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원의 미국 현장 리포트

시험대 오른 캘리포니아 기후 리더십

2025-11-04 13:00:02 게재

지난달 트럼프행정부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초당적 지지를 받아온 온실가스 배출 추적 및 보고 프로그램을 영구적으로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이 프로그램은 거의 20년 동안 미국과 캘리포니아 전역의 수천개 산업시설이 대기 중으로 배출하는 온실가스 오염을 정기적으로 추적하고 보고하도록 의무화해왔다. 연방 프로그램의 시설별 데이터는 사실상 국가 배출 추세를 모니터링하고 감축 기회를 파악하며, 주 및 지역 정책을 수립하고, 지역 사회가 인근 오염원을 식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보호국(EPA) 행정관 젤딘은 해당 프로그램이 “비용이 많이 들고 불필요한 규제 부담을 초래한다”며 이를 축소함으로써 미국 기업들이 최대 24억달러의 규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EPA의 보고 규정은 실질적인 환경 개선 효과가 부족하다”며 관련 규제가 비용 대비 효용성이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EPA의 온실가스 보고 프로그램은 약 8000개의 발전소, 정유소, 그리고 기타 주요 산업 시설에 대해 매년 배출량을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으며, 이들 시설은 국가 전체 배출량의 약 90%를 차지한다. 온실가스는 명백히 기후변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EPA는 이번 결정이 확정될 경우 대부분의 대형 산업시설과 모든 연료 및 산업용 가스 공급업체의 온실가스 보고 의무를 면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조치는 여러 기업 단체들이 행정부에 연방 기관 전반의 규제완화를 요구하며 로비한 결과로 나온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이번 발표를 두고 이미 미국의 핵심적인 기후정책을 약화시켜 온 행정부가 또 한번 타격을 가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EPA는 올해에만 대기 및 수질 관리 규정을 포함해 석유와 가스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30건이 넘는 규칙과 규제의 철회를 제안했다. 그중에는 화석연료 배출이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위해성 판정의 폐지도 포함되어 있다.

온실가스 배출 보고 프로그램 폐지의 파장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650명 이상의 전직 EPA 직원으로 구성된 환경보호네트워크는 이 같은 규제완화 조치로 인해 2050년까지 약 20만명의 조기 사망이 발생하고, 미국 어린이들에게 매일 1만건 이상의 천식이 일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 폐협회 소속 배럿은 “이번 조치는 기후과학과 인간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보”라며 “이러한 연방 차원의 후퇴는 오히려 캘리포니아가 지속적으로 보여온 기후 및 청정 공기 분야의 리더십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사례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는 전국을 선도하는 기후정책의 중심지이지만, 동시에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대기오염 문제를 겪는 지역이기도 하다. 로스앤젤레스는 지난 26년 중 25차례나 미국에서 스모그가 가장 심한 도시로 선정될 정도로 오랜 기간 대기문제로 고통받았다. 올해 초 트럼프 행정부는 EPA로부터 캘리포니아가 자율적으로 엄격한 차량 배출 기준을 설정할 권한을 박탈하며 주 규제 권한 일부를 직접 겨냥했고, 이에 캘리포니아주는 즉시 소송으로 대응했다.

캘리포니아 환경보호청 산하 핵심 기관인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는 연방 프로그램보다 훨씬 엄격한 주 차원의 온실가스 보고 제도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주 정부 관계자들은 이번 연방 결정이 캘리포니아의 독자적 기후정책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캘리포니아, 미국 기후정책의 중심지

연방 프로그램과 달리 캘리포니아 시스템은 단순한 데이터 수집을 넘어 규제 준수와 직접 연결된다. CARB의 보고 체계는 온실가스 배출 상한(cap)과 분기별 경매를 통한 캡앤트레이드 프로그램과 통합되어 있으며, 보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배출 허용량을 점진적으로 줄여 전체 기후오염을 감축한다. 이 프로그램은 2045년까지 100% 탄소중립 달성의 핵심 정책으로 평가되며, 주의회는 최근 향후 15년간 캡앤트레이드 제도를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2023년 기준, 캘리포니아 온실가스보고 프로그램은 550개 이상의 시설에 적용됐다. 여기에는 쉐브론 마라톤 필립스66 등 주요 화석연료 기업이 포함된다. 총 배출량은 약 3억7000만톤으로 연방 프로그램 보고량 25억8000만톤과 비교된다. 그러나 EPA의 새 제안에 따라 대형시설은 연방 보고 의무에서 제외될 수 있다. 주 보고 의무는 여전히 유지되지만 관계자들은 “오염은 결코 주 경계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LA 시장을 포함한 약 350명의 미국 초당적 시장들로 구성된 기후시장연합 이사 라이트는 오염자에게 배출량 보고를 의무화하는 것이 지방정부가 산업이 주민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하는 핵심수단이며, 대기오염으로 매년 약 13만5000명이 사망하고 도시들은 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역 사회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리고 전국의 사람들이 독성을 유발하는 화학물질 없는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석유 대기업 엑슨모빌이 최근 캘리포니아 주의 두건의 온실가스 배출 보고 법률을 대상으로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4일 캘리포니아 동부지방법원에 제출된 30쪽 분량의 소장에서 엑슨모빌은 해당 법률이 수정헌법 제1조(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된 법률 중 하나는 2023년 제정된 기후기업데이터책임법(SB 253)이다. 이 법은 CARB가 연간 매출 10억달러 이상의 공공·민간 기업에게 세 가지 범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한다. 스코프1은 직접 배출, 스코프2는 외부에서 구매한 전력·열·냉방 등 간접 배출, 스코프3은 공급망 전반의 배출을 포함하며, 스코프3은 산업 전체 배출량의 약 75%를 차지한다. 스코프1·2 보고 의무는 2026년, 스코프3은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소장에 따르면 엑슨모빌은 이번 법안이 대형기업을 특정해 사회적 비난을 유도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소장에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엑슨모빌이 잘못된 관점을 옹호하도록 강요받지 않도록 보호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컬럼비아대 기후법 전문가 제라드는 이번 사건이 엑슨모빌의 기후규제 반발 패턴을 보여준다고 평가하며 “법률은 석유 생산·운송·정제 방식을 바꾸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공개정보에 관한 사항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2024년 미국 상공회의소, 캘리포니아 상공회의소, 미국 농업연맹 등 여러 단체가 동일 법률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예비금지 명령을 기각했다. 판사 라이트는 “법률이 상업적 발언을 규제하긴 하지만, 수정헌법 제1조를 불법적으로 제한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판시했다.

별도의 법안 SB 261은 연간 매출 5억달러 이상 기업에게 기후 관련 재무위험과 대응조치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며, 주 내 2600개 이상의 기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해안 공장을 보유한 기업은 해수면 상승 위험을, 자동차 제조업체는 전기차 수요 변화를 보고해야 한다. 보고 자료는 기업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

엑슨모빌 소송, 기후대응에 불확실성 남겨

이번 상황은 캘리포니아의 강력한 기후 리더십, 연방 규제 완화, 대형 석유기업 반발이 맞물린 복합적 양상을 보여준다. 주 차원의 엄격한 온실가스 보고와 감축정책은 유지되지만 연방 프로그램 축소와 기업 소송은 미국 전역의 기후대응과 공중보건 정책에 불확실성을 남긴다.

그럼에도 캘리포니아는 독자적 정책과 규제 체계를 통해 기후 리더십을 지켜나갈 것이다. 이는 향후 전국적 기후정책과 산업 정보 공개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CA 변호사·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