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70년대 오일쇼크에서 교훈찾기
원유·석화제품 중동 의존 90% 넘어 … 석유위기 땐 기업혁신으로 정상 올라
1973년 11월 일본 오사카에 있는 한 뉴타운 슈퍼마켓에서 주부들이 두루마리 휴지를 사기 위해 한꺼번에 몰려와 서로 몸싸움 하는 장면이 신문과 방송에서 보도된 이후 전국적인 ‘두루마리 휴지 소동’의 출발이 됐다.(마이니치신문 등 당시 언론)
2026년 3월 25일 도쿄에 있는 자민당 본부에서 이례적 집회가 열렸다. 트럭과 택시 버스 등 3개 전국 단체가 주최한 ‘연료가격 급등 경영위기 돌파 궐기대회’다. 유류 가격 상승으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운수업계가 행동에 나섰다.(니혼게이자이신문)
일본, 1차 석유위기 트라우마
19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연평균 10%대 경제성장을 통해 1968년 당시 서독을 제치고 국민총생산(GNP) 세계 2위 경제대국에 오른 일본인의 성취감은 대단했다. 하지만 지진과 태풍 등 수많은 자연재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질서와 단합이 체질화된 일본인에게 두루마지 휴지 소동은 충격이었다.
생필품이 극단적으로 부족해서 일어난 소동도 아니다. 사람의 심리가 불안을 불러왔다. 당시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앞날이 불안하다’는 응답이 75%에 달했다. 생필품을 비롯한 물가 폭등이 불러온 위기감은 경제대국, 선진국민이 됐다는 자신감을 뒤로 밀어냈다.
일본정부와 일본인에게 제1차 오일쇼크 트라우마는 강렬하다. 1973년 10월 중동 산유국이 원유 가격을 70% 인상하자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일본 경제는 휘청였다. ‘광란 물가’라는 신조어가 나오는 등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73년(11%)과 1974년(24%) 두해 연속 두자릿수 급등했다.
경제성장률은 1974년 -1.2%로 꺾이면서 전후 사실상 처음으로 역성장했다. 일본은행은 공정할인율(기준금리)을 최고 연 9%대로 인상해 물가 잡기에 나섰다. 초긴축 금융정책으로 기업과 가계가 투자와 소비 부진에 빠지자 정부는 재정확대와 1975년 이후 대규모 국채발행을 본격화했다.
석유위기는 일본 경제의 거대한 분기점이 됐다. 정부는 ‘석유수급적정화법’과 ‘국민생활안정긴급조치법’ 등을 제정해 △석유 공급망 정비 △매점매석 엄단 △자원에너지청 설치 등의 조치를 취했다. 범국민적 엔너지 절약 운동의 일환으로 △주말 자가용 운전 자제 △네온사인과 심야 TV방송 단축 △난방 온도 조정 등을 호소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30일 ‘70년대 석유위기의 교훈’이라는 칼럼을 통해 “(최근 중동전쟁에 따른 유가 급등으로) 에너지 조달 다변화 지연이 직접적인 타격으로 돌아오고 있다”며 “일본 경제의 취약성이 드러나면 금융시장도 동요할 수 있다. 대비를 강화할 때”라고 지적했다.
에너지 자립없는 일본 경제 취약성
일본은 원유의 95%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1970년대 위기 때 의존도(80%)보다 높아졌다. 석유화학제품도 80% 이상 중동에 의존한다. 석유화학제품의 원천인 나프타의 경우 60% 이상 수입에 의존한다. 그중 70%가 중동산이다. 일본에서 생산하는 나프타도 중동산 원유에서 나오기 때문에 사실상 80% 이상 이 지역에 의존하는 셈이다.
일본 에너지청도 2025년 전략에너지계획에서 중동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가 일본 경제의 취약성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비축유 확대 △LNG 조달 국가 분산 △국제공조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중장기적으로 △원전 활용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강화 등 에너지원을 다양화하는 정책도 제시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29일 자신의 SNS에 석유화학제품의 원료인 나프타 수입 다변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날 “나프타 수입을 중동에서 다른 국가로부터 조달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대처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지적이다. 닛케이는 “1차 오일쇼크는 일본에 싸고 안정적인 에너지는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르쳤지만 여전히 중동에 기대고 있다”며 “위기는 반복되지만 교훈을 통해 얼마나 제도를 바꾸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일본이 에너지 자립은 고사하고 원유와 석유화학제품을 여전히 중동에 의존하는 데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에 따른 ‘원전제로’ 정책에도 원인이 있다. 당시 전체 에너지원의 20% 이상 차지하던 원전이 전면 중단되면서 화석연료에 다시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고, 중동 산유국에 기대는 선택이 불가피했다는 옹호논리도 있다.
