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한미 관세협상이 남긴 과제

2025-11-04 13:00:02 게재

한국과 미국의 관세협상이 무난하게 끝났다.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 가운데 조선분야 1500억달러를 제외한 현금투자를 10년 나누어 집행하기로 한 것이다. 3개월 가량 이어진 협상에서 비교적 선방한 셈이다.

환율도 상승세를 멈추고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협상결과가 한국이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비교적 선방한 관세협상으로 대미 수출 전선 불확실성 일부 걷혀

이런 협상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정부 협상팀의 노고가 컸다고 전해진다. 특히 김정관 산업자원부 장관은 미국의 러트닉 상무장관을 상대로 확고한 자세로 한국의 입장을 관철시키기에 애썼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따라 대미수출 전선을 가로막고 있던 불확실성의 안개는 상당부분 걷혔다. 철강과 알루미늄 등에 대한 50% 관세율은 여전히 적용되고 있지만 이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적어도 일본과 유럽연합과는 달리 한국에만 적용되던 25% 관세율은 똑같은 15%로 낮아지게 됐다.

이번 협상 결과가 고율관세 때문에 미국시장에서 고전하던 기업들에는 반가운 소식이다. 특히 현대자동차는 일본과 유럽의 막강한 경쟁사들과 힘겹게 다퉈야 했다. 가격경쟁력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관세로 인한 가격인상분을 판매가격에 붙이지 않고 스스로 떠맡았다. 이 때문에 영업이익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제는 그런 압박에서 벗어났으니 자신감도 새록새록 붙을 것이다. 그렇기에 현대차 정의선 회장도 이재명 대통령에게 “정부에 큰빚을 졌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정부가 노력하고 그 노고를 기업이 알아주니 보기에 좋은 모습이다.

물론 지난해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의거해 무관세 수출하던 행복한 시절은 끝났다. 그렇지만 일단 최악은 피했다. 지금 상태에서라도 내실을 기하면서 호시절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거나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이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도 끝나고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고위당국자들도 돌아갔다. 한국에게는 이제 차분하게 후속대책을 잘 세워야 한다는 숙제가 남았다.

우선 해마다 200억달러 범위에서 실행될 대미투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한미 합의에서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단서를 달았으니 투자대상의 선정을 되도록 한국이 주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차피 마지못해서 투자하는 것이지만 투자를 통해서 이익을 낼 뿐만 아니라 국내 산업에도 유의미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기업이 직접 현지에 진출하거나 각종 기자재와 원부재료를 한국기업이 공급하는 것이 요구된다.

사실 이번 협상 타결에 따라 대미투자가 늘어나는 반면 국내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가장 우려된다. 이는 국내 고용과 부가가치 창출에 타격을 줄 것이다. 이같은 부작용과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투자집행 과정에서 국내 기업을 각별하게 배려할 필요가 있다.

미국 비자제도 역시 획기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조지아주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공장에서 벌어졌던 한국 노동자 구금사태 재발을 막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노동자들이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투자국의 국민으로서 당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미국에 제도정비를 요구해야 한다.

정부 기업 모두 내실 다지면서 경쟁력 키우기 위한 노력 기울여야

내부적으로도 전열을 확실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 고율관세에 짓눌렸던 기업들이 경쟁력 회복의 관문이 열렸지만 여기에 만족해선 안된다. 경쟁력을 더욱 키우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현대차도 관세협상 타결소식이 전해진 후 앞으로 더욱 내실을 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답을 말한 것이다.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가격과 품질 모두 다른 나라 기업들을 압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힘써야 한다.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한눈 팔지 말고 기업체질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의 관세압박으로 말미암아 한국의 대미수출은 최근 크게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지난달 대미 수출은 87억1000만달러로 16.2% 감소했다. 2023년 1월(81억달러) 이후 33개월 만에 가장 낮은 것이다. 줄어든 대미수출이 당장 급격하게 늘어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제 적어도 외부적 요인을 탓할 수는 없게 됐다. 오로지 참된 실력만이 결과를 좌우한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