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건설안전특별법, 3중 규제로 재해증가 요인 될 수 있다
건설안전특별법(건안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의 의무를 정한 법이어서 그에 속하지 않는 설계 감리 발주자의 의무를 정하고, 건설기술진흥법(건진법)에서 입법 취지인 기술진흥 외인 안전 부분의 분리가 입법 취지라고 한다. 설계 감리 발주자의 영향을 고려하면 입법 취지는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산안법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에 더한 3중 중복규제는 재해예방 실무 혼란과 낭비를 가중시켜 실질적 중대재해 감소에 장애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발의된 법안은 산안법과 중복 문제를 피하기 위해 제3조에 산안법에서 따로 정하고 있는 사항은 적용 제외로 설정했다. 그러나 다른 조항에 들어 있는 안전계획서 안전시설물 안전조직 안전교육 안전비용 등 안전관리 의무는 내용면에서 산안법규와 중복이 불가피하다.
건설공사 안전관리계획서(건진법)와 유해·위험 방지계획서(산안법)라는 중복 규제는 오래된 적폐다. 약 30년 전에 전자는 후자를 본떠 법제화됐다. 법규 제정 이후에야 중복을 인지한 당시 노동부가 중복 해소를 위해 건설교통부와 수차례 협의했으나 부처 간의 영역 주장이 맞서 실패했다.
두 계획서를 합본으로 하는 수준에서 정리됐으나 지금은 그 마저도 달리하는 기업의 이중업무가 돼있다. 시설안전과 작업안전의 차이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안전관리’와 ‘위험방지’가 ‘흰말’과 ‘백마’와 같은 이음동의어인 것과 같이 두 계획은 중복적 내용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일부 다른 내용도 우산의 천과 뼈대처럼 분리되는 것이 불합리하다. 전문성과 건설업 특성 반영면에서 건안법 입법이 타당하다면 선박업 광산업과 같이 건설업을 적용 제외로 하는 산안법 개정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기술과 안전 분리, 시대 착오적 발상
건진법이 건설기술에 관한 법이니 안전 관련 내용을 분리시켜 입법한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안전을 생산관리와 별도로 확보하는 방식은 1930년대 산업안전 태동기 하인리히의 발상이다.
당시는 기술 수준 때문에 시설 자체의 신뢰도가 낮고 산업안전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대였다. 현재 대비 재해율이 엄청나게 높았던 당시는 눈에 보이는 결함 제거와 보호구 착용 등 기초적인 조치로도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높아진 설비의 신뢰도와 안전의식 덕에 재해율이 당시와 비교불가 수준으로 낮아진 현 상황에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비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미치지는 못하나 우리 사회도 같은 상황이고 최근 대형 현장 중대재해 대부분은 시공기술과 분리된 안전활동으로 예방하기 어려운 사고 결과들이다.
안전난간 추락방호망과 같은 안전시설물이 필요 없도록 하는 설계와 시공방법 시공관리 개선이 우선이고 부득이 설치해야 할 경우라도 설계와 시방서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것이 현재 안전선진국에서 추구하는 시스템적 접근 즉 설계 시방 공사관리로 안전이 확보되도록 하는 것이다.
법과 규제는 바둑의 정석에 해당한다. 둘 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까지는 필요하나 더 나아가려면 넘어서야 한다. 우리 산업안전도 그 한계에 진입했고 그 인식에서 2013년에 기업 자율에 맡길 수밖에 없는 위험성평가가 법제화됐다.
재해예방의 1 순위는 작업과 설비에서 사고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다. 때문에 생산 설비와 작업의 구체적인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법규와 규제가 그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토부에서 중대재해 감소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면 다단계 하도급과 일용직 고용과 같은 구조적 문제가 우선 과제고, 기술적인 면이 필요하다면 기존의 법령에 녹여 넣을 일이다. 건진법에 들어 있는 산업안전 부분은 분리가 아닌, 산안법을 건설업 적용 제외로 개정하지 않는 한 폐지가 마땅하다.
입법전 법규간 상호작용 반드시 정리해야
9월 15일에 보도된 노동안전 종합대책에 엄청난 규제와 입법 사안이 들어있다. 우리 사회는 여러 기능들의 상호작용으로 유지되는 하나의 생태계다. 입법 전에 관련 법규들 간 중복 연동 보완 상쇄 등의 상호작용을 반드시 확인·정리해야 한다.
공통 기준인 법과 규제가 현장과 작업의 구체적인 상황에 반하지 않도록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것이 정리되지 않으면 종합대책이 아닌 사고 예방에 부담될 대책더미에 불과하다. 건안법을 발의한 국회의원도 산안법과 중복에 관해 두 부처의 업역 문제를 정리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자기 부처의 영역 확보가 행정 목적보다 우선인 관료행정 하에서 중복과 공통 기준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건안법은 재해 증가 요인이 될 수 있다.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