 만큼 막대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현재 일 77만톤에 불과한 공업용수 공급량도 클러스터 가동 시 약 167만톤으로 늘려야 하고, 산단 건설에 필요한 562조의 비용조달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다.

좁은 국토에서 이런 식으로 수도권에 과도한 전력망 집중을 심화하는 일은 계통의 안전성이나 경제성, 지역 형평성 차원에서 자칫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웃 대만의 경우 TSMC가 수도에서 수백km 떨어진 재생에너지발전 인근 지역에 반도체 팹을 분산 가동하고 있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사실 용인 국가산단 개발은 기후변화에 역행했던 윤석열정부가 인허가 신속처리, 예타 면제 등을 동원해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책으로 에너지전환 시대에 걸맞은 사업인지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 화석연료 중심의 구시대적 산업화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계획을 국민주권정부에서 서두르는 건 정책적 일관성이나 협치보다는 기득권의 알박기를 용인하는 꼴일 뿐 향후 득보다 독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의 전력망 갈등은 망 건설 자체의 문제만으로 국한하지 않고 산업사회 대전환을 위한 새판짜기의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망을 둘러싼 주민갈등은 일차적으로 과거 산업사회가 미래 전환사회로 재편되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개발양식에 관한 과거와 미래가치의 충돌현상이다. 그와 더불어 에너지전환에 동의하는 집단 내에서도 다른 입장을 가진 재생에너지 시장주의와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전환주의 간의 이견도 존재한다.

재생에너지 시대에 대비한 새로운 전력망의 선제적 구축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임은 분명하다. 송전망 반대 주민들 역시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다만 과거와 같이 주민참여를 배제한 대량 공급과 소비를 위한 고압 송전망 건설 대신 재생에너지 발전단지와 인근 수요지를 촘촘히 연결하는 지산지소형 분산망의 우선적인 건설을 바라고 있다.

지산지소 에너지 분산이 답

지산지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이 가능한 지역에 RE100 산단 등을 조성해 시스템 반도체, AI 등의 첨단 산업을 유치해야 한다. 이와 함께 지역별 시간별 차등 요금제를 포함한 정부의 강력한 지원책도 병행해야 한다. 또 영농형 태양광 같은 주민주도형 발전 방식과 에너지자립을 위한 독립망 구축도 필요하다. 그리고 신규 전력망은 가상발전소(VPP)나 에너지저장장치(ESS), 양방향전력송수신 기술(V2G) 같은 소비측의 유연성 자원이 쌍방향으로 소통되는 지능형 망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송전망 문제에 대한 정책적 대안은 충분하다. 조금 돌아가는 듯 보여도 재생에너지 공급망에 대한 신중한 재설계가 결국은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고 미래를 창도할 지름길이 될 것이다. 기후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임성진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