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6월의 교훈, 세대소통이 필요한 때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있다. tvN이 2012년부터 방영한 드라마이다. ‘응답하라 1997’이 시작이다. 이어 1994, 1988로 바통을 넘긴다. 줄여서 ‘응칠’ ‘응사’ ‘응팔’로 불렀다.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에서 1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켰다. 숫자가 상상력을 자극했다.
1997년은 IMF외환위기로 기억되는 시대 아닌가. 1994년은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성수대교가 무너진 해다. 이듬해에는 삼풍백화점이 붕괴됐고. ‘응팔’은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된 해다. 그야말로 희비 곡절의 시대가 배경이다.
하지만 시대적 특수성은 그저 무대였을 뿐이다. 연출자 신원호PD는 단지 재미를 추구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연도가 주는 시대적 기억을 공유하며 열광했다. 만일 ‘응칠’이 1987이었다면 어땠을까. 박종철에 이어 이한열까지 아스팔트 위 열사의 시대가 아니던가. 군사독재에서 민주화의 물꼬를 튼 역사의 변곡점이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운 기적의 시대이다.
최루가스를 마시면서 저항하던 대학생과 이를 성원하던 넥타이부대의 가슴은 지금도 ‘응답하라 1987’에 뜨겁게 반응한다. 시대적 공감이겠다. 산업화 시대가 그렇다. 70대 이상 노년층은 정치적 자유보다 보릿고개를 넘는 게 급선무였다고 할 것이다.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개발을 이룬 업적에 자부심을 보일 것이다.
민주화 시대도 그렇다. 유신독재 고문과 꽃샘추위에 시든 서울의 봄에 질식했다가 1987년 6월 직선제를 쟁취하고 얼마나 감격했던가. 노동자들도 조합을 결성하며 비로소 저녁이 있는 삶을 꿈꿨다.
세대경험이 세대정치로 전환
이렇게 산업화와 민주화가 결합한 토양 위에 선진화 시대가 펼쳐진다. 1995년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열고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됐다. 세계에서 29번째,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번째이다. 이런 흐름 속에 K-컬쳐가 활짝 열렸다. 여기서 ‘시대’를 ‘세대’로 치환하면 현재의 정치사회적 계층화를 이해할 수 있겠다. 세대별로 자부심의 원천이 다르고 공감하는 지점도 다르다. 심지어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다.
예컨대 ‘책상을 탁’ ‘탱크데이’에 민주화 세대는 격렬하게 반응한다. 선진화 세대는 그만큼 공감하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현실이 그렇다. 산업화 세대의 박정희 찬양에 군사독재라고 쏘아붙이던 민주화 세대와 또 다른 결이다.
지방선거가 끝났다. 바야흐로 아전인수의 시간이다. 승인은 내 덕이다. 패인은 네 탓이다. 정확한 분석은 부담스럽다. 알량한 기득권일 망정 지켜야 하니까.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승리를 선언했다. 숫자가 그렇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12대 4를 기록했다. 2022년에는 5대 12로 밀렸다. 하지만 이언주 최고위원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퇴했다. 사실상 졌다는 거다.
국민의힘은 숫자에서 밀렸지만 서울시장 대구시장을 지켜냈다. 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도 이겼다. 부산북갑에서 민주당 당선을 저지했다. 이로써 부산에 민주당 국회의원은 제로다.
정치평론가들도 제각각 분석을 내놓는다. 야권은 여당의 부동산 정책이 아킬레스건이라고 지적한다. 조작기소 특검도 거론한다. 여권은 2030세대의 보수화를 든다. 한편에선 민주당 지도부의 오만과 방심을 꼬집는다.
사실 ‘의문의 1패’는 민주당 신주류이겠다. 이들은 공공연히 23대 국회 거대 민주당 출범을 전망했다. 일본의 자민당 수준으로 말이다. 민주당 1당 중심에 기타 도토리당을 꿈꿨다. 그래서 우파 쪽으로 지평을 넓혀왔다. 최근의 이혜훈 김용남 영입이 그렇다. 그런데 지리멸렬했다고 믿은 국민의힘이 기사회생했다. 동시에 다당제의 싹은 잘려 나갔다.
여기서 톺아볼 부분이 있다. 세대투표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서울지역 18~29세 남성의 75.3%가 오세훈을 지지했다. 이는 보수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60대 60.4%와 70대 이상 71.1%를 능가하는 수치다.
주류세대, 다음세대 포섭하며 바통 넘겨야
젊은 세대의 보수화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본다. 세대별 집단적 공감대 위에 자신의 이익 최대화를 위해 의사를 표출할 뿐이겠다. 민주당에 중요한 것은 정치공학이 아니라 소통이다. 현재 주류인 민주화 세대가 얼마나 선진화 세대를 통섭하느냐 여부에 정당과 국가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산업화 세대는 “아, 옛날이여”를 외치다 주류에서 교체됐다.
민주화 세대 역시 그 전철을 밟는 중이 아닐까. 5월의 광주도 6월의 광장도 모르는 이른바 ‘응답하라 1997’ 세대가 응시한다. 1970년대생 이후 MZ세대 말이다.
세대포위라는 프로파간다를 깨뜨리는 방법은 세대포섭이겠다. 현재 주류가 선진화 세대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될 때 AI시대 미래는 활짝 열린다. 그래야 교체당하지 않고 바통을 넘겨주는 원팀의 이어달리기 주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