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AI 시대 노동자 보호

독일, 산업전환 ‘노동4.0’에 따른 ‘산재4.0’ 마련

2025-10-31 12:59:58 게재

재택근로도 노동보호법·근로시간법·데이터보호법 준수해야 … ‘EU 플랫폼 노동지침’ 2026년까지 국내법에 담는다

노동의 존엄이 인정되지 않았던 과거, 노동자들은 자신이 노동자로 인식되는 것을 꺼렸다. 자녀에게 노동자라는 이름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땀을 흘려 일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는가? 이런 의심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인공지능(AI) 시대가 오고 있다. 독일의 사회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ennth)는 AI에 의해 다시금 빼앗길 노동의 존엄을 ‘인정투쟁’ 이론으로 경고한다. 독일과 유럽연합(EU)은 지금 AI 시대의 새로운 노동규칙을 만들기에 바쁘다. 산업재해 4.0, 평의회와 공동결정 4.0강화, 재택근로법, 연방차별금지청의 권고와 일반평등대우법, 유럽인공지능법 등 법제의 정비에 나섰다. 이들은 AI에 의한 인간 노동의 대체를 일자리 상실과 같은 눈에 보이는 경제적 위기를 넘어 ‘노동의 존엄성 훼손’이라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위기라고 여긴다. 독일 사례 연구, 한국 사회 맞춤형으로 정책을 개발하는 독일정치경제연구소는 올해 10주년을 맞이해 연구진과 연구네트워크들이 독일과 EU의 법제 정비는 어디까지 왔는지 살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노동세계 변화는 재택근무와 플랫폼 노동의 일상화로 나타났다. 그러면 재택근무 중에도 자녀를 동반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등·하원 하는 중에 사고를 당한 노동자를 산업재해보험으로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변화된 노동세계는 정책적 측면에서 ‘노동 4.0’이라는 이름으로 ‘산업 4.0’ 정책 혹은 전략을 구축하고 새로운 생산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노동법과 사회보험법 개혁을 촉진했다. 특히 건강한 노동의 보호는 ‘산재 4.0’으로 지칭된다. 1884년 산재보험을 최초로 도입한 독일은 연방정부 주정부 및 산재보험운영기관(개별 직종조합)이 연대해 독일공동노동보호전략(GDA)을 구성하고 산재예방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다. 산재 4.0이 공식적 용어는 아니지만 노동 4.0이라는 제도개혁의 큰 틀에서 산재 예방과 보상이라는 세부적 접근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명시적이진 않지만 우리 정부도 산재 4.0시대에 대응해 노무제공자의 산재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산재처리기간 단축, 자영업자와 농민을 포함한 전국민 산재보험제도 구축, 산재보험급여 선보장, 산재예방 적극적 지원 및 투자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 코로나19에 재택근로법 발의 = 코로나19 이후 독일의 재택근무는 모든 업종은 아니지만 대체로 상시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구인구직 플랫폼 잡웨어에 따르면 재택근무 이용의 업종별 차이는 극명하다. 상시적 활용도는 보험업(77.3%) IT(71%) 미디어분야(67%)에서 높은 반면, 의료(13%) 건축·수공업(13.8%) 외식업(15.6%)에서는 낮다.

독일의 재택근로는 홈오피스형과 모바일 워크형으로 구분된다. 2020년 10월 5일 발의된 재택근로법은 근로자에게 최소 6개월의 재택근로권을 부여하고자 했다. 이 법안은 정규 근로자에게 연간 24일의 재택근무(홈오피스) 권리를 보장하되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합의로 재택근무일 수를 연장할 수 있다. 사용자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그 요청을 거절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독일은 법률상 명문의 규정이 없어도 단체협약이나 사업장협약을 통해 재택근로권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입법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근로자의 재택근무권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법률에 명시할 필요성이 있다.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경우에도 사용자는 노동보호법, 근로시간법 및 데이터보호법을 준수해야 하며 위반 시 벌금이 부담해야 한다. 재택근무 중의 업무상 사고나 출퇴근 재해에 대해서는 회사 내에서 발생한 사고와 동일하게 보호한다.

