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국민차 사업’ 부활…현대차 참여하나
일본차 90% 점유 시장 흔들릴지 주목 … 프라보워 정부, 3년내 자국 브랜드 자동차 생산 선언
인도네시아가 국민차를 추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민차 생산을 위해 1996년에도 수하르토 대통령의 3남 토미(Tommy)에게 사업권을 내줬다. 토미의 회사가 기아자동차의 세피아 모델을 국민차 띠모르(Timor)라는 이름으로 생산하되 3년 내에 국산화율을 6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생산 공장이 없는 토미의 회사는 공장을 갖출 때까지 완성차 세피아를 한국에서 직접 수입해 국민차로 판매하기로 했다. 정부는 수입관세, 국내 사치세 등 다양하고 대폭적인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일본, 미국, EU 업체가 강력하게 반발을 했고 WTO에 제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외환위기가 발발하자 IMF는 구제금융 프로그램에서 국민차 프로젝트를 폐지하도록 함으로써 인도네시아는 자국산 브랜드 자동차 생산을 포기했다.
프라보워 대통령의 발표 이후 먼저 경제조정부 아이르랑가(Airlangga) 장관은 경주 APEC 회의에 참석해 현대자동차 대외전략담당 성 김 사장(전 주한미국대사)을 만났다. 김 사장은 현대자동차가 이미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의 부품 80%를 현지에서 조달하고 있고, LG 엔솔, 인도네시아의 IBC와 합작으로 배터리 셀 생산공장까지 운영하고 있는데, 국민차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김 사장은 현대차가 이미 미래의 국민차 모델의 디자인까지 준비했다고 했다.
산업부장관 아구스(Agus)는 한 걸음 나아가 삔다드(Pindad)가 제조한 군용 차량 마웅을 기반으로 일반 대중을 위한 국민차로 채택하고, 자동차의 형태, 사용기술, 가격전략, 마케팅 전략, A/S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양측은 국민차를 공동개발할 파트너를 참여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도 곧 결론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아구스장관은 자동차 산업이 일자리 창출과 전후방 연관효과가 크기 때문에 국민차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왜 다시 국민차를 하려 하는가
인도네시아는 석유, 가스, 석탄, 팜오일, 목재, 니켈 등 풍부한 자원, 2억8000만명의 인구를 갖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을 추진했지만 여전히 1인당 소득은 500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풍부한 노동력에도 불구하고 섬유, 의류, 신발 등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동남아 대부분에서 활발한 전자산업도 육성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GDP에서 제조업 비중은 19%에 불과하고 지속적으로 그 비중이 감소했다. 풍부한 자원 때문에 오히려 제조업이 발전하지 못하는 모순을 경험한 대표적인 국가가 된 것이다.
경쟁력 있는 제조업 육성에 실패한 인도네시아는 니켈 등 핵심자원을 원료로 수출하는 대신 국내에서 가공과정을 거치도록 하면서 자원가공 산업을 육성하고 있으나 이들을 순수한 제조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대로 잘 나가는 산업이 자동차 산업이다. 2024년 자동차 생산은 약 120만대로 세계 15위였다. 2022년의 147만대 11위에 비해서는 하락했지만 대단한 성과를 기록한 것은 틀림없다. CKD를 포함한 자동차 수출은 2024년 52만대 수준에 이르렀다. 금액으로는 부품 포함 91억달러였는데, 이는 의류제품 71억4000만달러 및 스포츠화 40억8000만달러보다 많은 것이다. 자동차 산업이 중심산업으로 성장하는 듯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외국기업, 특히 일본 자동차 회사가 산업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차는 2024년 전체 120만대 중 107만대로 89.5%를 생산했고, 한국이 8.6만대로 7.2%를 차지했다. 내수판매량은 2024년 87만대였는데, 일본 브랜드가 89.1%를 차지했다. 수출에서도 일본차의 비중은 86.2%였다. 일본차 중에서 특히 도요타 그룹의 시장 지배력은 특별하다. 도요타 브랜드의 생산은 52만대, 43.2%이었고 다이하츠, 히노를 포함한 도요타 그룹의 생산대수는 70만대 이상으로 전체의 58.9%를 차지했다. 내수 판매에서도 도요타 브랜드가 29만대, 다이하츠 16만대, 그 외에 히노와 렉서스를 포함하면 55.3%에 이른다.
