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창조적 파괴가 고향사랑기부제 활성화한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창조적 파괴가 성장의 내적 동력’이라는 이론을 정립한 교수들에게 돌아갔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혁신을 통해서만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고향사랑기부제도 마찬가지다. 지역 문제는 중앙이 아닌 지역이 풀어야 한다. 해결할 힘은 ‘의지’보다 ‘재원’에서 나온다. 고향사랑기부제 역시 이런 취지에서 출발했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모금액은 2023년 약 650억원, 2024년 약 879억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일본의 1조2700억엔 규모와 비교하면 아직 미미하다. 일본은 전액 세액공제 한도 확대로 기부를 유도하고, 법인 참여 허용으로 재원의 저변을 넓혔다. 우리도 활성화를 위해 전액 세액공제 한도 상향이 필수다.
최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고향사랑기부제 운영 구조의 취약함이 드러났다. ‘고향사랑e음’은 주민등록시스템과 연결되어 기부자의 주소와 한도 등을 사전 확인하는데, 시스템이 멈추자 기부 절차도 함께 중단됐다. 정부는 긴급하게 사후 확인 방식으로 전환했지만 이 과정에서 답례품 포인트 지급이 지연되는 불편이 발생했다.
기부금액 확대와 법인 기부 허용 필요
한번의 사고로 기부와 행정이 동시에 멈춘 것은 제도가 한쪽 시스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는 공공시스템만을 고집하기보다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분산형 운영체계도 만들어야 한다. 주민등록시스템 장애와 같은 상황에서도 기부 절차가 이어질 수 있도록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는 예비 운용체계를 두고, 주소·한도 확인 절차도 사후 검증 방식으로 개선해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또 하나의 핵심 과제는 ‘법인 기부 허용’이다. 일본의 ‘기업판 고향납세’처럼 법인이 지역문제 해결에 기부하도록 제도화하면 지역사회에 새로운 재정 마중물을 공급할 수 있다. 법인 기부가 청년 일자리, 돌봄·복지, 탄소중립, 지역문화 등 구체적인 사업에 직접 투입되도록 설계하고, 지자체는 주민참여예산과 연계해 사용처와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아울러 기부 요청 제한, 정보 공개, 모금 편중 완화 장치를 병행하면 기업은 ‘부담금 납부자’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지역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향사랑기부제가 자치사무임을 명확히 인정하는 일이다. 제도의 목적은 중앙의 통제가 아니라 지방의 자율적 모금과 집행을 통한 문제 해결이다. 그러나 현실은 시행령과 지정기부 지침 등으로 지자체장의 재량이 과도하게 제한돼 있다. 게다가 주소·한도 사전 확인은 절차만 길게 해 참여를 저해한다.
이를 사후 확인으로 바꾸고 행안부는 통제가 아닌 표준과 감독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 또 홍보 횟수 제한(분기 2회) 폐지, e음 유지비와 홍보비의 국가 부담으로 기초지자체의 부담을 덜어야 한다. 5월 대한민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차기 정부에 전액 세액공제 50만원 확대를 공식 제안했다. 이는 단순한 세제 조정이 아니라 지방소멸 대응의 첫걸음이다. 지역의 문제를 지역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제도를 설계하자.
지방의 자율적 모금과 집행 보장해야
고향사랑기부제는 단순 모금이 아니라 지방재정 확충과 자치분권의 상징, 그리고 시민이 지역 미래에 투자하는 참여형 자치의 실험실이다. 고향사랑기부제의 진정한 활성화는 제도의 완성보다 지자체 자율성 회복에서 시작된다. 협력·분산·자율의 원칙으로 기부의 선순환을 만들 때 지방은 다시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