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손자병법

증시 활황 속 퇴직연금, ‘DC형 전환’ 신중해야

2025-11-21 13:00:01 게재

최근 ‘잠자던 퇴직연금도 증시로? 내가 직접 운용’이라는 제목의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코스피가 4100선을 회복하며 증시가 활황세를 보이자, 퇴직연금을 회사가 운용하는 DB형 대신 본인이 직접 운용하는 DC형으로 바꾸는 근로자가 늘고 있다는 내용이다. 보도에는 “어차피 임금상승률이 낮으면 최종 임금에 연동을 해봤자 얼마 못 받으니 그걸 미리 받아서 더 나은 자산에 투자하는게 낫다”는 인터뷰도 실렸다. 요컨대 ‘지금은 주식시장 호황이니 DB형보다 DC형으로 갈아타라’는 흐름으로 읽힌다.

물론 올해 금융시장의 최대 화두는 국내 증시의 괄목할 만한 상승세다. 오랜 기간 침체를 겪던 시장이 활력을 되찾은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퇴직연금은 단기 수익을 노리는 투자상품이 아니다. 노후자산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제도라는 점에서 단기 시장상황만 보고 제도 유형을 바꾸는 것은 다시한번 생각해야 할 문제다.

DB형과 DC형, 구조부터 다르다

퇴직연금제도는 크게 DB형(확정급여형)과 DC형(확정기여형)으로 나뉜다. 제도 도입 초기부터 “어떤 유형이 더 유리한가?”라는 질문이 늘 따라붙었지만 답은 언제나 유사하다. “상황에 따라 다르고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DB형은 회사가 적립금을 운용하고 근로자는 회사의 운용성과와 관계없이 정해진 공식(퇴직 시 30일분 평균임금×근속연수)에 따라 퇴직급여를 받는 다. 즉 운용 주체는 회사이며 근로자는 최종임금과 근속기간에 기반한 안정적인 급여를 보장받는다.

반면 DC형은 회사가 매년 근로자 임금총액의 1/12 (8.33%) 이상을 근로자 개인 계좌에 적립하고 근로자가 이를 직접 운용한다. 투자 성과가 곧 퇴직급여로 이어지는 구조다. 따라서 임금상승률이 높다면 DB형이, 투자수익률이 높다면 DC형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단순히 ‘임금상승률과 투자수익률 대결’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임금상승률에는 매년의 인상분뿐 아니라 호봉·직급 상승분까지 포함돼야 하며, 투자수익률은 개인의 투자역량과 운용기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기업 근로자나 진급 가능성이 높은 젊은 근로자는 향후 임금상승 여력이 크므로 DB형이 유리할 수 있다. 반면 연봉제 기업 근로자, 은퇴가 임박한 중·장년층 근로자, 투자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DC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두 제도를 동시에 운영하면서, 경력 초반에는 DB형을 선택하고, 퇴직이 가까워질 무렵 DC형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활용하기도 한다. 결국 제도 유형의 선택은 개인의 경력단계 임금구조 투자성향 퇴직시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문제다.

퇴직연금은 장기자산, 단기 유행보다 원칙을

최근처럼 증시가 활황일 때 투자상품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퇴직연금은 단기 성과를 노리는 수단이 아니라 20~30년 이상을 내다보는 장기 자산이다. 시장이 상승세라고 해서 성급히 DC형으로 갈아타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다. DC형은 근로자가 직접 운용 결정을 내려야 하며 투자에 실패하면 손실이 곧바로 퇴직급여 감소로 이어진다. 반면 DB형은 회사가 운용 리스크를 부담하므로 근로자는 안정적으로 퇴직급여를 받을 수 있다. DC형은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만큼의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하는 제도다.

또한 주식시장은 활황과 침체가 반복되는 순환구조를 갖고 있다. 특정 시점의 시장상황을 근거로 제도 전환을 결정하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장기간 분산투자를 통해 리스크를 완화시킬 수 있지만 이는 투자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리스크관리 능력이 전제될 때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근로자는 자신의 연령 직급 임금구조 투자역량 퇴직시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도를 선택해야 한다. 단기 시장 분위기에 휩쓸려 “요즘 주식이 좋다더라”는 이유로 DC형으로 바꾸는 것은 퇴직자산 관리의 기본 원칙을 벗어나는 행위다.

지금 필요한 것은 ‘DB형이냐, DC형이냐’라는 단순한 이분법이 아니다. 퇴직연금의 본질은 노후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사회적 안전망에 있다. 근로자에게는 투자역량을 높일 수 있는 금융교육이 제도적으로는 안정적 운용을 지원하는 구조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증시의 활황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퇴직연금은 ‘지금의 시장’을 위한 자산이 아니라 ‘미래의 삶’을 위한 자산이다. 단기 수익의 유혹보다 장기적 안정과 지속가능성을 중시할 때 퇴직연금이 비로소 진정한 노후자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박준범

성균관대 겸임교수

한국은퇴연금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