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윤성천 한국저작권보호원장
“케이-콘텐츠 불법유통 생태계 무너뜨린다”
긴급차단 후 대형 불법사이트 트래픽 64% 감소 … 출범 10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상위 10% 목표”
케이-콘텐츠의 세계적 인기와 함께 여러 언어권과 플랫폼에서 저작권 침해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신작 공개 직후 불법복제물이 빠르게 퍼지면서 창작자와 제작사가 수익을 회수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위협받는 상황이다. 21일 윤성천 한국저작권보호원(보호원) 원장을 집무실에서 만나 케이-콘텐츠 불법유통 실태와 긴급차단제의 성과, 국제공조 및 인공지능 활용 방안, 향후 저작권 보호정책의 방향을 들었다.
보호원에 따르면 2020년 이후 파악된 해외 한류콘텐츠 불법유통 사이트는 4만1076개다. 2025년 7월 말 기준 실제 접속할 수 있는 사이트는 1만9664개에 이른다. 해외 불법 사이트에 게시된 한류콘텐츠 불법복제물은 약 4억9355만건으로 추정됐다. 웹툰이 약 3억2821만건으로 66.5%, 영상콘텐츠가 약 1억6534만건으로 33.5%를 차지했다. 특히 2024년과 2025년 공개된 신작의 불법 게시물은 약 8109만건에 달했다.
윤 원장은 “일부 대형 불법유통망은 대체사이트와 여러 국가의 서버, 역할을 분담한 운영조직을 갖추고 있다”며 “광고와 불법도박으로 수익을 얻고 암호화폐로 자금을 세탁하는 등 금융범죄와 결합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긴급차단 762건, 합법시장 이동 효과 = 보호원은 5월 11일부터 긴급차단제를 시행하고 있다. 대규모 저작권 침해로 피해가 빠르게 확산할 우려가 있는 해외 불법 사이트를 우선 차단하고 이후 저작권보호심의위원회가 5일 이내에 심의하는 ‘선조치 후심의’ 제도다. 15일까지 2달여 동안 긴급차단 762건과 일반 접속차단 236건이 시행됐다. 트래픽 상위 3개 불법 사이트의 하루 평균 트래픽은 시행 전 약 471만건에서 시행 후 약 171만건으로 64% 감소했다. 주요 불법 웹툰 사이트 2곳의 트래픽은 각각 96%와 95% 줄었다.불법 사이트 이용자가 합법 시장으로 이동하는 흐름도 나타났다. 합법 웹툰 애플리케이션 설치는 약 77% 증가했으며 유료보기 수익이 3배 수준으로 늘어난 사례가 확인됐다.
윤 원장은 “제도의 성과는 차단 건수 자체가 아니라 불법시장 이용자를 합법시장으로 돌려 창작자에게 정당한 수익이 돌아가게 하느냐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침해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공조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불법 사이트의 운영자와 서버, 결제 계정이 서로 다른 국가에 있는 경우가 많아 어느 한 국가나 기관만으로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찰청은 인터폴과 함께 온라인 불법복제 대응 국제 공조 프로젝트 ‘I-SOP’에 참여해 국가 간 수사정보와 디지털 증거를 공유하고 있다. 또한 보호원은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에 거점을 두고 각국 지식재산 당국 및 수사기관과 협력하고 있다. 2025년 태국에서는 현지 지식재산청 등과 협력해 불법 사이트 11개를 차단했다. 베트남에서는 현지 공안부 등과 공조해 불법 웹툰 사이트를 폐쇄했다.
윤 원장은 “협약과 공문 교환에 그치지 않고 주요 불법 사이트 운영자 등 정보를 공유해 운영자 검거로 이어지는 사건 중심 실질적 공조로 전환하겠다”면서 “이와 함께 불법유통 생태계와 수익구조를 함께 차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도 저작권 침해 대응에 활용되고 있다. 보호원은 합법 및 불법 사이트 3200개를 이미지 기반 인공지능 모델에 학습시켜 12개 언어권에서 신규 불법 사이트 약 2500개를 추가로 탐지했다. 또한 영화 방송 웹툰 등의 특징정보 약 26만5000개를 활용해 케이-콘텐츠 불법유통 정보 약 95만건을 자동 수집했다.
아울러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저작물 자동식별 기능을 고도화했으며 불법복제물의 최초 유포 지점과 유통 경로를 추적하는 기능을 구축했다.
윤 원장은 “문체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함께 인공지능 기반 저작권 포렌식 수집도구를 개발 중”이라면서 “이 도구는 수사와 행정조치에 활용할 디지털 증거를 신속히 확보하는 핵심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가치 창출하는 기관으로 도약” = 2016년 9월 설립된 보호원은 올해 출범 10년을 맞았다. 윤 원장은 주요 성과로 개별 불법복제물 삭제 중심 대응을 예방-탐지-심의-행정조치-수사지원-해외 피해구제로 이어지는 전주기 보호체계로 발전시킨 점을 꼽았다.
보호원은 저작권 침해 수사를 과학적으로 이끄는 데도 앞장섰다. 2020년 저작권 디지털포렌식센터를 개소하고 디지털포렌식 분야 국제공인시험기관 인정(ISO/IEC 17025)을 획득했다. 저작권 침해 채증과 심의, 조치, 통계 분석, 국민 신고를 연결하는 저작권 침해 종합대응시스템도 구축했다.
앞으로는 대응의 속도와 정교함을 높이고 사후 대응 못지않게 예방에 투자할 계획이다. 단순히 불법유통 게시물 삭제 건수를 늘리는 것보다 침해 발견부터 피해구제까지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짧아졌는지, 창작자의 정당한 수익이 실제로 얼마나 회복됐는지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취임한 지 1달여 된 윤 원장은 임기 3년 동안 보호원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상위 10%에 진입하는 것이 구체적 목표다.
그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라는 책이 있는데, 보호원이 지난 10년 동안 좋은 기관으로 성장했다면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윤 원장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문화적 자본의 주요 요소로 제시한 ‘발전적 조직문화’ ‘문화예술적 환경’ ‘기관 평판’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혁신이 가능한 기관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윤 원장은 “보호원이 상사가 아닌 미션(mission)이 이끄는 기관, 개인과 조직이 함께 성장하는 기관, 창작자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기관, 저작권 보호 그 이상의 가치를 창조하는 기관이 될 수 있도록 마음과 정성을 다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