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희 변호사의 이혼소송 이야기 (4)
AI 발달과 이혼소송 증거
변호사가 된 지 어느덧 13년이 되었다. 1년 차 시절, 이혼소송에서 제출되는 증거라고 하면 문자, 카카오톡, 사진, 녹취록이 대부분이었다. 네이버 지도 거리뷰를 캡처해 제출하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증거의 폭이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AI와 디지털 기술이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면서, 이혼소송에 등장하는 증거의 종류와 정밀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변화하였다.
(1) 첫째, 위치·동선과 관련된 공간적 증거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휴대폰 속 사진 한 장만 있어도 네이버 렌즈 등을 통해 촬영 장소를 바로 특정할 수 있고, 구글 타임라인은 여전히 유효한 동선 자료로 활용된다.
차량 제조사 앱이나 스마트 키를 통해 차량의 이동 경로가 기록되고, 신축 아파트의 경우 주차 앱에서 상간자의 차량번호가 자동 저장되기도 한다.
소송에서 현출되는 통신사 기지국 주소의 경우 부정행위 정황을 알 수 있다. 집 안에 설치된 홈캠이나 펫캠, 내비게이션 목적지 기록 역시 유책행위 당시의 이동과 방문지를 보여주는 자료로 자주 제출된다.
(2) 둘째, 음성·대화 증거는 자동화되었다. 휴대폰의 자동 통화녹음 기능은 특별한 조작 없이도 장기간의 통화 내용을 저장하고, 차량 내부 음성 녹음기능이나 음성이 저장되는 블랙박스 또한 예상치 못한 형태의 증거가 된다.
이전 칼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스마트워치를 통한 녹음은 특히 가정폭력 사건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녹음파일은 네이버 클로바 등의 자동 회의록 생성 기능을 통해 신속한 텍스트화가 가능하다.
(3) 셋째, 구글 계정 기반의 생활 기록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호텔 예약 이메일, 전자 영수증, 숙박 앱 정보가 자동으로 구글 메일에 저장되고, 부부가 유튜브 프리미엄을 공유하는 경우에는 특정 기기에서의 접속 기록이나 알림이 부정행위를 추정하게 만든다. 과거에는 ‘열심히 찾아내야’ 했던 증거들이 이제는 사용자가 모르는 사이 스스로 기록되는 셈이다.
(4) 넷째, 여전히 비중이 가장 큰 증거는 카카오톡이다. 다만 그 획득 경로가 다양해졌다. PC 카카오톡 자동로그인으로 인해 배우자의 메시지를 우연히 보게 되는 경우가 많고, 디지털 워치로 전달되는 알림을 통해 부정행위를 알게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소송에서 현출되는 카카오메시지의 수발신 로그 회신자료 역시 대화 삭제 여부나 빈도·시점을 입증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5) 마지막으로, 생활 플랫폼의 이용기록은 최근 가장 흔히 등장하는 증거다. 배달앱의 수령지 기록, 카카오 선물하기 내역, 멤버십 포인트 사용 기록 등은 별도의 추적 없이도 일상의 반복 속에서 자연스럽게 흔적을 남긴다. 특정 제3자에게 고가의 선물이 반복적으로 전달되었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정황증거가 된다.
AI 시대의 이혼소송은 이제 단순한 진술 대 진술의 영역을 벗어났다. 기술은 기억하고, 앱은 기록하며,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소송의 냉정한 기록 뒤에는 항상 누군가의 일상과 감정이 있다.
법무법인 새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