전문가들은 1970년대 교훈으로 금융정책도 지적한다. 당시 정부와 일본은행은 석유위기에 앞서 환율 변동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인플레이션의 토양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1971년 이른바 ‘닉슨 쇼크’로 불리는 미국의 금태환 불이행 선언으로 세계 경제는 구조적 전환에 들어섰다.
일본도 전후 달러당 360엔으로 묶어둔 ‘고정환율제’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엔화 가치는 308엔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행은 엔고 압력으로 수출기업의 어려움이 커지자 공정할인율(기준금리)을 1972년까지 5.75%에서 4.25%까지 낮춘 금융완화 정책을 폈다.
여기에 당시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주도한 ‘일본열도 개조론’에 따라 전국적으로 대규모 공공 건설투자가 확대되면서 땅값이 치솟고 물가상승을 부채질했다는 평가다. 일본이 1973년 초 ‘변동환율제’로 이행하면서 일본은행은 다시 기준금리를 그해 연말까지 9.0%까지 끌어올렸지만 석유위기가 겹치면서 폭발적인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 없었다.
최근 우에다 가즈오 일은 총재가 중동전쟁 장기화에 따른 물가불안 요인을 고려해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시사하는 데는 엔저를 더 이상 방치할 경우 유가 급등과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다는 경계감도 담겼다는 분석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기업 혁신 ‘경박단소’
1차 오일쇼크는 결과적으로 일본 기업을 혁신으로 인도했다. 고도경제성장기 중후장대형 중화학공업에 집중 투자한 기업들은 유가가 폭등하자 덩치만 큰 허세였음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에너지를 덜 쓰는 혁신적 제품 개발에 나섰다. 소형 자동차와 절전형 전자제품 등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른바 ‘경박단소(輕薄短少)’라는 일본 제조업 신화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이어지면서 질적으로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로 삼은 것이다. 정부의 강력한 에너지 절약을 위한 제도와 캠페인, 가계의 절전형 상품 소비도 기업의 창의적 혁신을 불러왔다.
다카시노 시즈오 소니 전 부사장은 “워크맨 성공신화는 반도체의 소형화 및 고기능화와 정밀 금형기술의 진화 등 일본 기술진보의 집약적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미국시장을 휩쓴 도요타와 혼다 등도 소형차를 중심으로 에너지 절약형 경제를 주도한 대표적 기업이다. 1970년 석유위기가 일본 자동차 전기·전자 화학산업 등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마중물이 된 셈이다.
일본 제조업은 1970년대와 1980년대 두차례 오일쇼크를 경과하면서 철강업 66%, 화학공업 46% 등 소비전력을 줄이는 혁신을 이뤄내면서 성장의 토대를 닦았다.
닛케이는 당시 일본 기업이 석유위기를 극복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혁신적 구조개혁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교훈으로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문은 “현재 위기가 일본 기업에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다”면서 “1970년대 일본 기업은 구조를 바꾸는 것으로 승부했고, 그 선택이 이후 일본 제조업 경쟁력의 토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일본은 1차 석유위기를 기회로 만들면서 1980년 2차 오일쇼크 때는 비교적 충격을 덜 받아 80년대 안정 성장의 기틀을 다졌다. 하지만 '잃어버린 30년'을 경과하면서 무뎌진 일본 기업의 경쟁력을 다시 강화하기 위한 해법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위기 의식이 확산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들어서 17개 분야 국가주도 성장투자를 강조하지만 70~80년대와 같은 기업의 자생적 혁신 DNA를 살리지 못하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아베노믹스 등장 이후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중심 경영으로 전환 등 긍정적 변화도 있지만 여전히 막대한 내부 유보를 미래성장분야에 대한 적극적 투자로 돌리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노동시장 경직성과 대학교육의 후퇴, 인재부족 등도 위기에 강했던 일본 기업에 제기된 과제다.
한편 중동에 대한 의존은 현지에 진출한 다수 일본 기업이 겪는 어려움에서도 드러난다. 제국데이터뱅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을 제외한 중동 13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은 2024년 8월 기준 총 443개사에 달한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