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탁 칼럼

국민추천제 주인공의 ‘셀프 추천, 셀프 몰락’

2026-04-01 13:00:03 게재

얼마 전 현직 산림청장이 음주운전 중 사고를 내 면직됐다는 뉴스를 보면서 여러 상념이 떠오른다. 사고 다음날 청와대가 “중대한 현행 법령 위반 행위를 해 물의를 야기한 사실을 확인하고 대통령이 직권면직 조치했다”고 발표한 점에 별 이의는 없다.

중대한 법령 위반이 음주운전이라는 구체적 사실은 발표 내용에 없었지만 언론 취재에 확인해 주는 방식으로 국민에 알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김인호 당시 청장이 운전하는 차량이 버스와 승용차 2대를 잇달아 들이받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행인까지 칠 뻔한 영상이 가감없이 미디어에 공개돼 사고에 대한 의문은 말끔히 해소됐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우선 왜 차관급 기관장이 나라에서 제공한 기사와 차량을 굳이 마다하고 직접 자기 차 운전대를 잡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사고가 금요일 오후 10시 50분 성남시 분당구 네거리에서 발생한 걸로 보아 세종청사에서 근무를 마친 뒤 성남 자택 인근에서 사적모임 자리를 가진 것으로 추정은 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운전기사는 옆에서 대기했다가 기관장을 집까지 모셔 드리는 게 일반적이다.

김 전 청장이 사적용무로는 절대 관용차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남다른 윤리의식을 가졌는지 모르겠으나 산림재난대응의 최고 사령탑이 산불조심기간에 자기 차량을 운전해 술자리로 갈 생각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해 안된다. 사고 난 뒤 김 전 청장은 “내가 왜 직접 운전을 해 가지고…” 하며 가슴을 쳤겠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풀리지 않는 의문, 왜 운전대 직접 잡았나

그가 엎지른 물은 생각보다 여파가 크다. 그는 이재명정부가 야심차게 도입한 국민추천제의 첫 주인공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국민추천제 시행을 알리면서 “국민이 국가운영의 주체가 되어 주도권을 행사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며 의미를 강조했다. 이 제도에 따라 추천된 사람이 1만명도 넘지만 이 가운데 실제 고위공직에 임명된 경우는 산림청장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임명되기까지 과정과 절차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그는 국민추천제 게시판에 “존경하는 이재명 대통령께서 추진하시는 진짜 대한민국의 산림정책을 위해 김인호 교수를 산림청장으로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라는 글을 올린 장본인이다. 문장으로 보면 제3자의 글 같지만 실은 자신이 쓴 글이다. 그는 국회에서 “내가 산림청장에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해 나를 추천했다”고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국민추천제에 자기추천도 가능하게 돼 있으니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어색하다는 걸 본인만 모르는 것 같다. 자기 추천이라면 최소한 “저 김인호, 잘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문법을 바꿔 써야 하지 않았나.

그는 셀프 추천 후 자신이 임명된 사실을 “언론보도를 보고 알게 됐다”고 말해 국회 분위기를 뜨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대체 어느 정부가 차관 인사를 당사자에 통보않고 언론에 먼저 발표한단 말인가. 현직 장·차관을 경질할 때 언론 발표로 가름하는 경우는 있어도 신임 차관이 언론 보고 임명 사실을 알았다는 얘기는 도대체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그가 산림행정의 수장으로서 적임자인지 의문을 품게 만든 에피소드는 또 있다. 지난 1월 27일 생중계된 국무회의에서 그는 제대로 업무파악이 안된 때문인지 대통령의 날카로운 질문에 시종 버벅거렸다.

대통령이 “야간 산불진압이 가능한 헬기를 매입해 이미 3대 보유하고 있으면서 그동안 운용을 하지 않았고, 그런데도 이번에 2대를 추가 매입했다는 말이냐”는 취지로 묻자 “네. 못했습니다. 훈련이 안돼 있었고, 야간 헬기 운용은 거의 장님이 운전하는 거랑 똑같습니다"라고 초점에서 빗나간 얘기를 했다. 마냥 주기장(駐機場)에 세워둘 거면 뭣 하러 비싼 돈 들여 헬기를 사오느냐는 질타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생중계를 본 산림청 직원들은 아마 “청장님이 저렇게 답하면 안 되는데…”하고 안타까워했을 것 같다. 실제로는 야간운행이 가능한 헬기를 구입했지만 조종사 훈련을 해줄 미국 회사가 구조조정 차원에서 훈련인력을 해고하는 바람에 산림청에서 자체 교육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야간에 헬기를 띄우는 일은 안전문제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다는 걸 설명하면서 난데없이 시각장애인을 비하하는 옛날식 표현을 사용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첫 수혜자 몰락, 만신창이 된 국민추천제

김 전 청장이 국민추천제를 통해 발탁된 것은 허울일 뿐 정권 실세와 인연으로 출세했다는 야당 주장을 검증할 길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국민에게 잔뜩 기대를 품게 한 국민추천제가 첫 수혜자의 몰락으로 한순간에 만신창이가 됐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제도를 기획하고 시행한 청와대는 이에 대해 무어라 설명 한 마디, 반성 한 마디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셀프 추천으로 정부 요인이 된 사람이 셀프 사고로 소리없이 퇴장하는 걸 보면서 드는 씁쓸한 생각이다.

신한대 특임교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