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기후악당’에서 벗어나는 길
배출량 세계 5위, 소득수준은 ‘최고’ … 2035 NDC에서 전국민 공감대 모아야
지구 대기중 이산화탄소(CO₂) 수치가 2024년에 사상 최고치로 증가했다. 2025년 10월 15일 세계기상기구(WMO)는 새로 발표한 보고서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준이 2024년에 기록적인 양으로 치솟아 지구가 더 장기적으로 기온상승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WMO 온실가스 게시판은 “CO₂의 지속적인 배출은 인간 (경제)활동과 산불로 인한 것이며, 육지 생태계와 해양과 같은 ‘흡수대’의 탄소흡수량이 감소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우려도 크다”고 경고했다.
이산화탄소 증가율은 1960년대 이후 3배로 늘었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연평균 0.8ppm 증가에서 연간 2.4ppm 증가로 가속화되었다. 2023년부터 2024년까지 전세계 평균 CO₂ 농도는 3.5ppm 급증했는데 이는 1957년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2004년 WMO 온실가스 게시판이 처음 발행되었을 때 연평균 CO₂ 수준은 377.1ppm이었다. 2024년에는 423.9ppm으로 늘었다.
WMO 사무차장 코 배럿(Ko Barrett)은 “CO₂와 다른 온실가스에 갇힌 열은 우리의 기후를 터보차징하고 더 극단적인 날씨를 초래하고 있다”며 “CO₂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기후뿐만 아니라 경제안보와 지역사회 복지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가속페달 밟고 기후지옥으로”
메탄과 아산화질소의 농도도 기록적인 수준으로 상승했다. 메탄은 기후에 미치는 온난화 효과의 약 16%를 차지하며 수명은 약 9년이다. 2024년 전세계 평균 메탄 농도는 1942ppb로 산업화 이전(1750년 이전)보다 166% 증가했다. 아산화질소 전세계 평균 농도는 2024년 338.0ppb에 달해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25% 증가했다.
매년 배출되는 CO₂의 약 절반은 대기 중에 남아 있고 나머지는 지구의 육지 생태계와 바다에 흡수된다. 그러나 지구의 탄소 저장 기능은 항구적이지 않다. 지구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바다는 더 적은 양의 CO₂를 흡수한다. 높은 온도에서 CO₂의 용해도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지상의 흡수원도 여러가지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다. 2023년에서 2024년 사이의 기록적인 CO₂ 증가는 산불로 인한 추가 배출과 해양의 CO₂ 흡수 감소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2024년에는 엘니뇨가 강했고 그 기간 동안 아마존과 남부 아프리카에서 가뭄과 산불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토지 탄소 흡수원의 효율성이 감소했고 CO₂ 수치가 상승하는 경향이 관측됐다.
UN의 배출 격차 보고서는 11월 4일 발표될 예정이다. 배출 격차 보고서는 현재 및 예상 미래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최신 과학적 연구를 평가한다. 또 이를 세계가 파리협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허용되는 배출 수준과 비교한다. ‘우리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곳과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의 차이를 배출 격차라고 한다.
폭염 폭우 산불과 같은 기후재난은 이제 일상이 되었고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레쉬 유엔사무총장은 “우리는 여전히 가속페달을 밟은 채로 기후지옥으로 향하는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우리의 생명 신체 환경이 심각하게 훼손될 위험을 막으려면 온실가스배출을 ‘깊이있고 신속하며 지속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경고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도 “미래세대의 삶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한국 기후위기 대응순위 ‘최하위’
올해 9월 18일 환경부 기상청은 ‘2025 한국 기후위기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과학적인 분석 연구 결과 우리가 지금 수준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면 온난화가 3℃에 이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2040년까지 단기 전망에서 연평균 기온은 1.6℃에서 1.8℃ 상승한다. 상승폭이 더 큰 지역은 북부·중부와 고지대다. 2100년까지 장기전망을 보면 연평균기온이 최소 2.3℃에서 최대 7℃까지 오른다. 강수량은 2040년까지 1~7% 증가한다. 2100년에는 6.7~12.6% 증가한다. 폭염일수는 현재 8.8일에서 2040년 16.8~17.8일까지 증가하고 2100년 24.2~79.5일까지 증가한다. 해수면은 2100년 최대 82cm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윔 티에리(Wim Thiery) 등은 2021년 ‘사이언스’에 게재한 ‘극한기후에 대한 노출의 세대 간 불평등(Intergenerational inequities in exposure to climate extremes)’에서 “2020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지금 세대보다 2배의 산불과 태풍, 3배의 홍수, 4배의 흉작, 36배의 폭염에 시달리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2020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투표권이 없고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힘든 세대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우리 세대가 지금처럼 기후위기에 대응하면 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36배나 심한 폭염에 시달리게 된다는 얘기다.
