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계획 알고도 침묵’ 조태용 구속
법원 “범죄 소명, 증거인멸 염려” 영장 발부
수사 탄력… 박성재 영장 재청구 13일 심사
12.3 비상계엄 관련 직무유기 및 국정원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이 구속됐다.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이 조 전 원장 신병 확보에 성공하면서 막바지 내란 수사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박정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조 전 원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후 이날 새벽 영장을 발부했다.
박 부장판사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앞서 특검팀은 지난 7일 조 전 원장에 대해 국정원법상 정치관여 금지와 직무유기, 위증, 증거인멸,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국회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조 전 원장은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요 정치인 등의 체포를 지시했다고 폭로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계엄 당일 홍 전 차장의 행적이 담긴 CC(폐쇄회로) TV 영상을 국민의힘측에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조 전 원장은 자신의 동선이 담긴 CCTV 영상을 제출하라는 더불어민주당 요구에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거절했는데 특검팀은 이같은 행위가 국정원장에게 정치 중립 의무를 부과한 국정원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봤다.
조 전 원장은 또 지난해 12월 3일 윤 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이전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미리 알고도 국회에 보고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그는 홍 전 차장으로부터 ‘계엄군이 이재명 한동훈을 잡으러 다닌다’는 보고를 받고도 국회에 알리지 않았다. 국정원법에서는 국가 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국정원장은 지체 없이 대통령 및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 전 원장은 이밖에 윤 전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계엄 관련 지시를 받은 바 없다고 거짓 증언하고 국회에 허위로 답변하거나 허위 서류를 제출한 혐의를 받는다. 윤 전 대통령과 홍 전 차장의 비화폰 정보 삭제에 관여한 혐의도 적용됐다.
특검팀은 4시간 가량 진행된 영장 심사에서 482쪽 분량의 의견서와 151장의 프리젠테이션(PPT) 자료를 토대로 구속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조 전 원장은 CCTV 제공은 논란이 된 사안을 설명하기 위한 것일뿐 정치 관여 의도는 없었고,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계획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등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주장을 검토한 법원은 장고 끝에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특검측의 손을 들어줬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면서 동력 약화가 우려됐던 특검팀의 내란 수사는 조 전 원장 신병 확보를 계기로 다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오는 13일에는 특검이 재청구한 박 전 장관의 구속영장 심사가 예정돼 있다.
박 전 장관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법무부 실·국장 회의를 소집하고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교정시설 수용 여력 점검, 출국금지 담당 직원 출근 등을 지시하는 등 내란에 순차적으로 가담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팀은 지난달 9일 내란 중요임무종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박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박 전 장관의 위법성 인식 정도나 그가 취한 조치의 위법성 등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특검팀은 실·국장 회의 참석자들을 소환조사하고 추가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등 보완수사를 진행해왔다.
특검팀은 특히 박 전 장관의 휴대전화 포렌식 과정에서 ‘권한 남용 문건 관련’이라는 제목의 파일을 복원해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문건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입법권과 탄핵소추권 남용, 예산심의권 남용 등 국회가 ‘입법 독재’를 통해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은 계엄 다음날인 지난해 12월 4일 텔레그램을 통해 임세진 당시 법무부 감찰과장으로부터 이 문건을 전달받은 직후 ‘삼청동 안가 회동’에 참석했는데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비상계엄의 위법성을 인식하고 증거를 인멸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회동에는 박 전 장관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김주현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 등이 참석해 계엄 사후 대책을 논의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특검팀은 또 법무부 교정본부 직원들이 박 전 장관의 ‘수용여력 점검’ 지시에 따라 각종 문건을 작성해 보고한 정황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의 지시가 단순 검토가 아닌 계엄에 동조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이행하려한 것으로 보고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박지영 특검보는 “앞선 구속영장 기각 당시 법원에서 의문을 제기했던 부분에 이견이 없을 정도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의미 있는 자료를 상당수 확보했고, 이를 토대로 범죄 사실을 새롭게 추가했다”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