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산성 낙관론, 워시 배팅 성공할까

2026-02-23 13:00:01 게재

‘마에스트로’의 길을 자처한 워시…확대되는 재정적자 속 금리 판단 시험대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지명된 케빈 워시는 인공지능(AI)을 “우리 생애 가장 강력한 생산성 향상 물결”로 규정하며 통화정책이 이를 선제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발언은 1990년대 후반 앨런 그린스펀이 정보기술(IT) 혁명을 근거로 잠재성장률 상승을 읽어냈던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그린스펀은 실업률이 역사적 저점으로 하락했음에도 인플레이션이 구조적으로 억제되고 있다고 판단했고 긴축을 서두르지 않았다.

1996년 9월 FOMC 회의에서 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다수 위원들의 의견에 대해 그린스펀은 “생산성 혁명을 데이터가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금리인상설을 일축했다.

당시 그린스펀은 생산성 자료에서 개인사업자와 같은 비법인 부문의 생산성 데이터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말했고 이와 관련된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으며 실제로 이후에 그의 말이 맞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미국 경제는 낮은 물가와 높은 성장이라는 이례적인 조합을 경험했다.

지금의 논쟁도 본질은 같다. 기술혁명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린다면 중앙은행은 더 높은 성장률을 허용해도 되는가. 아니면 통계로 충분히 확인되기 전까지는 신중해야 하는가. AI가 구조적 생산성 상승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는 커지고 있지만 그 효과의 시점과 규모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건물. 로이터=연합뉴스

무형자산과 생산성의 시차

1999년 MIT의 에릭 브린욜프슨과 양신규는 기업의 컴퓨터 투자 1달러가 평균적으로 약 10달러 이상의 시장가치와 연결된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이는 단순한 하드웨어가 아니라 그 위에 축적되는 조직혁신, 업무 프로세스 재설계, 인적자본 축적 등 무형자산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린다는 의미였다. 당시에도 재무제표에는 이러한 자산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지만 시장은 이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었다.

AI 투자 역시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는 눈에 보이는 유형자산이지만 진정한 가치는 데이터 활용 능력, 알고리즘 개선 속도, 조직 적응력에서 나온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교육비와 연구개발비는 단기 이익을 훼손한다. 그러나 일정 시점을 지나면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브린욜프슨은 14일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AI가 한동안 “컴퓨터는 어디에나 보이지만 생산성 통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이른바 ‘현대판 솔로의 역설(Solow’s paradox)’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고용통계가 하향 조정됐음에도 GDP 성장률이 견조하게 유지된 점은 생산성 상승의 신호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J-커브’ 효과로 해석한다. 초기에는 비용이 앞서지만 조직 적응이 완료되면 생산성은 가속 구간에 진입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계체계와 경제현실 사이의 구조적 괴리다. 연구개발비와 소프트웨어 개발비는 대부분 당기비용으로 처리된다. 기업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집행한 지출이 단기 손익에는 마이너스로 반영되는 구조다. 이는 AI 투자 확대가 일시적으로 수익성 둔화로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지출이 반복적으로 누적되면 기업 내부의 업무 흐름은 단순화되고 오류율은 낮아지며 의사결정 속도는 빨라진다. 그 효과는 수년 뒤 마진 개선과 비용 절감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무형자산은 네트워크 효과를 동반한다.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모델의 성능은 개선되고, 성능 개선은 더 많은 사용자와 활용 사례를 끌어들인다. 이러한 비선형적 효과는 통계에 지연 반영될 수밖에 없다.

특히 사무직과 서비스 산업에서의 시간 절감 효과는 GDP 계산에 완전히 포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디지털 전환이 소비자 후생을 높이더라도 가격인하나 무료 제공 형태로 나타날 경우 생산성 개선은 과소평가될 수 있다. 결국 중앙은행은 측정하기 어려운 무형의 생산성 상승을 판단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너무 늦게 인정하면 불필요한 긴축이 되고, 너무 빨리 인정하면 과도한 완화가 된다. 이것이 AI 시대 통화정책의 핵심 난제다.

