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수시 합격생 릴레이 인터뷰
김나영 인하대 첨단바이오의약학과
과학·윤리·고전, 신약 개발 꿈꾼 질문봇의 이유 있는 선택
중학생 때 갑자기 등교를 할 수 없었다. 코로나19 대유행 때문이었다. 세계적 감염병에 일상이 흔들리던 중, 백신 개발 소식이 들려왔다. 막연히 약사를 꿈꾸며 의약품에도 관심이 많았기에 자연스레 시선을 빼앗겼다. 매일매일 새로운 백신 정보를 얻으면서 신약 자체에 대한 마음이 커졌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세상을 바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꿈은 고등학교 진학 후 까다로운 과목과 다양한 탐구 활동에 도전하는 원동력이 됐다.
김나영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나영 | 인하대 첨단바이오의약학과(충남 서산여고)
확신의 자연 성향, 윤리·고전 배운 이유
진로 방향이 뚜렷했기에 과목 선택 기준도 명확했다. 약과 관련된 기초 지식을 쌓기 위해 <생명과학Ⅰ·Ⅱ> <화학Ⅰ·Ⅱ> <지구과학Ⅰ·Ⅱ>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를 모두 이수했고, 공동 교육과정으로 <생명과학실험> <고급생명과학>도 배웠다.
“자연 성향 학생들의 성적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편이라 과학 Ⅱ과목을 선택할 때 멈칫했어요. 절대평가이지만 위계상 3학년 때 공부해야 하고, 학교 교육과정상 <화학Ⅱ> <생명과학Ⅱ>를 3학년 1학기에 함께 이수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내신이 부담스러워 <화학Ⅱ>는 포기할까 생각했을 때 선생님께서 약을 공부할 거라면 배워두라고 하셨어요. 대학에 와보니 ‘일반화학’이 <화학Ⅱ>와 꽤 겹치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잘 배워둔 덕분에 1학기 성적을 잘 받았어요.”
인문 성향 학생의 선호도가 높고 상대평가를 하는 <생활과 윤리>를 고2 때 선택한 것도 눈에 띈다. 윤리 의식을 제대로 갖추고 싶다는 생각에 도전했다고.
“신약 개발은 동물 실험과 임상시험이 필수예요. <생활과 윤리>에서 인공임신중절, 안락사, 유전자 치료, 동물 실험 등 생명과학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윤리적 쟁점에 접근하며 연구자의 태도와 연구 윤리를 깊이 고민해볼 수 있었죠. 그런 경험 때문에 3학년 2학기에 <고전읽기> <사회문제탐구>를 이수했어요. 대입과 무관하게 시야를 넓히고 싶었고, 신약 연구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었어요.”
반복된 실험 실패, 질문의 힘 알려줘
나영씨는 고교에서 다양한 탐구 활동을 했다. 카페인 추출, 당뇨의 기전, 인체의 작용 등 해당 교과 개념을 바탕으로 질병 혹은 인체 작동 기능의 원리를 파악해보고, 유전자 조작이나 표적항암제 등 질병 치료의 원리를 사례와 접목해 탐구했다. 그중
<생명과학Ⅰ>에서 진행한 그람염색 실험은 자신을 가장 성장시킨 활동이었다. 그람 음성균을 찾아내기 위해 2개월 동안 같은 실험을 7번이나 반복했다.
“어느 순간부터 문제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문자답했어요. 혹시 제가 흘려보낸 교과 개념이 문제의 원인일까 봐 교과서는 물론 온갖 자료들을 다시 보면서 제 실험과의 차이를 찾아내려고도 했어요. 염색 시간이나 배양 조건을 조정하며 다양하게 시도한 끝에 세균류를 에탄올로 탈색할 때 시간을 짧게 두면서 실험이 어그러졌다는 사실을 알아냈죠. 간단한 실험이지만, 교과서 내용을 직접 확인해 기뻤죠. 실험과 실패에 익숙해져야 하는 신약 연구가 제 적성에 맞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요. 무엇보다 실험은 결과가 아니라 문제 해결 과정이라는 점,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질문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배웠고요. 이후로 교과와 무관하게 배운 걸 돌아보고 질문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약간 피곤해졌지만(웃음), 해결할 때의 성취감이 더 컸죠.”
