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음 건강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2025-11-18 13:00:02 게재

한국은 지금 ‘정신건강 위기’라는 거대한 파도를 맞고 있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자살만으로도 연간 약 3조856억원의 손실발생이 추정된다.

또한 일부 보고서는 정신질환 관련 비용이 2015년 기준 약 11조원대라는 추정치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자살 및 정신질환이 초래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간 12조원 이상’으로 보수적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0.6%에 해당한다. 정신건강이 ‘국가 경쟁력’의 문제로 떠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건강검진 시스템을 갖춘 나라다. 국가건강검진에는 매년 수조 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으며, 위암·유방암·대장암 등 주요 질병의 조기 발견과 생존율 향상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예를 들어, 위암의 조기 발견율은 1990년대 30% 미만에서 최근 2020년대 들어 60%를 넘어섰으며, 유방암의 5년 생존율은 2000년대 초반 79~80%에서 최근 94~95%까지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정신건강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정신건강 검사는 ‘선택’이 아닌 ‘자발적 참여’에 의존하며, 대부분 단순한 자가보고식 설문에 머무른다. “괜찮다”고 답하면 그대로 ‘정상’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위험 신호를 간과한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조기 개입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치료 시점엔 이미 병이 깊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

건강검진엔 수조원, 정신건강엔 설문 한 장

정신건강 분야에서는 예방과 조기 개입이 치료보다 비용 효율성이 높다는 사실이 수많은 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와 각국의 보건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하는 프로그램은 장기적으로 치료비 절감과 사회적 생산성 향상에 큰 효과를 보인다.

우울증·불안장애·공황장애 등 주요 정신질환의 경우, 발병 초기 개입만으로도 증상 악화를 막고 치료 성공률을 크게 높인다는 보고가 일관되게 나오고 있다. 다수연구에서도, 조기 개입과 통합 정신건강 관리 모델이 의료비를 절감하거나 최소한 비용-효과적임이 반복적으로 확인되었다.

정신건강 예산은 전체 보건 예산의 약 2% 수준에 불과하며, OECD 평균(약 5~6%)의 3분의 1 수준이다. 정신건강 문제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는 기술이 정신건강 관리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뇌파(EEG), 맥파(PPG) 활용심박변이도(HRV) 등 생체신호를 이용한 디지털 정신건강 검진 기술은 단순한 설문보다 3~4배 높은 민감도로 위험군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AI는 이러한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의 생체유형을 분류하고, 각 유형에 따라 명상·호흡 훈련·음악 치료 등 생활 속 맞춤형 회복 프로그램을 제안할 수 있다.

이제 국가의 정기 건강검진 체계에도 정신건강 생체신호 평가를 포함해야 할 시점이다. 직장인 정기 검진에는 우울증, 스트레스뿐 아니라 EEG·PPG 기반의 정신건강 지표 측정을 도입하고, 학생 정서·행동 특성검사에는 두뇌와 자율신경 상태를 반영한 생체신호 평가 항목을 병행해야 한다.

또한 소방·경찰·군인·의료인 등 고위험군을 대상으로는 정기적 생체신호 기반 정신건강 특별검사를 실시해, 위험 신호를 사전에 포착하고 상담·치료로 신속히 연계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디지털 생체신호 기반 검진은 전문 치료 이전 단계에서 스스로의 회복을 돕고, 사회 전체의 정신건강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국가적 예방 인프라가 될 것이다.

국가가 투자해야 하는 이유

국가가 이 분야에 투자를 해야 이유는 많다. 첫째, 정신건강은 공중보건의 문제이자 생산성의 문제다. 국내 직장인 3명 중 1명이 우울·불안을 경험한다. 이로 인한 결근·이직 손실은 연간 6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둘째, 예방 중심의 국가 검진은 사회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다. 위암과 유방암 검진처럼, 정신건강 조기검진이 제도화 되면 치료비 절감뿐 아니라 자살 예방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셋째, 디지털 기술은 저비용·고효율의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가능하다. AI 기반 생체신호 분석은 전국민 단위의 실시간 모니터링을 가능하게 하며, 고위험군을 자동 탐지해 상담과 치료로 연계할 수 있다. 이는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을 해소하고, 도서·산간 지역에서도 동일한 수준의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지만, 마음이 아플 때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마음의 검진’을 제도화해야 할 때다.

이승환 대한불안의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