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33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호국의 섬에서 만나는 양민학살의 그림자
강화도는 ‘불멸의 섬’이다. 세계 최강 몽골제국 군대와 나폴레옹3세의 프랑스제국, 미국의 침략에도 끝끝내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은 섬이다.
하지만 강화 사람들은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 안아야 했다.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침략으로 고려 왕실이 옮겨 오면서 왕궁과 성벽 건설 등의 노역에 시달렸고 조선시대 말에는 프랑스 미국 등 서구열강의 침략 전쟁으로 전란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게다가 트레일 중간중간에 서 있는 보와 진, 돈대들은 강화의 아픈 역사를 몸으로 체득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이 길은 힐링 로드인 동시에 역사 공부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 갑곶은 월곶 철산포구 등과 함께 한국전쟁 당시 대규모 양민학살이 자행된 곳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군경은 강화특공대에 무기를 지원하면서 준군사조직으로 인정했는데 이 강화특공대에 의해 430명 이상의 강화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이유는 인민군 지배 시 부역 혐의였다. 하지만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신원을 확인한 139명 중에는 단지 부역 혐의자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살당한 이가 83명이나 된다. 이중 여성이 42명, 10대 미만이 14명이었다. 1살짜리 아기도 있었고 70살 넘은 할머니도 있었다. 죄 없는 무고한 희생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을 기리는 것은 화려한 천주교 순교성지 한구석,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후미진 곳에 세워진 안내판 하나가 전부다. 정부나 지자체도 아니고 강화양민학살희생자유족회가 세운 초라한 안내판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미어진다. 종교보다 못한 국가. 이래서 사람들이 국가보다 종교에 더 기대는 것일까. 그저 묵념이나 하고 돌아서야 하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겁다.
길의 중간 광성보에는 신미 순의총이 있다. 신미양요 때 광성보 일대에서 미군과 전투 중 전사한 용사들을 모신 묘소다. 당시 중군 어재연 장군과 아우 재순을 비롯한 군관, 사졸 53인이 전사했다. 이 중 어재연 형제는 고향인 충북 음성군에 안장하고, 남은 군졸 51인은 신원을 분별할 수 없어 7기의 분묘에 합장해 그 순절을 기리고 있다.강화 나들길은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슬픔의 길이다.
아니다. 슬픔을 이겨내는 길이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