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적극적인 기후행동이 현생 인류를 존속하게 했다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가 당초 계획보다 하루 연장하며 지난주 말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치열한 논쟁 끝에 도출한 선언문에는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화석연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담지 못했다. 화석연료 퇴출 로드맵을 마련하고자 노력했지만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의 완강한 반대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현대 산업화의 근간이 되었던 화석연료와 단절을 선언하지 못하고 과거의 연장선에 머물겠다는 모습이었다.
물론 합의문에는 해수면 상승, 가뭄 등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적응 재원을 2035년까지 현 수준의 약 3배로 늘리도록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하로 억제하기 위한 행동의 ‘이행 가속화’를 목표로 하는 자발적 이니셔티브를 운영하기로 한 것도 소중한 성과다.
그런데 이러한 수준의 합의문이 과연 인류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기후재앙이 현실인데 화석연료 퇴출에 대한 로드맵조차 만들지 못한 합의가 지켜질까.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세계적 합의가 얼마나 무너졌는지 보여주는 현실 확인의 자리였다”라는 영국 BBC의 평가가 실감되는 이유다.
크로마뇽인이 현대인의 조상이 된 이유
고고학자들은 인류의 조상으로 약 40만년 전부터 네안데르탈인이 있었고 약 4만년 전에 크로마뇽인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현대인에게는 두 인종의 유전자가 섞여 있어서 이들이 공존한 시기가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는데, 크로마뇽인의 유전자가 96~99%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크로마뇽인이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우수한 능력을 지녔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뇌 용량이나 체격적인 조건을 비교하면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이 크로마뇽인보다 더 우수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은 명확하지 않다. 체격적으로나 뇌 용량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수했던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까닭은 기후변화나 질병, 또는 이들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들보다 더 부족한 존재였던 크로마뇽인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설명하는 재미있는 가설이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훌륭한 능력을 토대로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했고, 크로마뇽인은 부족한 능력을 보충하고자 거주지역을 이동하는 등 환경에 적응하며 살았다. 결국 안정성을 추구한 탓에 이동성이 낮아진 네안데르탈인은 급격한 기후변화에 몰살당했고, 바뀌는 환경을 피하며 적응하던 크로마뇽인이 능력은 부족하지만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생대에 엄청난 크기의 몸을 지녔던 공룡은 신생대까지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큰 체격과 뇌 용량을 지녔던 네안데르탈인은 크로마뇽인에게 현대 인류의 조상 자리를 내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우리가 대장이니 이대로 안주하겠다”고 외치던 존재들은 멸절의 결과를 받아야 했다.
이번 COP30에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 또 다른 공룡 중국은 화석연료 저감 활동을 위한 노력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기후악당’이라고 불리는 여러 선진국도 기후위기를 모면하려는 노력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반면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을 기억하는 유럽인들이나 크로마뇽인의 적극적인 행동을 추구하는 개발도상국과 환경단체는 목소리를 높이는 무대였다.
공룡의 멸절이나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고고학적 영상이 데자뷔처럼 투영되는 모습이다.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며 도시에서 살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자연력에 의존하는 저개발의 삶으로 이주할 것을 외치는 소리가 있지만 이를 무시하는 선진국 국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약간은 덜떨어진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적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기후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은 크로마뇽인의 외침이 메아리처럼 들린다.
비판 앞서 역사의 외침에 귀기울이길
우리나라는 이번 당사국 총회를 통해 ‘탈석탄 동맹’에 가입하고,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도 진전된 수준으로 천명했다. 여전히 ‘기후악당’의 위치를 벗어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지만 네안데르탈인의 모습을 견지하는 것이 아니라 크로마뇽인이 되겠다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이에 대하여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냉철한 역사의 외침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 바란다. 적극적인 기후행동을 미루며 안주하는 모습으로 버티다가 절벽 앞에 서는 우리가 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