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투표지 부족’ 선관위 압수수색

2026-06-11 13:00:06 게재

증거보전 대상 ‘투표지 상자’ 폐기돼 … 18개 대학 “참정권 수호” 시국선언

6.3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사태를 초래한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해 경찰이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1일 오전 9시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한 서울시, 송파·서초·강남·광진·동작구 선관위 등 7곳에 대해 공직선거법위반, 직무유기 등 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압수수색은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소속 경찰관과 국수본, 서울경찰청 디지털포렌식 요원 등 100여명이 진행하고 있으며 합동수사본부 검사 3명과 수사관 등 10여명도 중앙·서울시·송파구 선관위 등 3곳의 압수수색에 참여했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국민참정권 침해를 야기한 원인 규명 등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증거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경검 합동수사본부가 본격 운영될 때까지, 적법절차에 따라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장검증 ‘빈손’ = 앞서 10일에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벌어진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 사라진 투표용지 보관상자가 이미 폐기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상자는 9일 김정철 개혁신당 최고위원의 증거보전 신청이 받아들여져 이날 오후 3시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51단독 김지연 부장판사와 법원 관계자들이 현장 검증을 통해 확보하려 한 증거물이다. 김 부장판사는 결국 빈손으로 돌아갔다.

송파구 선관위측은 전날 낮 12시쯤 폐기물 업체에서 해당 상자를 수거해갔다고 밝혔다. 법원에서 증거보전 대상 목록이 넘어온 같은 날 오후 5시 30분쯤보다 이른 시점이다. 이들 상자는 각 투표소에 처음 투표용지를 배부할 때만 쓰는 박스라 대부분 투표소에서 자체 폐기하는 것이며 증거 인멸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 상자는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사무 실태를 보여주는 물품 중 하나로 꼽힌다. 앞서 5일 경찰이 1000여명의 경력을 투입해 투표 종료 35시간 만에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 투표함 2개를 반출한 뒤 시위대가 투표소 안으로 들어가 선관위가 두고 간 물품을 뒤졌다.

현장에서 발견된 투표용지 박스 겉면에는 ‘투표용지 인쇄 매수 1900매, 박스 1개 중 1번’이라고 적혀있었다. 이 투표소의 선거인 수인 3856명의 절반에 못 미쳤다.

중앙선관위는 선거 당시 투표용지 최소 인쇄 기준을 유권자의 60%에서 50%로 낮출 때 공식회의 없이 내부 2인의 전결만으로 결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10일 국민의힘 김승수·김민전 의원이 중앙선관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앙선관위는 지난해 12월 10일 별도 회의 없이 사무총장 전결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종합관리지침’에서 투표용지 인쇄 매수의 하한 기준을 기존 60%에서 50%로 줄인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달 24일에는 선거정책실장 전결로 ‘공직선거 절차 사무편람’도 같은 내용으로 개정했는데, 이때도 공식 회의는 없었다. 이러한 지침에 따라 송파구선관위는 잠실3·4동을 제외한 나머지 25개 동의 투표용지 인쇄 비율을 50%로 결정했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송파구의 투표율은 65.8%로 서울 평균인 63.6%보다도 2.2%p가 높아 서울 25개 자치구 중 서초·성동·양천구에 이어 네번째였다.

◆중앙선관위 진상규명위 “선관위 대응매뉴얼 부재” = 중앙선관위가 구성한 진상규명위원회의 조현욱 위원장은 10일 과천청사에서 첫 진상규명위 회의를 열고 “진상규명위는 독립적 지위에서 활동한다”며 “책임있는 자에게 엄정하게 책임을 묻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절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초유의 투표용지 사태가 발생했다”면서 “결코 행정 착오나 수요 예측 실패라고 변명할 수 없고, 국민 참정권이 침해된 심각한 헌정질서 위기 사안”이라고 진단했다.

조 위원장은 3시간 가량의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투표용지 부족 시 선관위의 대응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며 “필요시 관련 직원 출석과 추가 자료를 요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투표용지 인쇄 매수 축소 지침이 내려진 배경과 지침 시달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검토했는지에 대해 확인을 (선관위에) 요청했다”며 “투표가 종료되지 않았음에도 개표 개시를 결정한 사유와 이를 결정한 사람이 누구인지, 인쇄매수 축소를 결정한 선관위 회의록, 투표가 잠시라도 중단됐다가 재개한 투표소 26개에 대한 선관위의 상세 대응 현황 자료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중앙선관위는 민소영 송파구 선거관리위원장이 최근 사의를 표명했으며, 서울시선관위가 9일 그를 해촉했다고 밝혔다. 송파구 선관위는 김한광 부위원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경찰 관계자들이 11일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투표지 부족사태 관련 압수수색을 위해 청사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대학생들 “기본권, 국가기관 무능 앞에 멈춰” = 같은 날 전국 18개 대학 총학생회는 6.3 지방선거에서 빚어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시국선언문을 각 캠퍼스에서 동시에 발표했다. 이번 공동발표에는 건국대·경희대·고려대·부산대·서강대·서울과기대·서울대·서울시립대·성균관대·숙명여대·숭실대·연세대·전남대·전북대·충북대·한국외대·한양대·홍익대가 참여했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참정권 침해’로 규정하고 △투표용지 부족사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주권 침해에 대한 구제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선거관리위원회 구조개혁 단행 △청년·대학생 포함 시민 전체가 참여하는 독립적 개혁 감시기구 구성 등을 요구했다.

이날 오후 6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학생회관 앞에는 20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황인서 연세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가 국가기관의 무능과 무책임 앞에서 멈춰 선 순간”이라고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 어느 후보에게 유리했느냐 어느 정당에 불리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 헌법,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남을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같은 시간 서울대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도 관악캠퍼스 아크로폴리스에서 시국선언 행사를 열고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했다. 이 자리에는 단과대학 학생회장 등 18명을 포함해 서울대 학생 약 150명이 모였다.

신가연 생활과학대학 부학생회장은 “투표를 관리하는 단 하나의 일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정작 당일 투표용지를 준비하지 못했다”며 “우리는 거창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밝혀달라”고 역설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이재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