독일의 플랫폼 노동자 규모에 대한 정확한 조사결과는 아직까지 없다. 대신 유럽연합(EU)에서 발표한 추정치를 참조할 수 있다. 2025년 EU 플랫폼 노동자 수는 대략 4300만명, 독일은 2021년 기준으로 대략 38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통상 디지털 업무 플랫폼을 통해 주당 20시간 이상 일하며 소득의 50% 이상을 플랫폼노동에 의존한다. 2021년과 2022년 기준으로 플랫폼 노동자의 월 총소득은 대략 1700유로 수준에 불과하다. 유사 직종의 정규직 노동자 소득(약 2536유로)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이에 독일은 2026년 12월 2일까지 ‘EU 플랫폼 노동지침’의 국내법 전환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독일의 플랫폼 노동자들은 1차적으로 2020년 12월 연방노동법원 판결에 근거해 사실관계를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인적종속성이 인정되면 근로자로 인정된다. 특히 초단기 노동형태인 ‘긱워커’ 혹은 플랫폼 배달종사자의 경우에 전형적인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하면서 플랫폼 운영자의 지시에 구속되고 인적종속에 따라 업무가 결정되면 계약의 명칭에 관계없이 근로자로 인정된다.

물론 EU 플랫폼 노동지침이 적용되면 고용관계에 대한 법적 추정이 가능하므로 플랫폼에 의한 통제 및 종속적 관계가 있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근로자로 추정될 수 있다. 다만 산재보상과 같은 사회보장 영역에 대해서는 직접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독일에서 어떻게 법제화 하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기본적으로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산재에 대해서는 일반 근로자와 동일한 보상이 제공된다. 산재보험법상 사용자 지위와 보험료 부담의무는 플랫폼 사업체에 부여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플랫폼 노동자는 개인사업자 또는 자영업자에 해당하므로 스스로 산재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일부 직종에 대해서는 자영업자의 의무가입이 인정되기도 하지만 해당 직종에 플랫폼을 통한 업무 수행이 제공되는 경우로 한정된다. 플랫폼 노동자가 산재보험의 피보험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노동자성 인정 여부를 판단 받아야 하므로 독일연금보험연합(DRV Bund) 산하 지위확인센터에 지위확인 신청을 할 수 있다. 지위확정절차를 통해 취업관계가 확인되는 경우에 보험가입 의무는 고용관계 개시 시점으로 소급해 적용된다.

독일은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급격히 증가 했다. 2020년 ‘재택근무법’을 발의했다. 일 가족 여가가 동시에 이뤄진다. 출처: https://www.test.de/

◆‘일하는 사람 보호 강화’ 보편적 통념 = 독일 사례는 산재보험을 최초로 설계하고 입법화한 국가라는 점에서 오늘날처럼 급변하는 디지털-인공지능(AI) 시대에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 산재보험법 역시 재택근무 중 산재보상에 대한 명시적 근거를 두고 있지 않지만 실제 업무관련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산재근로자로 보호한다. 물론 명문의 법 규정이 없이 실무상 지침을 통해 보호하는 방식은 향후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반면 플랫폼 노동자에 대해서는 이미 노무제공자로 보호하고 있으므로 독일에 비해 진일보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적용되는 직종을 제한해 보호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이처럼 각 국가의 노동법 및 사회보험법 체계는 다르지만 사회적 위험을 극복해 가는 과정과 방향성은 공통성이 있다. 시·공간적 경직성을 탈피해 노동현실에 부합하는 노동자, 즉 ‘일하는 사람에 대한 보호 강화’는 개별 국가의 제도적 특수성을 초월하는 보편적 통념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김영미 근로복지공단 근로복지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