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산’ 캐나다시장 뚫을까

2025-11-21 13:00:02 게재

국방투자청, 한화 오션과 독일 TKMS에 잠수함 건조 제안요청서 발송

마크 카니 캐나다총리는 지난 10월 ‘국방투자청(Defence Investment Agency, DIA)’을 설립하고, 캐나다왕립은행(RBC)과 골드만삭스 등에 일했던 덕 구즈만을 초대 청장으로 임명했다. 데이비드 맥귄티 캐나다 국방부장관은 “투자청은 군수품과 무기 조달방식을 전문화할 것”이라며 “수행할 여러 프로젝트들이 있는데 첫번째는 잠수함 사업”이라고 말했다.

캐나다의 잠수함 사업은 국가 역사상 가장 큰 해외조달사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계약 규모는 유지보수를 포함하면 약 1000억달러(약 1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애초 이 사업에는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5개국 업체가 관심을 보였지만, DIA는 잠수함 건조를 위한 제안요청서(RFP)를 한국의 한화오션과 독일 방위산업체 티센크루프(TKMS) 두 곳에만 발송했다. 최종 후보가 좁혀진 것이다. 제안서 마감일은 내년 3월 2일로 알려졌으나 캐나다해군 안에서는 올해 안이라도 속히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화오션,12척의 함대 완성 제안

캐나다해군은 북극의 빙하 아래서도 기동이 가능하고,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은밀하게 작전을 할 수 있으며, 잠항 능력이 뛰어난 함대를 원한다. 앵거스 탑시 해군사령관은 “가능한 이른 시일 내에 함정을 인도 받을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니 총리와 맥귄티 국방장관은 최종 후보에 오른 거제 한화오션 조선소와 독일의 조선소를 최근 잇따라 방문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간 중 동행취재에 나섰던 CBC방송과 ‘글로브앤메일’ 등 캐나다언론은 “3만여명의 노동자들이 로봇과 함께 작업하는 한화오션은 연간 40척의 군함과 상선을 건조한다”고 소개했다. 잠수함 역시 연간 한척 꼴로 조립라인에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한화는 캐나다에 2032년까지 첫번째 잠수함을 인도하고, 2035년까지 3척을 더 인도할 수 있다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 다음 연간 한척씩 나머지 여덟척의 잠수함을 인도해 2043년까지 12척의 함대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캐나다해군은 노후화된 함정을 일찍 퇴역시키고, 유지 보수나 수리비용까지 10억달러 이상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 한화 측의 제안이다.

독일측이 아직 잠수함 건조비용을 공개하지 않은 것과 달리 한화는 한척에 약 20억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잠수함 인도 전에라도 캐나다해군 장병들이 한국 잠수함에 탑승해 미리 훈련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화오션은 새로 건조하는 잠수함에 캐나다기술을 사용하겠다며, 30여개 업체와 이미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TKMS, ‘캐나다에서도 건조’ 승부수 던져

마크 카니 총리 등 캐나다 대표단은 앞서 지난 8월 독일 북부 킬에 있는 TKMS 조선소를 방문했다. 독일과 노르웨이의 합작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이 조선소는 2028년까지 연간 최소 세척의 잠수함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은 TKMS에 잠수함 여섯 척, 노르웨이는 네척을 이미 주문했다. TKMS 조선소 대표는 최근 캐나다를 방문해 “잠수함 건조비용은 캐나다해군의 요구사항을 정확히 파악한 뒤 추산할 수 있다”며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계약을 수주한다면 캐나다에서 잠수함을 건조할 수도 있다는 나름의 승부수를 던졌다.

