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뒤처진’ 나라일수록 인공지능 효과 커
기반시설 투자 부담 덜고 기후금융 결합 시 효과 상승 … COP30서 국가별 기후금융 플랫폼 연결지원 체제 출범
인공지능(AI) 열풍이 브라질 벨렝에서 열리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COP30)에도 불어 닥쳤다. 각 국가별로 제출한 문서 수천만건을 대형언어모델(LLM)을 활용해 분석하는 건 기본이다. 11일(현지시간)에는 ‘인공지능 기후연구소(AICI)’가 공식 출범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유네스코 △브라질 국가통신청(Anatel)이 주도해서 만든 이 기관은 개도국을 대상으로 △기후행동을 위한 인공지능 역량 구축 △인공지능과 기후에 관한 오픈 디지털 학습 리포지토리(애플리케이션 개발에 관련된 정보를 보관해 둔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을 할 예정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활용한 지속가능한 혁신을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COP30 의장국인 브라질은 인공지능을 기후대응 핵심 의제 중 하나로 설정하고, 적응·과학·경제·기술혁신과 함께 ‘인공지능 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한 바 있다. 이 위원회는 COP 의장국이 임명한 전문가들로 구성돼 인공지능 활용 전략에 관한 권고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 급증 등 인공지능의 탄소발자국 문제와 함께 기후 모델링과 재난 예측 등에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물론 인공지능은 COP30 공식 협상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시민사회 △기업 △투자자 △도시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기후 행동을 촉구하도록 설계된 플랫폼인 액션 어젠다(Action Agenda)에서 주목을 받는 분위기다. 이러한 주체들은 기후공약을 실현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건 분명하다.
10일 아나 토니 COP30 사무총장은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 협력자인 기술에 대한 논의는 필수적”이라며 기후문제 해결을 위한 촉매제로서 기술 중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인공지능과 기후변화 ‘양날의 칼’= 물론 인공지능과 기후변화는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다.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역으로 인공지능을 이용하기 위해 막대한 전력이 필요로 하며, 이를 화석연료로 충당할 경우 오히려 온난화 속도를 가속화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국제 비영리 단체 ‘클라이밋 체인지(Climate Change) AI’는 COP30에서 인공지능의 기후 대응 역할을 논의하는 세션을 주관하면서 이러한 고민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12일 열린 ‘기후를 위한 인공지능의 기술적·사회적 준비도 향상’ 세션에서는 탈탄소화와 기후 회복력 전략에서 인공지능이 실질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양한 지역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검토했다. 15일 ‘인공지능 시대의 기후 책임: 글로벌 표준에 대한 요구’ 세션에서는 인공지능의 막대한 에너지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관리하기 위한 국제 표준 마련 필요성이 제기됐다.
브라질과 △유엔환경계획(UNEP) △쿨 코얼리션(Cool Coalition) 파트너들은 11일 공동으로 ‘더위 극복 실행 운동(Beat the Heat Implementation Drive)’을 출범시키면서 지속가능한 냉각 해결책과 인공지능의 전략적 통합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에너지 효율 등 선순환 효과 기대 = 하지만 잘만 활용하면 인공지능은 개도국이나 상대적으로 경제 발달이 덜 된 국가에 투자 대비 더 큰 효과를 거두게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재생에너지 보급 수준이 낮은 국가일수록 인공지능 기술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반 시설 투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인공지능 통합 시스템으로 전환을 할 때 경제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상승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기후금융과 적절히 조합하면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인한 효과가 더욱 증폭됐다.
17일 국제 학술지 ‘에너지 이코노믹스’의 논문 ‘인공지능의 재생에너지 발전 촉진 효과: 기후금융의 역할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인공지능 기술의 재생에너지 촉진 효과가 국가별로 최대 3.8배 차이를 보였다. 2000~2019년 63개국 자료들을 패널 분위회귀 모형(국가별 수준에 따른 차별적 효과 분석)으로 분석한 결과,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하위 10% 수준인 국가에서는 산업용 로봇 설치가 1% 늘어날 때 재생에너지 발전이 0.2861% 증가했다. 반면 상위 10% 국가에서는 같은 조건에서 0.0759%만 증가해 3.8배의 격차를 보였다.
이러한 유형은 중위권 국가에서 유사하게 나타났다. 하위 25% 국가는 0.1420%, 50% 국가는 0.0646%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재생에너지가 이미 많이 보급된 곳에서는 인공지능을 추가로 도입해도 개선 여지가 줄어드는 경향이 확인됐다.
