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12.3 내란 교훈을 기억할 때 역사는 진보한다
내일이면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12.3 비상계엄은 실체적 요건은 물론, 절차·목적 등 어느 하나 충족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군·경을 동원한 국회 봉쇄시도 자체가 중대하고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고 판시해 대통령 파면으로 결정지었다.
그러나 이후 사법절차는 지지부진하고, 피고인들은 재판을 희화화하는가 하면 동조세력은 장외투쟁으로 본질을 흐리고 있다. 또한 내란을 묵인·방조한 정치권과 고위관료들 역시 반성보다 책임회피와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내란 가담자와 동조자는 물론방조한 이들까지도 읍참마속의 원칙으로 신상필벌해야 한다. 그래야만 유사사태를 막고, 무너진 헌정질서 위에 민주주의의 새살이 돋을 수 있다. ‘K-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도 역사를 바로 세우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미시적 동기와 거시적 행동의 후과
12·3 내란사태는 정치 엘리트들이 개인의 이익을 앞세운 선택이 빚어낸 참사로,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토마스 셸링(T. Schelling)이 ‘미시동기와 거시행동(Micromotives and Macrobehavior)’에서 주장했듯이 개인의 미시적 동기와 선택은 때로 예기치 못한 거시적 사태를 촉발한다. 12·3 내란사태 역시 대통령의 막가파식 계엄 선포에 부화뇌동한 권력자들의 미시적 동기가 결합해 결국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거대한 파국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그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거나, “6시간 만에 해제됐고, 물리적 피해도 없었다”며 책임을 회피한다. 이러한 인식은 국민이 겪은 심리적 충격과 민주주의 훼손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으로,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의 전형이다. 비상계엄 권한이 대통령과 일부 권력자들에 의해 반헌법적 도구로 전락한 사실은 지금도 많은 국민에게 ‘12.3 내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12.3 불법 비상계엄은 형식적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권위주의로 회귀할 수 있는지 그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 근저에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구조적 모순이 자리한다. 대통령 권한의 과도한 집중은 광복 이후 냉전 이데올로기와 6·25전쟁, 분단체제, 경제개발 논리와 군부독재의 잔재 등이 중첩된 한국 정치의 유산이다. 문민정부가 출범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삼권분립에 기반한 견제와 균형은 여전히 취약해 실질적 민주주의의 성숙을 가로막는 구조적 제약으로 남아 있다.
12.3 내란사태는 정치권은 물론 국정원·검찰·경찰·군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전반에 내재한 구조적 결함의 민낯을 보여줬다. 그중 특히 주목할 집단은 군(軍)이다. 일각에서는 “일부 장성급 지휘관의 일탈일 뿐, 군 전체를 매도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군은 국가가 독점한 폭력을 관리·통제·사용하는 최정점에 있다. 따라서 잘못된 지휘와 왜곡된 충성은 한순간에 군 전체를 ‘역설의 군대’로 전락시킬 수 있다. 실제로 그날 국회에 투입된 군 병력과 시민들 사이에서 작은 충돌이라도 발생했다면 사태는 되돌릴 수 없는 비극으로 번졌을 것이다.
역사의 발전은 통렬한 자기반성과 성찰에서 출발한다. 대한민국도 12·3 내란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가 명확히 갈린다. 이전이 권위주의적 유산의 관성이 지배하던 시기였다면, 이후는 헌법 질서와 민주주의의 실질적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K-민주주의’ 진화의 단계에 들어섰다.
그 출발점이 바로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 교육이다. 이러한 교육이 시민과 공직사회에 대한 ‘정신적 백신’이라면 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공무원과 군의 ‘복종의무’ 폐지 추진은 왜곡된 권위주의 문화를 걷어내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바로 세우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12월 3일, 제2 창군의 출발점으로
특히 우리 군은 12월 3일을 ‘제2 창군’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통치권자 개인이 아닌 오직 국가와 국민만을 향해 충성을 맹세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안보도, 민주주의도, 헌정질서도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다시 12.3과 같은 비극을 겪지 않으려면 군의 환골탈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12.3 내란 사태 1년을 맞은 지금, 필요한 것은 망각과 용서가 아니라 철저한 단죄와 교훈을 되새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