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 풍경
부당해고 사건 재심판정 현장에서 피어난 신뢰
노동위원회(노동위)에서 정의는 단순히 옳고 그름을 가르는 법적 판단에 머물지 않는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갈등을 겪는 상황에서 그들이 다시 사회 속에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공정한 절차와 대화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노동위가 지켜야 할 더 큰 정의다. 수많은 사건을 접하다 보면 법리보다 감정이 더 큰 장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노동위가 해야 할 일은 ‘판단으로 분쟁을 다루고 대화의 장으로 사람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노동위 오기까지 이미 긴 싸움을 해온 이들
노동위의 심판정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대부분 굳어 있다. 억울함 분노 피로가 섞인 얼굴이다. 사용자든 근로자든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이미 긴 싸움을 해온 이들이다. 수습근로자로 채용된 A씨는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휴게시간 1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며 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 일로 사용자 및 동료직원과 갈등이 생겼고 결국 사용자는 본채용을 거부했다. A씨는 부당해고라며 노동위에 구제를 신청했다. 초심 지방노동위원회는 사용자의 본채용 거부가 정당하다고 판정하였다. 그러나 상호 불신과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고 A씨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조사관이 본 문제의 본질은 명확했다. 해고의 직접적 이유가 ‘노동청 진정’과 ‘직장동료와의 갈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은 단순한 법리 다툼을 넘어 깊은 상호 불신의 문제로 번져 있었다.
심판위원회 심문회의 당일, 양측은 심판정 앞에서부터 고성이 오갔다. 심문회의가 시작된 뒤에도 상대방의 말은 전부 거짓이라며 서로를 몰아세웠다. 위원들의 질문에도 근로자는 감정이 격해져 질문의 요지를 놓치곤 했다. 심문회의실의 공기는 팽팽했다. 심문회의가 끝나갈 무렵, 위원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화해의 의사가 있으신가요?” 그런데 뜻밖에도 노사 양측은 모두 “있다”라고 답했다.
심판위는 일주일간의 화해기간을 부여하며 심문회의를 종결했다. 하지만 조사관은 속으로 생각했다. ‘먼 지역에서 올라온 당사자들 상황과 서로에 대한 불신이 극심함을 고려하면 일주일 동안 전화 한통도 오가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이에 조사관과 근로자위원은 즉석에서 화해 절차를 진행해 보기로 하였다. 양측을 심판정 밖 휴게실로 안내하고 서로 보이지 않게 멀찍이 떨어뜨려 앉혔다. 조사관이 사용자를 찾아 화해의 필요성과 효과를 설명했고 근로자위원은 근로자 쪽을 설득해 화해 의사를 다시 확인했다.
근로자위원은 근로자 면담 결과 ’쌍방 고소 취하‘와 ’몇 개월분의 임금‘을 조건으로 제시하면 될 것 같다는 의견을 조사관에게 전달하고 다음 사건의 심문을 위해 심판정으로 돌아갔다. 조사관은 이 내용을 사용자에게 전했다. 하지만 사용자는 단호했다. “돈 이야기가 나오면 화해는 없다. 다만 서로 고소를 취하한다는 조건이면 받아들이겠다.” 조사관은 다시 근로자에게 돌아가 그 뜻을 전달했다. 그러자 근로자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내가 언제 돈 달라고 했어!”
노동위의 정의와 화해의 힘
조사관은 급히 근로자를 진정시키고 자리에 앉히며 차분히 말했다. “근로자가 금전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하니 쉽게 화해될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업무방해죄 고소를 취하하면 근로자도 국민신문고 민원 등을 모두 취소하면 어떨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근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다 취하하겠다.”
조사관은 양측의 조건을 문장으로 정리했다. “쌍방은 이미 제기한 고소 민원 등을 모두 취하하고 향후 일체의 민형사 및 행정상 기타 어떠한 방법으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 문구를 읽어주자 양측은 모두 “좋다”고 답했다. 화해조서를 작성했다. 마지막으로 양측에 악수를 권하자 잠시 머뭇거리던 양측은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그 순간 악수는 단순한 서류 절차의 마무리가 아니라 오랜 오해와 감정의 매듭이 풀리는 ’회복의 시작‘이었다. 사건은 ’부당해고 구제신청‘이라는 법률적 틀 안에서 시작됐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마무리됐다.
노동위의 판정은 늘 옳고 그름을 가르는 일이지만 때로는 서로의 마음을 돌려세우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법이 모든 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대화의 문을 열어주는 제도가 될 수는 있다. 노동위의 정의는 갈등의 목소리 너머에서 사람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데에서 완성된다. 판정이 정의를 세운다면, 화해는 그 정의를 사람의 삶 속에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다.
김재봉
중앙노동위원회
조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