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국회는 이제 단계적 개헌에 나서라
헌법은 개헌안을 국회가 의결한 뒤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 국민투표를 집행하기 위한 국민투표법이 2014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으로 기능불능에 빠졌었다. 주민등록이 없는 재외국민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약 12년의 세월이 흐른 뒤 최근에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국민투표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개헌을 위한 중요한 절차적 걸림돌이 해소된 것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10일에 6월 3일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를 제안하면서 “전면적 개헌이 어렵다면 국민적 합의가 충분한 사항부터 단계적으로 개헌에 나서야 한다”는 단계적 개헌론을 제시했다.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 국회 사후승인권 신설을 통한 대통령의 비상계엄선포권 통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 발전 등 세 가지를 내용으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17일 국무회의에서 단계적 개헌론을 수용하면서 화답했고 법무부가 법리 검토에 들어갔다. 19일과 30일에는 국민의힘을 제외한 여야 6개 정당이 우의장이 제안한 세가지 안에 부마민주항쟁 정신 전문 수록을 추가한 개헌에 합의하면서 6·3 지방선거와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동시 실시가 점점 가시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의힘 소속 9명 이상 이탈표 있어야 가능
문제는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기 위해서는 그 전에 국회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개헌안이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개헌안 국회 의결 시점을 기준으로 봤을 때 지방선거 출마로 의원직을 사퇴하는 지역구 의원이 생기는 등 재적의원 수나 여야 각 정당별 의원수에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국회 재적의원이 295명이어서 재적의원 2/3의 찬성을 얻으려면 197명의 개헌 찬성표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개헌에 합의한 여야 6개 정당의 의원수에 무소속의원 6명을 합쳐도 188표에 불과하다. 국민의힘 의원 중 적어도 9명은 이탈해야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투표를 위해 헌법과 국민투표법의 기간규정들을 역산해보면 아무리 늦어도 4월 7일에는 개헌안 발의가 이루어지고 국회 의결은 5월 4일에서 10일 사이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개헌안 발의는 헌법에 의해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만 있으면 되므로 국민의힘의 협조가 없어도 가능하다. 또 발의 다음날인 4월 8일에 국민투표법에 따라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 공고가 이루어져도 국민투표법상 재외투표인 등록 신청에 20일이 소요되는 등 공고 후 국민투표까지 최소 56일이 소요된다.
그리고 해당 개헌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날로부터 30일에 해당하는 날의 직전 수요일에 국민투표를 실시하도록 국민투표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개헌안 국회 의결은 반드시 5월 4일에서 10일 사이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우 의장이 30일 열린 여야 6개 정당 개헌 연석회의에서 국민의힘 설득 과정과 개헌 발의과정을 동시에 진행하겠다고 밝힌 이유다.
또한 국회법은 개헌안에 대한 국회 본회의 표결을 기명투표로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장실에서는 국민의힘 의원들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기명투표를 해야 하는 만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때처럼 개헌반대의 당론이 정해지더라도 당론을 따르지 않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상당수 나오리라고 기대하는 눈치다.
한 줄이라도 바꾸는 변화부터 시작할 때
6.3 동시투표를 제안하는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 개헌안 국민투표율 제고다. 지방선거와 국민투표를 함께 하면 투표편의성이 높아져 투표율도 오른다. 헌법에 의해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가 없으면 개헌은 없던 일이 된다. 둘째, 비용 절감이다. 2018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추산에 의하면 개헌 국민투표를 단독으로 실시하는 비용은 1555억원이지만,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하는 경우엔 328억원으로 1227억원이 절감될 수 있다는 보고서가 있다.
이제 국회는 여야 합의를 어렵게 만드는 대통령 연임제 등 권력구조 개편 논의는 추후로 미루고, 여야 합의가 가능한 것부터 단계적 개헌에 나서야 한다. 개헌은 이제 당리당략의 문제가 아니라 인공지능 이란전쟁 등으로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내야 할 ‘생존의 문제’다. 우의장의 말대로 이제 헌법의 “한 줄이라도 바꾸는 것으로부터 변화를 시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