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내 선박금융 2조원, 달러 대신 원화로 가능
국내 선박금융시장에서 정책금융과 중국계 리스금융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일반 시중은행 비중이 지나치게 낮아지고 외국계 공급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는 연간 공급 기준 외국계 63%(중국리스 32%), 정책금융34%, 민간금융 3%로 조사됐다. 시중은행 위축 현상의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해운업 장기침체로 말미암은 부실 경험과 함께 달러화로 주로 거래되는 선박금융 통화시장에서 시중은행의 불리한 여건도 살펴야 한다. 시중은행은 외국계 은행이나 정책금융기관에 비해 달러화 조달금리가 높고 달러화 조달 시장 접근성도 불리하다. 대출기간이 긴 선박금융의 경우 시중은행은 단기로 조달한 달러를 장기로 대출해주면서 발생하는 만기 불일치로 유동성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수출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업은 물론 외항 운송으로 외화 운임을 벌어들이는 해운업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출산업이다.
하지만 모든 외항 선박이 해외로부터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은 아니다. 도시가스로 주로 사용되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경우 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은 기존 관행대로라면 운임을 달러화로 지급하기 위해 달러를 별도로 차입하거나 매입해야 한다. 가스공사의 경우 국내 발전소나 도시가스 사업자에게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대금은 원화로만 수취하기 때문이다. 이들 선박의 경우 국내 조선소 건조(조선), 국적 선사 운항(해운), 그리고 국내 은행대출(금융) 등 전 과정에서 원화로 거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국내 에너지 공기업들의 내수산업용 전용선을 원화 선박금융 대상으로 따로 세분화 할 수 있다. 이들 내수산업용 전용선은 우리나라 전체 선대에서 톤수 기준 약 30%, 연간 2조원 이상의 금융시장 규모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선박금융을 원화로 거래할 경우 국내 금융 및 해양산업에 긍적적인 효과가 매우 크다. 우선 국내 시중은행의 경우 원화 거래로 대출 조건을 바꾸면 외국계와 정책금융을 제치고 가장 유리한 금리 경쟁력을 갖게 된다. 화주인 에너지 공기업도 유리하다. 국내 매출 대금으로 수취한 원화를 그대로 지급할 수 있어 따로 달러화를 사거나 차입해야 하는 부담이 줄고 환리스크 노출도 줄어든다.
국내 조선소의 환리스크 관리 비용 또한 줄어든다. 국내 조선소는 건조 대금을 달러로 수취하지만 선박 건조 비용의 50% 이상을 국내 기자재, 인건비 등 원화 비용으로 지급하기 때문에 수취할 달러 중 상당부분을 선물거래 등을 통해 원화로 바꿔 원화강세에 따른 환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선박건조 계약을 원화로 체결하면 이러한 수입과 비용간 통화 불일치 폭을 대폭 줄일 수 있다.
해운사는 수취와 지급에 동일 통화를 사용하기에 중립적이다. 회계적으로 기능통화 관련 장래 수취할 운임 자산과 지급할 용선료 부채의 환평가는 자산과 부채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또한 중립적이다. 다만 해외에서 발생하는 항만비, 벙커링 등 달러로 지출되는 비용의 경우에는 화주와의 정산과정이 필요하다.
원화 선박금융의 가장 큰 성과는 민간 시중은행의 금리 경쟁력이 외국계 은행을 제치고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에너지 공기업과의 계약으로 원리금 상환이 안정적인 우량 선박금융 건에서 달러화 금리 경쟁력에 밀려 늘 외국계에게 기회를 넘길 수 밖에 없었던 민간은행에게는 극적 반전의 기회다.
어떻게 하면 원화 선박금융시장을 구축할 수 있을까. 에너지 공기업의 원자재 수입용 선박의 운송계약은 그 입찰을 공기업들이 관장하고 있기 때문에 입찰 과정에서 운임통화를 원화로 입찰하게 유도할 수 있다. 정부가 에너지 공기업 경영을 평가할 때 에너지 전용선에 대해 원화 선박금융으로 취급할 것을 권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거래 통화를 바꿈으로써, 선박금융시장 주도권 변화와 조선-해운-금융 전 분야에서 국내부문 경쟁력이 증가하는 상생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세계 조선시장 호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선업은 벌크선과 탱커 등 표준선형 건조의 맥이 끊어질 정도의 위기 국면에 빠져 있다. 원화 선박금융은 에너지 공기업의 표준선형 국내 건조 생태계 조성에도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부산국제금융진흥원
해양금융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