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기후부 조직에 혁신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따른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다음달 유엔에 제출할 예정이다. ‘진전의 원칙’에 따라 2030년 목표인 2018년 대비 40% 감축보다 더 강화된 수치를 제시해야 한다. 이미 제출한 목표조차 달성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부담은 상당하다.
실제 우리나라는 지난 6년간 온실가스를 12% 줄이는 데 그쳤다. 그것도 코로나19 팬데믹 도움을 받아서였다. 2030년까지 40% 감축을 이루려면 앞으로 5년간 이보다 두 배 이상인 28%를 더 줄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2035년 감축목표로 산업계의 48% 감축안부터 시민단체의 65% 감축안까지 논의되고 있다. 그간의 논의과정을 지켜보자니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산업계 주장과 인류 생존을 위해 획기적인 감축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의 절박함이 모두 안쓰럽다. 산업계는 과거세대, 시민단체는 미래세대의 볼모가 되어있는 모양새이다. 어쨌든 지금 분위기로는 2035년 감축목표는 60% 이상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필자가 볼 때 이런 목표 설정을 위한 국가적 논의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정권 출범 때 야심차게 세웠던 목표의 달성을 위한 그간의 과정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씁쓸한 학습효과 때문이다. 목표는 정치적 선언에 머물렀고, 과정은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렸다.
최근 정부가 전력계통 혁신을 국정과제 우선순위로 설정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에너지고속도로 건설, 전기위원회 독립, 전력감독원 신설 논의 등이 들린다. 하지만 이 역시 정권의 변화와 상관없는 일관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그 성과는 다음 정부에야 비로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파괴적 전략과 혁신의 조합이 필요한 시기
당장 유엔에 제출할 목표수치에 대해서 지나친 국력을 소모하기보다는 실질적인 감축에 더 집중해야 한다. 목표를 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표달성을 위한 노력과 성과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적인 전략과 파괴적 혁신의 조합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가용한 모든 수단들을 동원해야 하고 그 전략은 지혜로워야 한다.
석탄발전 폐지에 따른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부담은 기설치된 LNG 발전설비들의 가동률만 높이더라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LNG 발전은 석탄 발전 대비 온실가스를 50% 이상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간헐성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원자력 또한 온실가스 감축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부여해야 한다. 눈앞에 닥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가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뺄셈이 아닌 덧셈이 필요하다.
동시에,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난(難)감축 영역들을 외면해서는 감축목표 근처에도 갈 수 없다. 철강이나 석유화학과 같이 원료 자체가 화석연료인 산업은 현재 알려진 수단만으로는 탈탄소가 불가능하다. 수소환원제철, 바이오나프타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진정한 산업전환의 수단들이 될지는 아직도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단들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2050년 탄소중립에 필요한 온실가스 감축량의 절반 이상은 지금까지 우리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수단들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수단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
때마침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이론을 발전시킨 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이 기존의 산업을 파괴적으로 대체함으로써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룬다는 이론이다. 이는 온실가스 감축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기존 방식의 연장선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니 파괴적 혁신 수단을 통한 감축을 추진해야 한다.
2035 감축목표는 비전 아닌 미션이 돼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최근 출범한 기후에너지환경부에는 혁신을 전담할 조직이 보이지 않는다. 단기간에 기존 산업부와 환경부 간의 물리적 통합에만 신경 쓰다 보니 이를 간과한듯하다.
기후부가 필요한 혁신기능들은 명확하다. 첫째, 온실가스 감축에 필요한 한계 돌파형 혁신 기술개발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둘째, 시장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 메커니즘을 활용할 수 있는 혁신적인 제도들을 과감하게 도입해야 한다. 셋째, 무엇보다도 시대적 전환의 발목을 잡고있는 각종 규제들의 혁신적인 파괴가 추진되어야 한다.
조만간 확정될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기후부의 비전이 아니라 미션이어야 한다. 비전은 구호이지만 미션은 사명이고 그 길은 혁신에서 찾아야 한다. 기후부는 혁신을 주도할 조직을 강화해 그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써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한 최초의 주무 부처로 평가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