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원의 일본 톺아보기

한국의 청년, 일본의 청년

2025-11-19 13:00:01 게재

서로 닮은 점이 많은 반면 다른 점도 많은 이웃이지만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청년들의 모습만큼 서로 다른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필자가 경험한 에피소드부터 소개하자. 일본의 대학에는 ‘제미’라는 게 있다. ‘세미나’를 뜻하는 독일어 ‘제미나르’에서 따온 것으로 2학년이나 3학년 때부터 자기가 지도 받고 싶은 특정 교수 밑에 학생들이 모여 연구 발표 토론을 하는 이른바 소수정예식 수업이다. 필자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국립대학의 경우 한 학년에 10명 정도가 참가했었다. 일본 학생이 다수이나 한국이나 중국 유학생도 있었다.

제미에서 보여주는 한국 유학생들의 발표력과 토론력은 빼어나다. 일본 학생들이 혀를 내두르며 닮고 싶다고 할 정도다.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이다. 필자가 있던 대학은 제미 4학년 때 졸업논문을 쓰도록 되어 있었는데, 논문계획서를 작성하는 단계에 이르자 버벅거리는 한국 유학생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반면 일본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침착하게 연구과제를 설정하고 이를 전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발표력과 토론력에서 뛰어난 한국 유학생들이 왜 과제 해결에서는 그만큼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떻든 이 사실은 자기를 어필하는 능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기초력 사이에 갭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희망을 품는 청년, 희망을 품지 않는 청년

좀 더 시야를 넓혀 한국 청년과 일본 청년의 차이점을 짚어보자. 일본정부가 2018년에 ‘일본과 외국의 청년 의식에 관한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일본 한국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의 13~29세 남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여서 좀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한일 비교에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이 조사에서는 각 물음에 대해 ‘그렇다’ ‘대체로 그렇다’ ‘대체로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중에서 하나를 골라 답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가장 적극적인 대답인 ‘그렇다’를 선택한 비율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자기자신에 만족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일본 청년은 10.4%, 한국 청년은 36.3%. 또한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일본 청년은 13.8%, 한국 청년은 36.7%. 이로부터 일본 청년보다 한국 청년의 자기긍정감, 자기표현력이 크고 위에서 본 에피소드가 일반성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미래상으로도 연결된다. ‘자신의 미래에 희망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일본 청년은 18.0%, 한국 청년은 34.9%. 또한 ‘40세 정도가 되었을 때 출세했을 것 같은가’에 대해 일본 청년은 7.9%, 한국 청년은 19.1%.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일본 청년과 야심만만한 한국 청년이 대비된다. 한국 청년의 이런 적극성이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이끌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위의 대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일본 청년은 처한 환경이 안정적이어서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되지만, 한국 청년은 그 환경이 매우 불안정해서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추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위 조사에서도 ‘취직을 걱정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일본이 35.5%임에 비해 한국은 52.6%였다.

일자리와 임금이 문제의 핵심

실제로 청년을 둘러싼 현실에서 한국은 일본과 비교가 안된다. 최근 한국의 구인배수(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는 0.44인데 비해 일본의 그것은 1.20이다. 한편 한국 청년의 1/3은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 ‘그냥 쉬고’ 있는데, 일본 청년은 웬만한 대학생이면 졸업도 하기 전에 몇 군데 기업으로부터 내정을 받는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질 좋은 일자리의 많고 적음이 가장 큰 이유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이 좋은 일자리라고 할 때 250명 이상 기업이 고용하는 비율은 한국이 15% 미만임에 비해 일본은 40% 이상이다. 한국의 경우 그나마 오래 근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0년 이상 근속자 비율을 보면 한국이 22.0%, 일본이 46.8%이다.

일자리 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임금격차가 심하다. 비교를 위해 월 정액급여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한국은 30~299명 기업이 300명 이상 기업의 74.4%를 받는데 비해 일본은 10~99명 기업이 1000명 이상 기업의 82.1%를 받는다.

산업별 격차도 크다. 각 나라의 제조업을 100으로 했을 때 정보통신업은 한국이 125.7, 일본이 122.7이지만 도소매업은 한국이 93.2, 일본이 107.8이다. 음식숙박업의 경우는 한국이 50.7, 일본이 84.6이다. 즉 한국의 경우 정보통신업은 상대적으로 매력이 있다고 해도 도소매업 등은 처우가 낮아 청년들이 선택할 여지가 적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 ‘그냥 쉬는’ 청년들을 양산하고 있다 하겠다.

희망과 현실 사이에 균형을 취할 때

문제는 이를 해결할 방도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격차를 해소하려면 지금껏 한국경제가 의거해 온 ‘거대기업―하청’이란 성장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략과 생태계를 일구어야 하는데, 단기간 내에 이것이 가능하다는 보장은 없다. 근래 들어 정부가 갖가지 청년지원책을 펼쳤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청년문제’가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청년이 ‘그냥 쉬면’ 자기의 의지와 능력을 갉아먹고 결과적으로 사회의 쇠퇴를 초래한다. 따라서 청년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자구책’을 강구해야만 한다.

그 실마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위에서 한국 청년이 자기를 어필하는 능력과 기초력 사이에 갭이 있고, 또 자신이 처한 현실과 꿈꾸는 미래 사이에 갭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를 감안하면 자구책의 하나는 양자의 갭 사이에서 ‘방황’할 것이 아니라, 청년 스스로 적극적으로 양자간에 ‘균형’을 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 때는 “청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표어가 설득력을 가졌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청년이여 균형을 취하라”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길

과제는 어떻게 균형을 취할 것인가이다. 잘 풀리는 청년들은 논외로 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청년들에게 초점을 맞추면 일단 대학 진학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다. 한국의 대학 진학율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학 진학은 긍정적으로는 인적자원의 질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종래 고졸자에 대한 사회적 멸시나 또는 자녀를 무조건 대학에 보내고 싶어하는 부모들의 욕구가 반영된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따라서 미래를 추구하는 청년 입장에서 볼 때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해서 그것도 비싼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굳이 대학에 진학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대기업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에 취직해 스스로 커리어를 개발해 나가면서 자기가 몸담은 기업을 조금씩 성장시켜 나가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한편 대학을 나왔다고 해도 사무기술직에 연연하지 말고 전문기술공이나 자영업을 선택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인공지능(AI)이 사무기술직 일자리를 빼앗는 가운데 배관공 등의 인기가 높아지는 현상이 미국을 비롯해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배관공을 하면서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접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예를 들어 데이터 분석을 통해 누수를 사전에 탐지하거나, 가상현실(VR)을 활용해 배관 작업을 정밀하게 수행하거나, AI에 의거해 월별 공사 일정을 효율적으로 짜는 것 등이다. 이런 선택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 우리 청년들의 분발을 바라마지 않는다.

호세이대학 대학원 교수 공공정책연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