그린스펀은 저서 ‘격동의 시대’에서 1990년대 생산성 가속을 구조적 전환으로 해석했다. 그는 단위노동비용의 움직임을 통해 실업률 하락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억제되고 있다는 신호를 읽어냈다. IT는 기업의 재고관리와 공급망 운영 방식을 바꿨고, 비용구조 자체를 낮추는 역할을 했다.

동시에 세계화가 강력한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했다. 중국과 동유럽 등 거대한 노동력이 글로벌 시장에 편입되면서 제조 비용은 하락했고, 글로벌 경쟁은 가격인상 여력을 제한했다. 값싼 수입재는 소비자 물가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기술 혁명과 세계화가 동시에 작동했기에 낮은 물가와 높은 성장이 가능했다.

오늘날은 상황이 다르다. 공급망은 재편되고 있으며 지정학적 긴장은 비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전략 산업의 국내 회귀와 무역 장벽 증가는 구조적 비용을 높인다. 같은 생산성 가속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물가 경로는 과거와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

달라진 거시 환경과 중립금리 논쟁

1990년대 후반 미국은 재정적자가 빠르게 축소됐고 클린턴행정부 말기에는 흑자를 기록했다. 반면 현재는 구조적 재정적자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트럼프행정부의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 OBBBA)’는 감세 연장을 통해 적자 폭을 확대하고 있다. 국채 발행 증가와 이자 비용 확대는 장기금리에 상방 압력을 가할 수 있다.

현재 노동시장 역시 공급부족 상태다. 고령화와 노동 참여율 둔화는 노동 공급 증가 속도를 제한한다. 생산성 개선이 충분히 빠르지 않다면 임금상승은 단위노동비용을 통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준 내부에서는 AI가 중립금리(r*)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생산성 상승은 자본의 한계생산성을 높이고 기업의 투자 수요를 자극한다. 투자 수요가 저축을 초과할 경우 균형 실질금리는 상승한다. 기대소득 증가로 저축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생산성 가속은 금리인하의 근거가 아니라 더 높은 균형금리를 정당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는 AI가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해 통화정책의 여지를 넓힐 수 있다는 워시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정책 함의를 가진다.

자산거품과 금융시장 반응

그린스펀은 자산거품을 사전에 정확히 식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닷컴 버블과 이후 금융 불균형은 저금리 환경이 자산가격 상승과 레버리지 확대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금리가 낮으면 할인율이 낮아지고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는 상승한다. 특히 성장 기대가 높은 산업에서는 밸류에이션이 빠르게 확대된다. AI 관련 기업들의 주가급등은 이러한 기대 선반영의 대표적 사례다.

문제는 성장기대와 금리기대가 동시에 움직인다는 점이다. 생산성 낙관이 확산되면 장기 성장률 전망은 상향 조정되고 주가는 급등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중립금리상승 기대가 커지면 장기금리 역시 상승 압력을 받는다. 할인율이 높아질 경우 밸류에이션은 조정을 받는다.

이처럼 성장기대와 금리기대가 충돌하는 환경에서는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금융조건 완화는 신용확대와 위험선호 증가로 이어진다. 이는 실물경제를 자극할 수 있지만 과도한 레버리지는 향후 충격에 대한 취약성을 높인다. 기술혁명은 실재하더라도 금융시장은 그 속도를 앞질러 가격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AI도입 빠르지만 금융위기 전개도 빨라져

브린욜프슨의 분석은 AI 생산성 가속이 현실이 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워시의 낙관은 근거 없는 기대만은 아니다. 그러나 1990년대의 성공은 기술 혁명만의 결과가 아니었다. 세계화의 디플레이션 압력과 재정 개선, 비교적 완화된 노동 환경이 함께 작용했다.

오늘날은 그 조건이 동일하지 않다. 세계화는 약화됐고 재정은 팽창적이며 노동시장은 공급 부족 상태다. 생산성 상승이 확인되더라도 인플레이션과 금융 사이클은 별도의 경로를 따를 수 있다. 기술 혁명은 성장의 동력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그 동력을 과도하게 가격에 반영할 수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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