‘파리협정’은 전세계 195개국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체결한 협정이다. 모든 당사국은 온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자발적으로 정해서 유엔에 통보해야 한다. 이것이 국가결정기여(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다. NDC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각 국가가 온실가스배출을 언제까지 얼마나 줄이겠다고 약속하는 ‘감축목표’다.
대한민국의 현행 2030 NDC(2018년 순배출량 기준 –36.4%)는 ‘선형감축’ 경로에 따라 설정됐다. 이는 1.5℃ 목표를 위한 전지구적 감축경로보다 9%p 가까이 낮은 수준이다.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우리나라 수준으로 NDC를 결정한다면 지구온도가 3~4℃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이란 비판을 받는 이유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연간 배출량 5위 △1인당 배출량 5위 △GDP당 배출량 8위 △1990년 이후 누적배출량 8위로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반면 국가 역량은 △UN 통계국 분류 ‘선진국’ △세계은행 소득수준 분류 ‘최고등급’ △유엔개발개획(UNDP) 인간개발지수 ‘최고등급’ △1996년 OECD 가입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수준 분류 ‘최고등급’ △GDP 세계 13위 등으로 결코 작지 않다.
우리나라의 2030 NDC는 이미 감축수단을 많이 소모한 주요 선진국에 비해서도 낮다. 주요 선진국들은 교토의정서에 따라 1990년대부터 감축의무를 할당받아왔다.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순위는 주요 67개국 중 63위로 비산유국 중 최하위다. 한국보다 순위가 떨어지는 나라는 러시아 UAE 사우디 이란 등 모두 산유국들이다.
우리나라는 1996년 OECD에 가입했고 교토의정서는 1997년에 체결됐다. 교토의정서가 체결됐을 때 우리나라는 선진국이었다. 그런데 UN 기후변화협약의 선진국 규정이 ‘1990년 기준 OECD 국가’여서 교토의정서 적용을 받지 않았다. 한국과 멕시코가 그런 경우다. 당연히 ‘1990년 기준 선진국만 감축 의무를 할당하면 그 이후 선진국 수준에 올라간 국가들은 왜 감축 부담을 같이 주지 않느냐’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전세계 평균감축률(61.2%) 이상 줄여야”
현재 정부는 2035년 새로운 감축목표 수립을 위해 4가지 NDC(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번째 안은 ‘위로 볼록’(-48%), 두번째는 ‘선형감축’(-53%), 세번째와 네번째는 ‘아래로 볼록’(-61% 또는 –65%)이다. 향후 추진될 대국민 공개 논의과정에서 4가지 2035 NDC가 검토될 것이다. 검토의 객관적 기준은 헌법재판소 결정과 국제사법재판소(ICJ)의 권고적 의견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헌법재판소는 2024년 8월 29일 “NDC는 기후위기라는 위험 상황에 상응하는 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결정하고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이행할 때 ①과학적 사실과 국제기준에 근거할 것 ②전지구적 감축노력에 공정하게 기여할 것 ③미래에 지나친 부담을 떠넘기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올해 7월 발표한 ‘권고적 의견’에서 “①(각)국가가 NDC를 결정할 재량은 1.5℃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한되고 ②NDC는 전지구적 이행점검 결과와 각국의 책임과 역량을 반영해야 하며 ③그렇지 않으면 국제위법행위로 원상회복 손해배상과 같은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창민 변호사(플랜1.5 정책활동가)는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배출책임이 크고 기후위기 대응역량이 강한 나라로 전지구적 감축 노력에서 더 많은 몫을 기여해야 한다”며 “2035 NDC는 적어도 1.5℃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세계 평균감축률(61.2%) 이상, 우리나라의 책임과 역량에 부합한 수준(65%)으로 수립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