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프라 위해 유럽에 몰려드는 빅테크 자본

2025-11-12 13:00:02 게재

구글·MS·엔비디아 등 대규모 투자

EU, 규제 완화로 ‘기술 주권’ 확보

유럽이 인공지능(AI) 인프라 전쟁의 새 격전지로 떠올랐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유럽 각국에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를 연이어 발표했다.

유럽은 기술 주권 확보와 친환경 에너지 연계 산업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노리고 있다. 이를 위해 유럽연합(EU)은 AI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어 향후 유럽이 AI 산업 전략적 거점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알파벳 자회사 구글은 1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9년까지 총 55억유로(약 9조3000억원)를 독일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투자금은 주로 AI 기반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에 사용된다. 프랑크푸르트 인근 디첸바흐에 새로운 데이터센터를 신설하고 기존 하나우 데이터센터도 대폭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데이터센터는 유럽연합의 ‘데이터 국외 반출 금지’ 규정을 준수하면서도 AI 기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구글은 전력 공급에도 친환경성을 강조했다. 독일 에너지 기업 엔지(Engie)와 협력해 육상·해상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탄소중립 에너지(CFE)를 확대 도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2026년까지 구글의 독일 사업장 전력의 85% 이상을 청정에너지로 채우겠다는 목표다.

구글은 이번 투자가 독일 경제에 미칠 긍정적 효과도 함께 제시했다. 연간 10억유로(약 1조7000억원) 규모의 국내총생산(GDP) 기여와 9000개의 일자리 창출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특히 자사의 뮌헨 사무소인 ‘아르눌프포스트’를 확장하고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사무소도 확대해 물리적 존재감을 더욱 강화한다.

라르스 클링바일 독일 부총리는 이번 발표에 대해 “독일을 미래 기술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삼겠다는 글로벌 기업의 강력한 신뢰의 표현”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다만 구글의 이번 투자에 대해 독일 정부의 직접적인 보조금은 제공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같은 날 포르투갈 남부 항구도시 시네스에 100억달러(약 14조6000억원)를 투입해 데이터센터를 신설한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시네스는 대서양 연안에 위치해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 핵심 지점이다. 차세대 통신과 데이터 전송의 중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갖췄다는 점에서 이번 투자는 기술적·전략적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브래드 스미스 MS 사장은 리스본에서 열린 ‘웹 서밋 리스본 2025’ 행사에서 “이번 투자가 포르투갈을 책임 있는 AI 개발의 유럽 기준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도 지난 4일 독일 통신사 도이체텔레콤과 함께 뮌헨에 세계 최초 AI 산업단지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투자 규모는 10억유로(약 1조6000억원)에 달하며 AI 칩과 서버, 데이터처리 시스템이 통합된 복합 클러스터형 인프라가 구축될 예정이다.

AI 스타트업 앤트로픽은 프랑스 파리와 독일 뮌헨에 새 사무소를 열고 영국과 아이슬란드와의 기술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AI 챗봇 ‘클로드(Claude)’를 운영 중인 이 회사는 유럽 내 입지를 빠르게 넓히고 있다.

이처럼 유럽이 AI 인프라 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배경에는 유럽연합의 정책 변화가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최근 AI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관련 규제 완화와 유예 조치를 검토 중이다. 기존 AI 법안은 투명성, 안전성, 책임성을 강조하며 비교적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하지만 지나친 규제가 오히려 기술 발전을 저해한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일정 기간 규제 적용을 유예하거나 세부 기준을 완화하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다.

EU는 미국과 중국에 비해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온 AI 분야에서 이번 규제 완화와 함께 공격적인 외자 유치로 반전을 노리고 있다. 더군다나 청정에너지와 연계된 AI 클러스터 전략은 기술 경쟁력뿐만 아니라 지속가능성이라는 시대적 요구에도 부합한다는 평가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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