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한강의 기적’ 동력을 제조업 지키기로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이집트에서 중동지역 국가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겠다는 ‘카이로 구상’을 발표했다. 이 대통령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압축성장에 중동의 도움이 있었다며 이제 대한민국이 ‘나일강의 기적’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1970년대 건설·에너지 중심의 ‘중동 붐’을 넘어 이제 한국이 주도해 인공지능(AI)·수소 등 미래 기술 분야에서 중동 국가들과 협력하겠다는 전략이다.
세계 주요국들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중동지역과의 교류협력 확대는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은 중동 각국과의 맞춤형 협력을 제안하며 “삼성 스마트폰이 이집트 국민을 세계와 연결하고, 현대로템 전동차가 카이로 시민들의 발이 되고 있다”는 사례를 들었다. 이처럼 대통령이 해외 순방길에 강조한 ‘한강의 기적’ 동력은 제조업이었다.
“반도체·조선도 5년 뒤 중국에 역전” 산업현장 경고
전자 섬유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반도체 조선산업 등은 부존자원이 빈약한 나라, 한국을 기술강국·수출대국으로 도약시켰다. 한국은 미국 중국 독일 대만 일본 등과 함께 ‘제조강국’으로 불린다.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관세전쟁을 선포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목표도 ‘미국 제조업의 부활’이다.
이런 트럼프정부에 ‘마스가(MASGA,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내세워 관세협상에서 선방한 것도 세계적인 기술경쟁력을 보유한 제조업, 조선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런 한국 제조업에 심각한 위기경보가 울렸다. 조선을 포함한 10대 수출 업종의 경쟁력이 모두 5년 뒤 2030년 중국에 역전당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철강·일반기계·2차전지·디스플레이·자동차 및 부품의 5개 업종은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다. 세계 정상인 반도체와 조선마저 5년 뒤에는 뒤질 것으로 관측됐다. 경제전쟁 최전선과 산업현장에서 접하는 정보 및 경험에서 나온 판단이라서 충격과 우려를 더한다.
현장 상황은 이미 심각하다. 중국 전기차·배터리 생산라인에 사람 대신 로봇이 투입돼 하루 24시간 가동하며 첨단제품을 대량 생산해낸다. ‘중국의 TSMC’로 불리는 SMIC는 3분기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이 5%로 삼성전자(8%)에 바짝 다가섰다.
미래 기술경쟁력의 열쇠인 AI 분야에서 중국의 질주는 훨씬 무섭다. 스타트업인 문샷 AI의 대형언어모델(LLM, 키미 K2 싱킹)은 올해 초저비용·고효율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딥시크를 뛰어넘어 오픈AI의 최신 모델 GPT-5보다 평점이 높다. 로봇·자율주행차·우주항공 분야도 미국과 어깨를 겨루거나 앞서 달린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62.5%가 미국·일본보다 중국을 경쟁자로 여길 정도로 ‘차이나 포비아’가 똬리를 틀었다. 위축되지 말자. 제조업 경쟁력을 계속 키워 최강국 위상을 굳혀야 한다. 기술경쟁력 기업경쟁력 산업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다.
‘500원 지폐에서 5000척 건조’ 정신으로
HD현대가 1974년 첫 선박을 건조·인도한 지 반세기 만인 19일 세계 최초로 5000척 인도 기록을 세웠다. 누적 5000척 인도는 한국보다 조선 역사가 긴 유럽·일본도 이루지 못한 것이다.
국내에 조선소도 없던 시절,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16세기에 철갑선을 만든 나라”라고 설득해 영국에서 차관을 받아 그리스 선박을 수주했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5000번째 선박을 인도하며 “AI·탈탄소·자율운항 등 해양혁신 최전선에서 항해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통한다.
AI 혁명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AI 시대 국력 평가지표로 GDP(국내총생산)가 아닌 GDI(Intelligence, 국내총지능)가 거론된다. 관련 인재양성 없이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 확보만으로 AI강국이 될 수 없다. 교육과 근로현장이 달라져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한국이 당면한 최대 과제로 잠재성장률 반등을 꼽았다. 아울러 구조개혁을 통한 국가 대전환을 강조하며 개혁대상으로 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등 6대 분야를 지목했다. 구호에 그쳐선 안된다. 제대로 실천해야 산업 경쟁력도, 경제도 살아난다.
양재찬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