완성차 생산은 도요타 95%, 현지기업 아스트라(Astra)가 5%를 투자한 ‘도요타 제조 인도네시아(Toyota Manufacruring Indonesia)’가 5개의 공장을 두고 담당하고 있다. 판매는 도요타와 아스트라가 50대50으로 합작한 도요타-아스트라(Toyota-Astra)가 담당한다. 다이하츠 자동차의 생산은 도요타 그룹이 68.1%, 아스트라가 31.9%를 소유한 아스트라-다이하츠 모토(Astra-Daihats Motor)가 담당한다.
이 뿐만이 아니라 차체, 부품, 강판, 물류, 자동차금융 등 도요타는 자동차 산업의 공급 체인을 구비하면서 다른 업체가 진출하기 어려운 구조를 구축했다.
일본차가 지배하는 시장에서 최근 수년 동안 다소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인도네시아의 잠재력, 일본 기업 특히 도요타라는 난공불락의 요새, 자동차 수요의 변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전기차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중국 전기차 업체들 역시 진출을 했다. 정부도 장기적으로 탄소제로를 위해 전기차에 대한 우대조치를 강화하면서 아직 비중은 미미하지만 배터리 전기차를 중심으로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프라보워의 구상 성공할 것인가
자동차 산업은 공업의 꽃이다. 모든 나라는 자국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동차는 종합 기계산업이자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산업이다. 이 때문에 글로벌화가 심화할수록 소수 기업들의 지배력이 높아지고, 국제분업에서 개발도상국은 하청기지 역할을 할 수는 있어도 자국의 브랜드를 창출하기는 어렵다.
1980년대부터 국민차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말레이시아가 엄청난 자원을 쏟아 부었지만 결국 중국과 일본 기업에 의지하는 국민차를 운영하면서 자립을 하지 못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도네시아 역시 이미 1920년대부터 자동차를 생산했으나 여전히 다국적 자동차 업체의 하청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자동차 보급률은 2024년 1천명당 99대로, 말레이시아의 490대, 태국의 275대에 비해서 훨씬 낮다. 인구를 고려하면 자동차 시장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해 보인다. 국민차를 추진할 명분과 실리가 다 있는 셈이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국민차 계획을 발표하면서 “세계 4위의 (인구)대국으로서 전능하신 신이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엄청난 부(자원)와 모든 요소들을 주셨는데, 우리 자신의 자동차, 오토바이, 컴퓨터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인도네시아의 국민차 프로젝트의 핵심은 자국 기업에 의한 자국 브랜드를 만든다는 것이다. 기술이 없는 인도네시아 기업이 어떻게 다국적 자동차 업체와 경쟁하고, 자립하며 나아가 국민들이 사랑하는 브랜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결국 다국적기업과 지본이나 기술협력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 후보로 현대자동차가 거론되는 것이다.
현재까지 나온 뉴스로는 현대차와 인도네시아 어느 쪽이 더 적극적인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현대차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 자동차 업체가 장악하고 있는 기존 시장을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현대자동차다. 현대자동차는 내연 기관 중심의 기반을 구축한 일본차에 대응하여 전기차를 들고 진출했다. 문제는 중국의 전기차가 급속히 남하하면서 현대차가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차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해당 업체에게 우대조치를 제공해 경쟁력을 제고해 줄 필요가 있다.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세제 우대일텐데, 수입 관세는 이미 충분히 낮아진 상태이다.
실제로 한-인도네시아 CEPA에 의해서 우리는 주요 부품을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고, 남은 일부 부품과 완성차의 관세도 점진적으로 철폐된다. 대신 자동차는 사치재로 분류돼 고급 자동차에 대해서는 최고 90%까지 판매세가 부과되는데, 일반 자동차의 사치세는 40% 이하이고 전기차는 사치세에서도 우대를 받고 있다. 국민차가 대중용 차라고 한다면 사치세를 면제한다 해도 큰 혜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 주도 사업, 투명해야
현대자동차가 관심을 갖는다는 뉴스는 인도네시아 측의 보도이기 때문에 사실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현대차가 어떤 형태로든 국민차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면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현재 세계경제 체제에서 인도네시아 정부가 일방적으로 대폭적인 특혜를 제공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과거 기아자동차가 국민차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과도한 우대조치의 대상이 됨으로써 인도네시아 정부나 기아지동차 모두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빚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주도하는 사업은 많은 이해관계자가 있기 마련이므로 투명하게 진행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