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에 군함 몰아넣은 미국, 진짜 노림수는
최근 미국은 카리브해 남부 일대에 해군 자산의 10% 이상을 집중배치했다. 특히 베네수엘라 인근 해역에서의 군함 및 상륙전력 증강은 지역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마약·무기 밀매 대응이 명분이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광범위한 역내 전략적 시그널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이 내세운 첫 번째 목적은 자국으로 유입되는 마약 및 무기 밀매를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 해군은 이 지역에 단순 치안 작전 이상의 전력을 투입한 상태다. 예컨대 남부 카리브해에 이미 7척 이상의 군함과 1척의 핵추진 잠수함이 배치되었거나 배치될 예정이다. 4500명 이상의 미 해군 및 해병대 병력도 함께 투입되었다는 보도는 단순 단속을 넘어선 군사적 준비태세를 시사한다. 미국이 표방하는 ‘마약과의 전쟁’이 사실상 정권 압박 또는 균열을 꾀하는 외교적 메시지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론 마약단속 명분, 실제론
‘정권 압박’ 메시지
둘째 목적은 니콜라스 마두로정권을 향한 외교·군사적 압박을 강화해 베네수엘라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것이다. 미 재무부·국무부는 마두로 대통령 및 그 주변 인사들에 대한 제재 강화와 현상금 확대를 통해 ‘범죄자 집단의 지도자’로서의 색채를 부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군함외교는 마약·무기 밀매 대응이라는 테두리를 넘어 체제변경을 암시하는 강한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군함외교는 카리브 역내국가들 간 외교지형에도 적잖은 파장을 미치고 있다. 특히 트리니다드토바고(T&T)는 미국과의 안보공조를 강화하며 밀착 행보를 보였고 이는 인근국의 자극과 우려를 야기했다. 베네수엘라는 T&T와의 에너지 협력 및 가스개발 협정을 전격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T&T는 “우리는 베네수엘라에만 기대한 적이 없다”며 반박했다. 급기야 베네수엘라 의회는 T&T 총리를 외교적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지정하는 극단적 대응을 내놓으며 양국관계는 빠르게 냉각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역내 통합을 표방해온 카리브공동체(CARICOM)의 정책공조에도 분열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카리브지역은 더 이상 평화의 수역(zone of peace)이 아니며 마약·안보 문제를 넘어 미중 전략경쟁이 투사되는 지정학적 교차점으로 변모했다. 중국은 중남미 카리브지역 내 경제·인프라·항만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다. 이 지역 수심이 깊은 항만의 약 1/3을 중국 기업이 투자했거나 운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미국은 해군력 과시를 통해 자신의 뒷마당으로 여겨온 카리브해에서의 영향력을 재확립하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국의 군함외교가 실제로 의미있는 외교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 강압적 메시지의 효과는 분명하다. 미국 해군이 마약운반선을 격침의 표적으로 삼았다는 주장과 함께 베네수엘라를 포함한 역내국가들이 경각심을 갖게 된 점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제약이 뚜렷하다. 해상주권·국제법적 논란, 해당 국가들과의 외교마찰, 역내국가들 사이의 반미 여론 등이 군사기반 압박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한다. 게다가 미 해군이 강조하는 마약단속이 실제로 주권침해와 소국을 희생양으로 삼는 전략경쟁의 틀로 읽힌다면 역내국가들은 단일대오를 형성하면서 자율적인 전략적 선택을 하고자 할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의 역내 외교정책에 실체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중 패권경쟁의 새 전장이 된
카리브해
결론적으로 미국이 카리브해에 전개하는 군사·해군력은 단발적 개입이 아니라 중기적 전략의 일부로 보인다. 마약·무기 밀매 차단뿐 아니라 베네수엘라정권의 외교적 약화를 노리는 복합적 목적이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군사력만으로는 적실성있는 외교성과를 담보하기 어렵다. 법적 정당성, 역내국가들과의 신뢰회복, 지역맞춤형 협력 등 다층적 전략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군함외교는 긴장과 위협만을 남기고 실질적 영향력 확보에는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향후 카리브해가 갖는 지정학적 가치와 미중 경쟁이 격화되는 흐름 속에서 미국은 단순한 해상작전을 넘어 진정한 지역전략의 전환이 요구된다. 카리브 내 영향력을 재확립하려는 전환적 조치들은 미국의 아태지역 전략 구사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권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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