독일과 노르웨이 정부 차원에서도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다. 10월 말 독일의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과 노르웨이의 토르 샌드빅 국방장관이 나란히 캐나다 수도 오타와를 방문했다. 이들은 CTV와 인터뷰에서 TKMS 잠수함을 선택할 때 갖는 이점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가장 강조했던 부분은 나토(NATO) 회원국이라는 고리다. 오랜 동맹끼리 같은 기종의 함대 운용을 하면 호환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샌드빅 장관은 “캐나다가 합류한다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재래식 잠수함 함대가 될 것”이라며 “북극권 재무장에 나선 러시아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는 데도 같은 잠수함을 운용할 때 효율적이고 윈-윈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캐나다정부 안에서는 노르웨이측이 계약을 따내기 위해 유지보수시설과 관련한 파격적 제안을 했고, 독일측은 잠수함 계약이 성사되면 캐나다의 민간 항공기를 구매하겠다는 제안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캐나다의 정치와 정책을 주로 다루는 ‘폴리시 매거진’은 이달 초 ‘한국의 새로운 핵잠수함 능력과 캐나다의 안보 선택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국제전략연구센터(CSIS)의 크리스토퍼 에르난데스 선임 연구원은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대목에 주목했다. 그는 “한국이 핵 추진 잠수함(SSN)을 건조하게 된 것은 국방기술 발전에서 큰 도약을 의미한다”며 “이미 조선분야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한국이 핵 추진 개발에 진입한 것은 최대 12척의 디젤-전기 잠수함 구매를 모색하는 캐나다에게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고 짚었다.

에르난데스 연구원은 “한국이 신뢰할 수 있는 핵 추진 노하우를 입증한다면 이는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캐나다가 한국을 중요한 국방파트너로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폴리시 매거진’은 “한국의 야망과 기술은 캐나다에 큰 도전과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도 “잠수함 조달 계획은 국가안보와 북극 방어, NATO와의 동맹 강화, 인도-태평양 지역으로의 유대관계 확대 등 다양한 측면이 검토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핵 추진선 카드, 한화오션에 유리

G7국가인 캐나다는 냉전이 끝난 뒤 사실상 국방 분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행정부 출범 이후 “캐나다를 51번째 주로 편입하고 싶다”는 언급이 계속되면서 동맹에 대한 신뢰도는 크게 떨어졌다.

캐나다 언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방력 강화에 나선 계기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미래 북극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잠수함 함대 운용의 필요성이 시급해졌다는 해석이다. 이런 배경은 독일조선소보다 한화오션의 계약 수주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화오션은 이미 생산되고 있고 한국에서 운용 중인 잠수함 기종을 인도할 예정이다.

캐나다정부의 제안서에 함정을 캐나다에서 유지 보수해야 한다는 항목은 있지만 잠수함을 캐나다에서 건조해야 한다는 요구사항은 없다. 오히려 ‘캐나다 내 건조’ 조건이 붙을 경우 함정 인도 시점을 더욱 지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잠수함 한척을 처음부터 끝까지 건조하는 데는 약 6년이 걸린다고 알려졌다. 앵거스 탑시 캐나다해군 사령관은 “우리는 지금 당장 잠수함이 필요하다”면서 “솔직히 말해서, 해군은 잠수함이 캐나다에서 건조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캐나다는 현재 잠수함을 건조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캐나다는 그동안 첨단무기나 군수품의 70% 이상을 미국에서 구매했다. 미국 록히드마틴사로부터 F-35 전투기도 88대 사들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 3월 카니 총리는 이 계획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51번째주로 편입할 수 있다”고 잇따라 위협하던 때다. 계약에 따라 최소 16대는 구매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추가 구매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이런 가운데 최근 칼 16세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 일행이 캐나다를 국빈 방문해 주목을 끈다. 스웨덴 국방장관과 경제계 인사 60여명이 동행했는데 방문단에는 전투기 제작업체 사브(Saab) 관계자들도 포함됐다. 앞서 지난달에는 ‘사브’의 최고경영자가 캐나다를 찾아 연방정부 고위 관계자를 면담했다. 사브 측은 “캐나다정부가 그리펜(Gripen) 전투기를 도입할 경우 1만개의 제조 및 연구분야 일자리가 캐나다에 생겨날 수 있다”고 손짓했다.

캐나다 언론은 국방부가 F-35와 그리펜을 혼합한 비행대를 구성하는 논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저스틴 매시 몬트리올대 정치학 교수는 이런 상황과 관련, “동맹국과 수십 년 협력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의 문제”라면서 “캐나다는 지금 파트너십을 다각화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말했다.

김용호 언론인 캐나다 토론토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