논문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이유로 재생에너지 기반시설이 덜 구축된 국가들은 화석연료와 같은 전통 에너지원에 더 의존하는데, 인공지능과 산업용 로봇 도입이 재생에너지 기술 채택 장벽을 극복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점을 꼽았다. 재생에너지 후발국은 기존 재생에너지 기반시설 투자가 적어 인공지능 통합 체제로 전환 시 경제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분석이다. 또한 재생에너지 선진국의 경우 이미 상당한 재생에너지 투자를 완료해 인공지능 기술 도입에 따른 추가 이득이 제한적이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이유로 재생에너지 후발국에서 인공지능 기술은 전통 에너지 체제의 비효율을 극복할 수 있는 이른바 ‘도약 기술’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용 로봇은 생산 공정을 최적화하고 실시간 에너지 사용을 조정해 에너지 효율을 높인다. 인공지능 기술이 1% 증가하면 에너지 효율은 0.0125% 개선으로 이어진다. 이는 또다시 재생에너지 발전 2.1% 증가를 유도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효과는 전력·가스 등 에너지 집약 산업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로봇이 반복 작업을 대체하면서 연구 인력이 혁신 기술 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도 이점이다. 인공지능 기술 1% 증가는 연구개발(R&D) 지출 0.0728% 상승으로 이어져 재생에너지 기술 성능 개선과 비용 절감을 촉진했다.
이 논문에서는 기후금융이 개도국에서 인공지능 기술 효과를 증폭시키는 조절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도 밝혔다. 기후금융 단독으로도 재생에너지 발전을 촉진하지만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 시 상승효과가 발생했다. 기후금융이 개도국의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등 재생에너지 기술 이전을 지원하면서 인공지능 로봇 도입 비용도 낮출 수 있다.
인공지능과 기후금융 상호작용 항의 회귀계수(인공지능과 기후금융을 함께 쓸 때 나타나는 추가 효과)가 0.0091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양(+)의 값을 나타냈다. 인공지능 기술과 기후금융을 동시에 투입하면 따로따로 쓸 때보다 상호 증폭 효과가 나타난다는 의미다.
◆기후재원 둘러싼 신경전 ‘팽팽’ = 기후재정과 관련한 논의는 COP30에서도 주요 화두다. 2024년 11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9)에서 합의된 연간 1조3000억달러 기후대응 재원(NCQG)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를 놓고 논의가 한창이다. ‘누가 얼마나 부담할지’ ‘투명하게 집행할 수 있는 방법’ 등을 둘러싼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될 전망이다.
15일 2035년까지 연간 1조3000억달러 기후재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바쿠-벨렝 로드맵’이 처음으로 공식 논의됐다. 바쿠-벨렝 로드맵은 아제르바이잔(COP29 의장국)과 브라질이 공동으로 작성한 것으로 기후재원을 조성하는 전 세계적 방안을 제시한다.
15일 아나 토니 사무총장은 “이 보고서는 기후행동 이행에 필요한 재원이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기후위기 해결에 필요한 규모와 속도로 이러한 재원을 재분배할 능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수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하고 접근성이 높으며 이용가능하고 공정한 더 나은 재원을 창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5일 사이먼 스틸 UNFCCC 사무총장은 “연간 1조3000억달러라는 목표는 야심 차지만 달성 가능하다”며 “최근 카리브해 국가들을 강타한 허리케인 멜리사의 피해가 무행동의 대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예방에 투자한 모든 돈은 미래 비용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며 “기후투자의 진전은 충분히 빠르지 않고 우리는 생각이 아닌 결과로 나아가야 한다”고 경고했다.
COP30에서는 15일 녹색기후기금(GCF) 지원으로 국가 주도 기후금융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발표도 나왔다. 브라질 재무부와 GCF가 공동 주최한 고위급 장관급 회의에서 인도 캄보디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3개국과 1개 지역은 이러한 내용에 동의했다. 이들 플랫폼을 연결·지원하는 ‘Country Platforms Hub’도 동시에 출범했다. 이 허브 조정은 브라질이 주도할 예정이다.
국가 플랫폼은 각국이 자체 기후 투자 전략을 설계하고 국제 금융 지원을 정렬하는 체계다. 기존 공여국 중심 원조 방식에서 벗어나 수원국 주도권을 강화하는 모델이다. 허브 운영위원회는 과반을 개도국 대표로 구성하며 거버넌스 구축과 지식 공유를 지원한다. 브라질은 지난해 10월 자체 플랫폼(BIP)을 출범했다. 이집트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도 유사한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쿨 코얼리션(Cool Coalition) = 유엔환경계획(UNEP)이 중심이 되어 만든 국제 연결망이다. 폭염과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기업 도시 국제기구 시민단체 등이 ‘지속가능한 냉방’을 실현하자는 목표로 함께 모였다. UNEP은 이 연결망을 통해 정책 지침과 혁신사례, 기술 지원 등을 제공하며 각국이 실질적인 기후적응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