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글로벌화와 내년 의장국 필리핀의 과제

2025-12-12 13:00:01 게재

현 의장국 말레이시아가 연 글로벌 협력의 장 … 필리핀의 남중국해·미얀마 해법 주목

지난 10월 25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ASEAN) 외교장관회의에서 통사반 폼비한 라오스 외무장관, 우 하우 칸 쑴 미얀마 외교부 사무차관, 시하삭 푸앙켓케오 태국 외무장관, 모하마드 하산 말레이시아 외무장관, 엔리케 마나로 필리핀 외무장관, 수기오노 인도네시아 외무장관, 카오 킴 혼 아세안 사무총장 등이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0월말 개최된 제 47차 아세안 정상회의는 근래에 보기 드문 성과를 창출했으며 흥행 면에서도 대성황을 이뤄 세계 속의 아세안의 면모를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을 수임한 말레이시아는 아세안을 글로벌 공동체와 접목시키는데 주력했으며, 지구촌을 아세안으로 끌어 들이는 동시에 지구촌 곳곳에 아세안의 발자취를 크게 남기고 있다. 아세안 정상회의를 글로벌 정상회의로 승격시키는데 필요한 밑그림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와르 총리는 동남아 지역의 가장 집요한 두가지 도전인 남중국해 분쟁과 미얀마 내전의 수렁에 빠져 꼼짝달싹 못하기보다, 대체로 덜 어려운 일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았다.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아세안은 ‘사람 중심의 아세안’ 이라는 캣치프레이즈에 걸맞게 보통 사람들의 가슴에 와 닿는 다수의 성과물을 만들어 내고 이니셔티브를 취함으로써 시민들의 호응과 지지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또한 동아시아에서 아세안 정상회의와 APEC 정상회의가 연이어 개최돼 전세계의 시선을 끌어들였다. 또 의장국을 중심으로 자유무역을 신장시키는데 주안점을 둔 정책 이니셔티브를 취함으로서 아세안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신뢰를 고양시키는데 기여했다.

흥행 측면에서도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는 전례가 없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와는 달리 집권 2기 첫 해부터 미-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함으로써 말레이시아와 아세안에 대한 세계 언론의 관심을 증폭시켰으며, 특히 세기의 미-중 정상회의의 무대를 제공함으로써 전 세계적 차원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정상회의 참석은 안와르 총리의 섬세하고 노련한 외교의 결과이며 단연 압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이 아세안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치가 점차 높아 가고 있는 상황에서 아세안 의장국 인계·인수식이 정상회의 마지막 날인 10월 28일 개최됐다. 의장직은 넘겨주었지만 현 의장국이 연말까지 의징직을 계속 수행한다.

내년 2026년 새 의장국 필리핀은 어떤 모습으로 지구촌을 맞이할까? 전임 말레이시아 의장국과는 어떤 차별성을 보여줄까? 계속해서 세계 경제의 엔진으로서 자유무역과 다자무역 체제의 전도사가 되어 줄 것인가? 세계가 아세안을 주목한다.

글로벌 정상회의로 격상된 올해 정상회의

이번 제47차 아세안 정상회의의 주요 성과를 짚어 보자. 이전과 달리 이번 회의는 글로벌 정상회의 성격이 농후해젔다. 안와르 총리는 UN 사무총장과 한중일 및 미·영·러·인도·호주·뉴질랜드 등 기존의 대화상대국 지도자뿐만 아니라 글로벌 사우스의 브라질과 남아공 정상을 초청하고 글로벌 노스의 유럽연합과 카나다 정상을 초청함으로써 아세안을 G7, G20 와 같은 비중있는 다자 협의체로 그 위상을 한단계 더 높였다.

5월 정상회의시 아세안-GCC-중국 협의체를 출범시킨데 이어 글로벌 사우스의 핵심 두나라를 아세안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크레딧을 쌓아 올리고 있다.

동티모르의 아세안 가입 실현 또한 중요한 성과로 꼽힌다. 2011년 가입 신청 이후 14년만에 이루어진 쾌거이며 아세안 가족 공동체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어 아세안은 평화의 사도 이미지를 확산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안와르 총리가 함께 태국-캄보디아 국경 분쟁 휴전을 중재해 이뤄진 휴전협정 서명식에 두 지도자가 참석한 가운데 분쟁 당사국 총리들이 서명함으로써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이후에도 양국 국경 지대에서 긴장이 간헐적으로 계속 되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 12월 8에는 새벽 양국 국경 지대에서 교전이 발생해 사상자 발생과 민간인 수만명의 대피 사태까지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성과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올해는 또한 아세안과 유엔 정상회의가 개최되어 유엔 사무총장이 미얀마의 문턱에서 전 세계를 향해 미얀마의 인도적 위기 상황에 더 많은 관심을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

올 5월 상반기 정상회의에서 아세안은 ‘아세안 비전 2045’을 채택했으며 이는 아세안의 가장 야심적인 의제를 담고 있다. 이 프레임워크는 ‘아세안 공동체의 4개의 기둥: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및 연계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7억 인구의 동남아 지역을 2045년까지 세계 4대 경제로 변모시키기를 열망한다. 이는 통합 GDP 4조달러를 지향하는 지역의 현 성장 괘도를 발판삼고 있다.