‘후성유전학’에 꽂히다
끊임없는 질문은 탐구 활동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었다. 특히 학년과 교과를 넘나들며 ‘후성유전학’을 파고들었다. 시작은 두 권의 책이었다. 고2 <독서>에서 <슈퍼 유전자>와 <이기적 유전자>를 비교해 읽으면서 환경 요인에 의해 유전자 발현이 조절될 수 있다는 후성유전학 개념에 흥미가 생겼다. 학기말 교과융합수업에선 <인간은 왜 인간이고 초파리는 왜 초파리인가>를 읽고 직접 초파리를 구입, 침샘 염색체를 관찰했다. 유전자 발현의 차이를 눈으로 확인하며, 후성유전학적 접근이 인위적인 DNA 변형·조작보다 부작용이 적고 윤리적 논란에선 자유로워 신약 개발에 유용하겠다 싶었다.
고3 <생명과학Ⅱ> 시간에 진행된 페임랩에선 ‘진핵생물의 유전자 발현 조절’을 주제로 자료를 정리하다 ‘동물의 후성유전에만 치우친 것 아닐까’ ‘환경 요인에 더 민감한 식물은 후성유전적 조절이 달리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진로 활동 시간에 ‘식물에서의 후성유전학적 유전자 발현 조절 사례’를 찾아 비교했다.
“처음엔 막막해서 인터넷에서 탐구 주제를 찾아 따라 했는데, 어느 순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울수록 궁금한 것이 많아지기도 했고요. 특히 실험을 하면서 실패한 이유를 찾거나, 해석을 하며 개념을 가져오는 과정에서 의문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탐구를 한번 하면 서너 개의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관련 수업이나 창체의 탐구 주제가 됐어요. 탐구는 대입에 도움이 되지만 그에 앞서 나의 배움과 성장을 위한 것이잖아요? 질문을 계속하다 보면 나만의 탐구를 어렵지 않게 수행할 수 있을 거예요.”
면접형 종합전형 집중 지원
수시 원서는 면접이 있는 전형 위주로 구성했다.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진짜 역량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 숙명여대 시스템생명과학과, 아주대 첨단바이오융합학과, 인천대 분자의생명전공 등에 지원했고, 가장 희망했던 인하대 첨단바이오의약학과에 최초 합격했다.
“홈페이지에서 교육과정을 보니 신약 개발에 특화돼 있었어요. 입학하면 1기생으로 학과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고요. 합격하고 싶어 면접을 열심히 준비했어요. 학교 면접 프로그램의 도움이 컸고, 친구들과도 수시로 질문을 주고받았죠. 처음엔 답변을 통으로 암기했다가 ‘신약 개발’ ‘후성유전학’ ‘끊임없는 물음표’ 등 키워드 중심으로 논리를 정리하고, 경험이나 감상을 첨가하는 식으로 답변을 구성했어요. 덕분에 면접장에서 돌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고, 면접관과 진정성 있는 대화를 주고받아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해요.”
고교 3년간 꿈꿨던 공부를 하는 지금은 마냥 즐겁다.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전공 수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최근 셀트리온에 산업 시찰을 다녀와 신약 개발에 대한 꿈이 더 커졌다. 생명공학을 복수전공하며 생명 시스템의 응용까지 습득해 신약 개발 연구원에 도전할 계획이다.
“후배들은 내신이나 수능에서의 유불리를 계산하지 말고 일단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면 좋겠어요. 이때 질문하는 습관을 기르길 바랍니다. 교과서에 나온 실험을 스스로 검증해보거나 참고 문헌을 찾아보면서 궁금한 점을 스스로 해결해보세요. 시야가 확장되고, 지식이 쌓이면서 성적 이상의 성장을 체감할 수 있을 거예요. 최선을 다한다면 기회는 찾아오기 마련이니 현재에 충실하길 바랍니다.”
취재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