아세안 경제 어젠다의 핵심은 ‘디지털경제프레임워크협정’으로, 이번 정상회의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뤘으며 연말까지 협상 종료를 목표로 삼고 있다. 협정이 타결되면 이는 세계 최초의 지역 디지털 경제협정이 될 것이고, 잠재적으로 2030년까지 2조달러의 디지털 경제를 추가로 창출할 것이다.

아세안은 중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기도 하다. 이번에 양측은 아세안-중국 FTA 3.0 시대를 함께 열어가기로 합의했다. 디지털 경제, 녹색 개발, 공급망 연계 등 새로운 분야를 FTA에 반영함으로써 무역 확대를 선도하고 있다. 또한 아세안은 자체 상품무역협정(ATIGA))을 업그레이드 했으며 2027년 RCEP 이행 검토를 하기로 합의했다.

필리핀 의장국 체제를 앞둔 외교적 시험대

2026년도 아세안 의장국을 수임하는 필리핀은 아세안 호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고 갈까? 지역의 분석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올해 의장국이 이룬 탁월한 성과를 바탕으로 차곡차곡 실적을 쌓아가는 노력이 올바른 접근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필리핀은 최근 들어와서 남중국해 분쟁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 왔다. 남중국해 분쟁을 우선적 주요 의제로 다룰 것으로 보인다. 남중국해에서의 필리핀-중국 간 긴장 수위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의 확신에 찬 남중국해 정책은 다른 아세안 회원국들이 선호하는 조심스러운 외교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차이는 시작부터 필리핀의 지도력을 손상시킬 위험이 있다. 마닐라는 원칙과 실용주의 사이에 미묘한 균형을 취해야 할 것이다.

필리핀 앞에 놓인 과제는 분명하다. 말레이시아와 마찬가지로 마닐라는 동남아를 단합되고 개방된 지역으로 계속 남아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세안과 중국이 내년까지 남중국해 행동강령(COC) 타결을 목표로 협상 중인 가운데 마르코스 대통령은 지난 10월 아세안 정상회의 계기 우리가 협력하고 의미있게 관여한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어 마르코스 대통령은 남중국해 문제 이외에도 미얀마 위기 등 도전이 산적해 있다면서 필리핀이 남중국해 문제에 매몰돼 여타 아세안 우선순위를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의장국의 앞날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하는 듯한 발언이다.

미얀마 위기의 교착 상태 타개는 내년 필리핀의 핵심 목표가 될 것이다. 새로운 도전은 아세안 신규 회원국 동티모르를 어떻게 아세안에 통합시킬 것이냐이다. 필리핀은 역사적으로 카톨릭 다수 지역 국가인 동티모르의 민주주의 전환의 주요 후원국이었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글로벌 경제 침체, 기후변화와 인공지능이 초래한 새로운 도전이 내년도 아세안 의제의 맨 앞을 차지할 것이다.

아세안은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역내 경제 통합을 촉진하고 역외국들과 무역을 다변화 하며 전 세계와 자유무역을 확대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태평양 건너에서 몰아치는 관세 태풍의 파장을 최소화 하는데 정책 방향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아세안 경제는 2021년부터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회복세를 보이며 2022년 5.6%, 2023년 4.0%, 2024년 4.8%를 달성했다. 2025년 성장률은 2024년과 비슷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세안은 지난 30여년 자유무역을 통해 경이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고 번영을 구가하였다. 자유무역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아세안의 전략적 선택과 향후 방향

아세안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세계관과 분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미국이 국내로 회귀하는데 비해 아세안은 외부 세계를 지향한다. 쿠알라룸푸르 회의장은 탈동조화(decoupling) 이야기로 울리지 않고 연계성, 통합 및 동반 성장의 목소리로 메아리쳤다. 안와르 총리는 확고하다. 말레이시아와 아세안은 어느 일방을 편들기보다 전 세계 모든 나라와 개방적 관여를 추구히야 한다고.

이번 쿠알라룸푸르 정상회의 일환으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신남방정책의 뉴 비전을 재점화하면서 지정학적, 지경학적 불확실성의 시대에 아세안을 우리 대외정책의 핵심 파트너로 삼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2029년 한-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40주년을 내다보면서 꿈과 희망을 이루는 조력자, 성장과 혁신의 도약대 그리고 평화와 안정의 파트너 라는 3대 청사진과 함께 구체적 목표로 교역액 연간 3000억달러를 제시했다. 아세안은 관세 폭풍이 가져온 불확실성의 시대를 해쳐나가는데 있어 우리의 이상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아세안과 열린 마음으로 함께 미래를 항해하자.

정해문 전 태국 대사